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다큐 프로그램을 보며)
귀를 찢는 듯한 매미의 울음소리. 살갗을 빨갛게 데우는 태양의 강렬한 열기가 풀숲에 내려앉는다. 매미의 울음소리와 햇빛을 가둬둘 수 있는 건 무엇 하나 없지만, 이것들은 스스로 땅에 주저앉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어느 풀숲을 이야기한다. 숲에는 나무판자와 누렇게 변색된 시멘트로 작은 공장임을 자칭하는 건물이 자리 잡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푸른 자연과 달리, 피비린내와 함께 뱀이 죽어가는 역한 냄새가 동시에 풍겨 나왔다. 그곳은 '뱀 공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세계적으로 비싼 값에 거래되는 가죽제품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무늬와 촉감으로 알려진 뱀가죽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매일 아침, 사람들은 자신들이 잡은 뱀을 자루와 망 같은 허름한 주머니에 담아서 공장 앞에 내려둔다. 그럼 공장 사람들은 그 뱀들을 쏟아내, 크기와 무게별로 구별해 판매자에게 일정 값을 지불한다. 간혹 크기가 크고 특이한 무늬를 가진 뱀은 좀 더 비싼 값에 거래된다.
거래가 끝난 뱀은 공장 사람들이 몇 개의 방법으로 살생을 시작한다. 뱀 몸의 중간을 꽉 움켜쥐고 벽을 향해 머리를 강하게 내리쳐 죽이기도, 드럼통에 뱀이 담긴 자루를 넣고 무거운 돌을 얹힌 다음 물을 가득 채워 수백 마리를 동시에 익사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죽은 뱀들의 가죽을 벗겨 세척 후 말리고, 살덩이는 삶아 다른 용도로 가공하여 재판매한다. 세계에 퍼져있는 뱀가죽의 대부분은 이러한 곳에서, 피비린내와 잔혹함 사이에서 탄생된다.
뱀을 죽이는 과정에서 물리기는 비일비재고, 수년을 일했지만 역한 모습과 냄새에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보인다.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삶의 현장. 그 모습을 시청하던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무슨 말을 했을까.
사람의 잔인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욕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약육강식의 세계라 한들, 어찌 저리 잔인하게 동물을 죽이고 이득을 취할까. 혐오스럽다 욕하는 사람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니라. 수요가 없다면 애초에 뱀의 죽음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필요에 의해 죽여야 했다면 최소한 잔인하지 않게 편히 죽였어야 했으나, 보았던 모습은 무자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살기 위해서 선택지 없는 의무로 피와 죽음에 뒤섞여 살아간다. 그렇기에 마음은 잔혹하다 여길지 언정, 그들을 향해 비난을 뱉을 수 있을까.
그들을 보며 불현듯, 우리가 가진 과거의 역사가 떠올랐다. 이토록 잔인하진 않았으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시대도 이만큼 처절했으리라. 굶지 않는 것이 우선이었고, 나의 가족이 조금이라도 평안한 것이 최대의 목표였던 어른들은 타지·타국 땅에서 처절하게 죽기 살기로 일을 하며, 가족에게 더 크게는 나라에 기여하기 위해 일평생 온몸을 던졌다.
뱀 공장에서 십 수년째 일을 하고 있다는 25살 그을린 피부의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2살 안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아내는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떠났기에 혼자서 돌보며 이 일을 하고 있죠. 전 돈이 없어 학교를 가지 못했지만, 서럽지 않습니다. 나만의 그런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나 또한 이 일이 괴롭고 힘들지만 묵묵히 임할 뿐입니다. 저축을 위해서. 그 돈으로 나의 자식만큼은 되고자 하는 모습,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받쳐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일합니다."
25살의 청년. 나보다도 4살이나 어린 그의 말이 티브이를 빠져나와 나의 귀를 지나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릴 적부터 아니 현재도 현시대의 청년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수두룩하다"일 것이다. 윗사람 혹은 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 스스로를 단정 짓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괴로움이나 시련, 슬픔과 같은 감정만큼 상대적인 것은 없다 생각하기에 특별히 그 말을 귀에 담지는 않지만, 25살 청년의 말은 지체 없이 마음을 파고들어 가감 없이 나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했다.
"과연 나는 그러한 삶을 살며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까. 그만한 무게가 주어졌을 때, 나는 내 모든 걸 걸고 지탱하기 위해 온 삶을 다 받칠 수 있을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두렵고 자신이 없기에, 되려 그런 질문을 받을까 고개를 숙이고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지금이 불행하다면 더 힘든 사람을 봐라. 이겨낼 수 있다"같은 무책임한 말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말한다. 나의 시련과 슬픔보다 더 큰 아픔은 수시로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집어삼키려 든다는 것과, 먹이사슬 속에서 악착같이 버티며 자신과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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