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VIE ESSAY

영화 ‘좋은 날’

사랑한다 내가 물었고, 사랑한다 네가 말했다.

by 전성배

평생을 떠난 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이 넓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 추억이란 걸 방대한 양으로 키워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여러 개의 추억보다, 몇몇과의 심도 깊은 기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 10명의 다양한 이를 만나기보다 한 두 명과의 유대紐帶를 더 귀이 여기며, 더 소중히 여긴다.


여행보다는 사랑하는 이들과 동네의 작은 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면서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떠난 채 살고 싶다."


제주에 잔잔함속에 평생을 묻은 채 살고 싶을 정도로, 영화는 내내 제주의 깊은 곳부터 가장 흔한 곳의 풍미까지 끌어내어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시킨다. 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평생을 방랑하며 살고 싶을 정도의 갈망渴望이 온몸을 휘감았다.


사랑하면 안 될 사람


사랑한 건 죄가 아니잖아 단지, 조금 늦게 좋아한 것뿐이잖아.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극 중 지호(소지섭)는 사랑하면 안 될 이를 사랑하고 있다. 아니 사랑하고 있었다. 하나, 이 아픔으로 영화를 이어가는 것이 아닌, 그러한 아픔을 지닌 남자 지호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길에 오르는 걸로, 영화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랑은 이면을 가지고 있다. 그와 나 사이에 감정이 아무리 지고 지결 하다 해도, 그 사랑이 제 3,4자에게 까지 혼탁해지지 않은 채 전달될 리 만무하다. 둘의 사랑으로 다치게 될 누군가는 생기기 마련이며, 둘의 이별로 득을 취하는 이 또한 생기기 마련이니까.


지호의 사랑은 전자와 후자를 오간다. 하면 안 될 사랑으로 종국에는 자신과 그녀까지 상처 입힌 채, 살게 되어버리니.

어둠이 싫어 빛을 밝히니 어둠이 사라졌다. 외롭지 않기 위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으나, 더 외로워졌다.

영화를 채우는 것


극중 지호는 러닝타임 내내 순간순간 질문 같은 독백을 던진다. 정확히는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닌, 홀로 질문을 던지며 답을 내는 혼잣말을 영화가 흐르는 내내 지속적으로 던진다.


그건 아마도 '단순한 영화의 소재' 탓으로도 보인다. 영화는 여행을 떠나 서로 호감을 갖게 된 이들의 감정 변화와 결실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의 높고 낮음은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하게 이어져, 긴장감이란 건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이 영화를 세상에서 가장 무미건조한 영화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나, 그럼으로써 표출하는 감성이 있다. 영화는 제주의 미美를 영상에 담는 것과 사랑에 대한 고찰을 던지는 것으로 단순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무게감 있게 이끌어 간다.

잠깐 만나고 불장난하는 것을 사랑하는 거라 하지는 않잖아, 성질 나쁘고 못생긴 놈이라도 사랑할 수 있었으면 고마운 일이고, 그도 나를 사랑해줬다면 더 고마운 일이지.

마지막으로


"평범하게 사는 것이 더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남들처럼 사랑하고 남들 만큼만 아프며, 남들 만큼만 살아간다는 게 얼마큼 힘든지. 과거에는 알 수 없었으나, 나이가 드니 평범함에 대한 고난이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어떠한 것도 특별하지 않고, 어떠한 것을 보아도 가슴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나이. 영화는 그 나이 먹은 마음을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어루만진다. 억지로 가슴을 후벼 파 이야기를 넣어두려 하지 않는다.


마치 바람이 피부를 치며 지나 날리 듯, 가장 잔잔한 주제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천천히 듣기만 하면 된다고, 천천히 당신이 곱씹는 다면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보다 더, 깊숙이 스며들 거라고.


그렇게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동요한다면, 자신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고 영화는 소리 없이 말한다.


사랑을 잃은 아픔으로 떠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단, 운명 같은 만남과 영화 같은 인연은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우니, 일말에 기대감을 갖고 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영화의 역할은 단 한가지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던지는 사랑에 대한 고찰을 개개인이 스스로 정의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


자신의 사랑을 되뇌어 보길 바란다. 이별은 괴로우나, 사랑을 멈추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영화 '좋은 날'이었다.


(정식 극장 개봉 영화가 아닌, 네이버 라인이 주관하여 제주도 홍보 용도로 제작한 수출용 웹드라마를 영화판으로 편집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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