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생을 모든 순간 기로에 던져둔 채 선택하라 강요하지만, 탄생과 고통, 죽음만은 그러지 않았다."
안락사, 말 그대로 편안한 죽음을 의미하는 의도적 죽음. 우연히 매체를 통해 2016년과 2018년에 우리나라 남성 각각 한 명이 자발적인 죽음을 위해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의도대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죽음을 택한 그들 중 한 명은 말기암 환자였으며,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고통 속에 보내는 것보단 끝내는 것이 낫다 판단하여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택한 거라 생각된다. 다른 한 명도 이와 비슷한 사연을 갖고 생을 의도적으로 멈췄을 것이다.
(지금부터 '안락사'가 아닌, '존엄사'로 그 단어를 대체하겠다)
수년 전부터 이미, 존엄사를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나라들은 하나의 의견으로 존엄사를 법적으로 허용했다.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불치의 환자에 대하여, 본인의 선택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은 개인이 선택해야 한다는 권리의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연명을 위해 고통 속에서 치료를 받다 가족과 마무리할 기회조차 없이 생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만큼, 환자에게 큰 슬픔은 없다"
존엄사를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와 그 죽음을 도울 무통의 약물까지 등장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이전까지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였고, 그것은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만큼 막연했으니까. 또한 존엄사를 시행하는 나라는 외국인에게는 존엄사를 금지했기 때문에 더욱 와 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스위스만이 유일하게 외국인의 존엄사까지 허용했고, 자국민과 마찬가지로 심사를 통해 이를 시행함으로써 무분별한 죽음을 예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우리나라 국민이 스위스에서 스스로 존엄사를 택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자발적 죽음을 금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윤리적으로 어긋난다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죽음을 선택하는 것 또한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 중 하나라 주장하지만, 이를 시행할 경우 'slippery slope' 미끄러운 경사면처럼 한 원칙이 무너짐으로써 도미노처럼 다른 원칙들이 무너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었다.
사실 불안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환자가 고통을 동반한 불안이나 공포감에 쫓기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에 자칫, 충동·감정적으로 죽음을 택할 수도 있다. 또 가족에게 전가되는 경제적·정식적 고통이 자칫 환자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떠밀리듯 죽음을 택할 수도 있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각각의 생명이 가진 크기만큼, 그것이 지켜져야 하는 윤리로 나뉘어 서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현재 우리의 상황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2017년에 법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했다. 회복이 불가능한 불치의 환자를 대상으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의료 행위와 산소, 물, 영양분의 공급은 지속하되, 치료를 위한 무의미한 의료 행위는 환자 스스로가 거부할 수 있음을 말하는 법안이다.
앞으로도 존엄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담론은 펼쳐질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공론화될 것이라 생각된다. 현재 허용된 법률을 보아, 아마도 언젠간 존엄사에 대해서 법적으로 더 완화된 조치가 취해질 것이고, 우리는 죽음을 선택한다는 권리에 조금 더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그럼 권리와 윤리의 싸움에서 결국은 권리가 윤리를 앞설지도 모른다.
생이 귀하다 말하며,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모순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어느 위치에 서야 하는 걸까. 우리는 의도적이든 그러지 않든 결국 어느 한쪽의 주장에 설 것이며, 이를 표출하느냐 속으로 삼켜 생각하냐의 차이만 가질 것이다. 통일에 있어 반감과 호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반감과 호의, 범죄를 막기 위한 범죄 행위의 찬반론과 같은 이분법적 사안에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한쪽 의견을 택할 것이다.
나는 어디에 서야 하는 걸까. 죽음을 지켜야 하는 걸까, 죽음을 주장해야 하는 걸까.
확실한 것은 이 죽음의 주제 앞에서 활력을 갖은 나의 생이 새삼 감사하다는 것이다. 나의 생에서 내가 건강하다는 것. 죽음과 생존 사이에서 조금은 자유롭다는 것은 진정, 감사한 일이다. 이 또한 행복의 갈래 중 또 하나를 찾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동시에 그 존엄사 앞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깊이, 이 슬픈 마음을 전해야 한다. 어떠한 말도 함부로 남용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이 또한 함부로 일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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