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사람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by 전성배

동인천에 위치한 신포시장을 등지고 길 건너를 바라보면, '가구·웨딩거리'라는 큼지막한 이름이 이곳이 입구라 말하며 서있는 것이 보인다. 그 입구를 진입해 작은 사진관 하나와 카페를 두세 개 정도 지나면 '애관극장'이라는 오래된 영화관이 나오는데, 그곳을 지나 또다시 몇 분을 더 걸으면 본격적으로 가구를 취급하는 가게들이 나온다.


가게들 대부분이 큰 간판을 내걸고, 가구를 판다며 소리 없는 고함을 지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텅 빈 껍데기만이 전부다. 온통 폐업을 한 뒤 빈 점포만 덩그러니 흔적을 지킬 뿐이다. 아직 남아있는 점포보다 빈 점포가 더 많은 곳.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인도 위에 차가 줄줄이 서있고, 밤이 되면 노란색의 가로등만 드문 드문 빛나는 통에 조금은 무섭기도 한 그 길은 과거,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로 부적이던 곳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변모한 것일까. 사실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야 말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는 표현을 써야겠다. 참 슬프고도 아쉬운 문장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절절히 통감하는 하는 말. 젊음은 어떠한 재화보다 빛나는 것이고, 나이가 들어간 다는 건 물살에 부서지는 모래성보다도 나약하고 쇠약해지는 거라 넌지시 건네는 말. 동인천의 그 거리에는 아니, 동인천 전역에는 지금 이 말이 구석구석 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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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중력을 두고, 모든 물체가 가진 각각의 질량과 거리 등이 영향을 미쳐 서로를 잡아당기는 인력이라 설명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발생하는 원리에 대해 좀 더 근본적으로 접근했는데, 질량을 가진 물질이 공간을 왜곡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적은 질량을 가진 물질이 굴절된 공간에 머무는 것이라며, 행성의 공전을 함께 설명했다. 더 깊이 있는 이야기는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더 다룰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장소와 사람의 사이에서 만큼은 절대적인 인력이 작용한다 생각한다.


어렸던 과거의 나는 지금의 동인천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이 심심하고 따분해 도시로 떠나고 싶었던 어릴 적 기억이 재발한 듯, 동인천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모름지기 사람이 북적이고 예쁜 가게들과 먹거리가 넘치는 곳이야 말로, 가장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동인천이 가진 특유의 향을 맡기 시작했다. 손길이 끊겼던 다락방의 매캐한 냄새와 비슷한 향을 동인천에서 느끼기 시작했다. 한적하고 허물어진 빈 점포가 즐비한 곳에 숨은 보석처럼 나름 치장을 한 가게들이 눈에 띄었고, 사람에 치이기 바빴던 번화가와 달리 동인천은 발걸음을 천천히 내딛어도 누구 하나 보채지 않아 여유롭게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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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동인천의 질량들. 과감히 달리는 통에 주변을 살피지 못함이 젊음이라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속력이 조금 줄어드는 대신,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여유와 질량의 크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아닐까.


영광은 바래고 측은한 흔적만 남은 그 거리는 지난날의 나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을 거듭할수록 동인천의 질량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그곳을 다니다 보면 또래의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그들은 동인천이 세월을 등에 지고 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증인들이다.


한 때 빛나던 것은 바래지기 마련이다. 젊음은 저물기 마련이고 힘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모든 것은 거대한 것에서 작은 것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대신 저물어 가는 것은 서로를 당기는 힘이 생긴다. 서로에게 끌려 다시금 그 장소, 그 시간, 그 사람을 찾게 한다. 그럼 또다시 반복된다. 과거의 영광이. 새로운 시간과 함께 당겨진 사람들에 의해.


시간이 교차한다. 혹은 시간 위에 시간이 덮인다. 영광은 과거의 것이나, 바래진 그곳에 시간이 겹치면 영광은 되풀이된다. 나는 오늘도 동인천을 간다. 그곳에 향을 맡으러, 사랑하는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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