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제와 정가·수의매매

스스로 값을 메길 수 없는 노력

by 전성배

겨울의 찬바람에 이 여린 것들이 죽지 않도록, 이 시간을 잘 버텨내어 봄을 맞이해 싹을 틔우고, 여름과 함께 만개하길 바라는 농부는 사람을 키우는 부모를 넘어 생명을 키우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세월을 공들여 작물을 키워낸 농부의 입지는 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맙니다. 자신의 노력과 시간들이 단순히 작물의 품질뿐 만이 아니라, 당일 수급량에 따라서도 판가름 나기 때문인데요. 무엇보다 가장 씁쓸한 이유는 이 유통 과정 안에서 농부의 입장은 반영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30년을 넘도록 이어져온 도매시장의 <경매제>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농산물 유통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출하자가 도매시장에 물건을 입하시키면 각 도매시장 내의 도매법인에 소속된 경매사들이 중간 도매업자들을 상대로 경매를 치러 적정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면, 중간 도매업자는 소매업자 혹은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는 구조인데요.


과거 공정한 거래 과정을 위해, 물량과 가격의 투명성을 위해 도입된 경매제는 긴 세월 동안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농산물을 직접 키워내는 농민의 입장은 한없이 작아진 채, 당일 도매시장의 수급량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은 매일매일이 다른 것은 물론, 등락폭도 굉장히 컸었죠. 이 문제점을 업계도 모를 일 없지만, 경매제보다 더 이상적인 방법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2010년, 배춧값 파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던 파동은 더 이상 경매제의 단점을 옹호할 수 없게 만들었고, 정부는 2012년에 정식으로 정가·수의매매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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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수의매매>란 기존에 입지가 좁았던 농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출하자인 농부와 실직적인 구매자가 서로 협상하여 가격을 정하는 제도를 말하는데요. 이 중 <정가 매매>는 출하자가 사전에 가격과 물량을 정해 중간에 위치한 도매법인에게 제시하면 도매 법인은 이를 바탕으로 구매를 원하는 구매자를 찾아 연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수의 매매>는 도매법인이 출하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거래 조건을 받아 가격과 수량을 정해 다시금 출하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방법을 말하는데요. 이는 또 출하 당일 혹은 전날에 결정하는 <일반 수의 매매>와 출하 2~3일 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두고 거래 조건을 정하는 <예약 수의 매매>로 나뉩니다. 예약 수의 매매는 상대적으로 일정 기간을 두기 때문에 출하자와 구매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죠.


이러한 정가·수의매매의 특징은 경매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도매시장의 상품 입하와 정해진 경매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일찍이 일본은 이러한 장점들을 수렴해 1999년에 정가·수의매매를 도입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농산물 가격의 등락폭이 경매제와 달리 확연히 줄며 안정적인 가격 형성이 이뤄진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계속해서 적극적인 정책을 통해 최근에는 일본 동경청과에 경우 90% 이상이 정가·수의매매를 통해 이뤄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우리나라가 이 정책을 펼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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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과 시간이 경매제와 달리 많이 소모된다는 단점 때문입니다. 정가·수의매매는 아무래도 출하자와 구매자 양쪽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경매사의 역할이 기존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경매제는 도매법인에 소속된 경매사가 지속적으로 산지로 내려가 상품을 소싱하여 약속된 시간에 출하자가 도매시장에 상품을 입하 시킬 수 있도록 유도한 후, 경매사는 자신이 소속된 도매 법인 내의 중간 도매업자를 상대로 좋은 가격에 거래될 수 있도록 경매를 치러 낙찰된 가격을 출하자에게 통보하는 업무가 주 였습니다, 반면 정가·수의매매는 상품 소싱은 물론 서로 다른 출하자와 구매자의 의견을 계속해서 조율하고, 그것을 위해 막대한 정보력도 갖춰야 하기에 경매사의 역량과 시간을 더 필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거래 물량과 가격의 공개로 인한 타업체의 불만의 요지도 배제할 수 없고 무엇보다 출하자와 구매자 간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경매제와 달리 상품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 채 거래되는 경우가 더 많은 정가·수의매매는 전적으로 상품의 품질을 출하자에 대한 신뢰에 의지해야 합니다.


현시점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러한 단점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전히 경매제를 주로 하여 농산물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기존 경매제 보다는 농민의 입장이 보다 반영될 수 있는 정가·수의매매는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한 경매사가 인터뷰에서 "판매 가격을 제조자가 정할 수 있는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구매자가 가격을 정한다는 것에 마음이 무겁다"라고 말했듯이 더 이상 그런 일이 없도록, 전적으로 농산물의 생명을 책임지고 키워내는 농부가 가격을 정하는데 있어 본인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경매제 든 정가·수의매매 든 그저 농산물이 농민과 구매자 모두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여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자에게 닿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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