※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했다. 손과 발을 잘라 고통 속에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을 바랄 정도로 분노하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그의 만행은 쉽사리 마음을 진정할 수 없게 만들었고, 감정의 제어 방법을 잃어버린 듯 순간순간 악의적인 마음이 피어오르기 까지 했다. '영화 VIP(브이아이피)'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분노와 답답함만이 점철되었다.
동물과 사람이 다른 수십 가지의 이유 중 하나는, 끓어 오르는 감정의 제어와 조화 속에 살 수 있는 자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충동적인 감정과 분노 같은 썩 환영받지 못할 감정 따위를 잘 추스르고 이겨내야만, '사회'라는 조직속에 구성원으로 살아 갈 수 있다.
또한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인간이라면 응당 지켜야 하는 법칙 같은 것들을 세운 심판자의 힘과 도의적인 마음이 저울에 올라 균등하게 유지됨으로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극중 김광일(이종석)은 이 굴레를 우습게 벗어던진 존재이다. 인간으로써의 도덕적 양심과 절제력은 완전히 상실한 권력자이며, '연쇄 살인'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 이기도 하다.
답답함을 넘어선 분노
영화는 극의 초반부터 살인마의 정체를 관객은 물론 법을 집행하는 자에게 까지 밝혀 놓은 채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범인을 찾는 급박한 상황 전개가 아닌, 확정된 범인을 처단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갈등만을 극 전체에 짙게 깔아 두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공권력이 심판 받아 마땅할 살인범을 방치하는 것으로 2차,3차 피해를 초래하면서, 복수심과 양심, 분노가 대립하기 시작한다.
권력을 지닌 살인마 김광일은, 사람은 물론 국가까지 조롱하며 악행을 이어가고, 그것을 어떻게든 심판하려는 채이도(김명민)는 그를 계속해서 코너로 몰아간다. 그러나 빈번히 이권을 취하려는 나라에 의해 범인을 뜬 눈으로 보내기 일 수 였으니, 채이도의 분노는 관객에게 까지 동화되어 보는 내내 그의 분노와 답답함을 함께 느끼게 되면서,
살인마 김광일을 보호해야만 하는 국정원 소속 박재혁(장동건)과 김광일의 정보를 위해 보호를 택한 CIA에게, 관객의 극으로 치닫는 분노는 천벌을 내려 마땅함을 표출 시키기에 이른다.
사지를 찢어 고통속에 살게 해도 마땅치 않을 김광일. 그는 고통스럽게 처벌 받아야 한다.
배우 이종석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없었던 나는, 이 영화가 석연치 않았다. 불필요한 살인 장면의 묘사와 근래에 개봉한 영화에서 일부 문제로 거론되는 범죄 대상을 주로 여성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 또한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남성은 살인을 했었다에 그쳤으나, 여성은 살인 장면까지 필요 이상으로 묘사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범인을 방치하기만 하는 권력자들의 갈등과 시원하게 마무리 되지 못한 끝에 있었다. 갈증에 몸부림치다 시원한 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는 짜릿한 해방감이 있어야 하거늘, 마치 어리숙한 연애의 종지부 같은 찝찝한 느낌만을 남겼다. 물론, 그만큼 몰입할 수 있었던 영화라는 칭찬이 될 수도 있으나, 이번은 예외다.
이러한 류의 영화에서 내가 바라는 결말은 오직 하나, 고통을 준 자가 최소한 자신이 범한 고통 이상을 겪으며 최후를 맞이하길 바라는, 어리숙하다 할 수도 있으나 그런 확실한 결말이다.
하나, 영화는 그러한 결말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그저 막을 내린 스크린을 잠시 동안 응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영화가 주는 새로움 또한 있었다. 바로 이종석의 변신 이었다.
극 내내 다혈질적이지만 반드시 범인을 심판하기 위해서 수사를 이어가는 인물 채이도를 연기한 김명민도, 당장의 이익을 위해 행동을 하지만 정의감에 흔들리는 박재혁을 연기한 장동건도, 복수를 위해 김광일을 쫓는 사냥개 리대범을 연기한 박희순도 아닌, 20대의 젊은 배우 이종석 이었다.
과거 드라마 W에서 그는, 최대한 감정의 표출을 절제하면서 정의를 구현해 나가는 '강철'이란 인물을 연기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고정된 그의 이미지 범주 내의 이야기 일 뿐이었다. 하나, 이번 영화 VIP에서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나타났다.
'연쇄 살인마'. 20대의 이종석에게는 쉽지 않은 배역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 "순백의 피부에 마치 '선함'이라는 무형의 마음이 형태를 취하면 이러한 얼굴일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그의 얼굴이 과연 "악인을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그러나 기대 이상이었다. 권력자이며 악인이기도 한 김광일을 연기하는 이종석의 특유의 거짓을 모르는 백白의 미소와 흐트러짐 없는 눈빛은 되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처럼 서늘했다. 또 미소로 일관하면서도 순간 순간 패배감에 자제력을 상실해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은, 영화의 내용을 떠나 그의 연기에 감탄을 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살인마 김광일을 두고 벌어지는 세력의 대립이 주를 이룬다. 거기서 관객은 마치 투명한 막으로 감싸인 듯한 '김광일'이라는 인물 외에 박재혁과 채이도, 리대범에게 매 순간 감정이 동화되어 극을 함께 달려가게 된다.
영화를 봤거나, 보게 될 당신은 아마도 각각의 세력 속에도 동화되어, 저들과 다른 행동으로 범인을 대하겠다는 특별함과 구체적인 행동의 묘사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영화를 본 후에 찾아 올 석연치 않음에 몸부림 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난 영화를 보며 분석하고 판단할 만큼 조예가 깊지 않고, 또한 그러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저 영화가 주는 내용 속에 내가, 혹은 당신이 알았으면 하는 뜻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배우가 아닌 극 중 인물의 삶에 동화 되어 그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는 것이 유일하게 내가 영화를 보는 낙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VIP'는 배우들의 연기를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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