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죽이는 사람들

by 전성배

"상처를 받았고, 그것에 치유를 위해 부단히 오늘도 하루를 보내며 새살을 기다린다. 원치 않았던 상처였으나, 분명 나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 상처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 또한 나의 업일 것이다. 그러니 상처를 받은 것이 억울하지는 않다. 나의 상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 하여 서러운 것도 아니다. 나에게서 비롯된 상처를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겠는가, 죄 많은 삶이라 해도 반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상처가 타인을 해害했던 적이 있었던가. 나의 상처로 누군가가 할퀴어져 피인지 눈물인지 모를 뜨거운 것을 흘렸나, 결코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칼날을 들이 밀어 상처를 낸 사람만이 아니라, 나의 상처의 깊이까지 궁금해하는가. 왜 이 상처의 깊이와 상처를 낸 방법을 목메며 찾는 것인가."


현재 대한민국은 일명 '승리 게이트'라는 연예계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각종 의혹들이 난무하고 밝혀진 사실만 해도 성접대, 마약, 도촬, 음란물 공유 등 평소 입에 담을 수 없었던 것들이 태반이다. 그중에서도 정준영이 채팅방에 공유했던 직접 촬영한 음란물이 요즘 가장 큰 화제라면 화제일 것이다. 나는 특별히 연예계의 사건 사고에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우연인 것일까? 연예계의 큰 사건이 터질 때면 정치적으로 시끄러웠던 문제들은 조용해지고, 사람들 입에는 온통 연예인의 이야기만 오르내린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 때문에라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것이 인위적인 무언가가 개입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지난 장자연 사건 때도 이와 비슷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고, 최근 정치적으로 이슈인 여러 문제들이 분명 기사화되어 알려지고 있음에도, 정작 티브이 방송과 대형 매체의 뉴스거리는 온통 연예계 이야기다. 마치 덮으려는 뉘앙스다.


그래서 관심을 최대한 갖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SNS를 하다 보니, 각종 광고나 지인들이 공유하는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요즘 화젯거리에 대해 듣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중에서 나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대목이 바로 불법 촬영물이었다. 사건의 내용은 가수 '정준영'이 자신이 활동하고 있던 그룹 채팅방 일명 '단톡방'에 자신과 성관계했던 여성을 찍은 촬영물을 공유하고, 뿐만 아니라 촬영한 여성을 비하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연했던 것이 바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촬영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불어 그 여성이 누군지 인지 찾는 데에도 혈안이 된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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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에는 내가 모르는 이해관계도 얽혀있을 것이다. 그 여성을 찾음으로써 연루된 피의자를 추가로 찾아 벌할 수도 있을 것이고, 여성이 밝혀짐으로써 그 여성에게 간 피해를 어떻게 해도 보상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의 보상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이 과연 그녀가 바라는 것일까.


그녀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촬영물이 도촬을 통해 촬영된 것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안일했던 그녀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촬영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일거리 마냥 공유되어 평가되었다는 것은 그녀에게 크나큼 고통일 것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몸이, 게다가 그런 관계 영상이 타인에게 보이는 것만큼 치욕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 같은 일은 살면서 형태는 다르나 비슷한 결로 무수히 나타났었다. 이와 같은 사건만이 아니라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라면 하나같이 언론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를 찾았다. 피해자를 찾아 보상하기 위해 혹은 수사의 진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단순히 누가 피해를 받았는지 궁금해 찾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괴롭힘을 당한 학생이 선생님의 명령 아닌 명령으로, 어떠한 피해를 받았는지 학생들에게 말하던 모습은 참으로 참담했다. 그것을 말하며 울먹이던 학생의 심정은 어땠을까. 반드시 모두에게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 보여야 했을까.


또한 이와 비슷한 슬픔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도 있다. 당시 백화점 경영진과 함께 연루되었던 공무원들에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욕심으로 인해, 붕괴 직전까지 영업을 하다 수백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낳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에 그 사고 속에서 천운으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됬었다. 하지만 최근 그들의 인터뷰 영상을 봤을 때 그들은 절대 기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관심은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이던 나날 동안 끝없이 자신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했던 자신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 뻔뻔히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로 비난 아닌 비난이 끝없이 자신들을 옥죄여 오는 것으로, 죽음보다 더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었다.


그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들어야 할 사람들은 철창의 동물과 다를 바 없는 구경거리 취급과 비난까지 받았다. 어찌 피해받은 사람들이 더 괴로움에 허덕였어야 할까.


정준영 사건의 피해자가 어찌 그런 사람들과 같은 피해겠냐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피해의 크기를 똑같이 보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사건이든 피의자를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까지 괴롭히는 행위의 그릇됨을 말한다. 어쩌면 우리가 피해자를 더 궁지로 모는 것일지도 모른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의 인터뷰 중 마지막 말이 잊히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괴로움이 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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