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특이점에 닿으면 인공지능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해질 만큼, 인공지능 자체가 자아를 갖고 행동하게 될 것이라 한다. 어느 영화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던, 인간의 뇌를 스캔 및 데이터화하여 특별한 장치에 저장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의식을 옮기며 영생하는 그림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즉, 미래의 기술은 죽음까지도 관여할 수 있게 되며, 감히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또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건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현재는 수많은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유일무이하다 여겨지던 가치들은 미래로 갈수록 희석되어 더 이상 우리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됨을 말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과 인공지능을 인공지능답게 하는 것에 경계가 미래에는 어떻게 무너질까.
그리고 그것을 넘어 인간의 오랜 염원이었던 불로불사의 실마리가 되어줄 전뇌화는 과연, 우리를 인공지능과 구별할 수 있게 할까. 아니 앞서 전뇌화된 인간의 자아를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테세우스의 배'라는 논리가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인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에 귀환할 때까지 함께했던 배를, 아테네인들이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하면서 나타나게 된 난제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낡은 판자를 떼어 버리고, 새로운 판자로 대신하여 수리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배를 보존했는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 것이, "과연 이 배가 언제까지고 테세우스의 배일까."라는 것이었다. 낡은 판자를 떼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끼는 작은 작업들로, 이 배는 더이상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계속해서 이러한 작업들을 이어가면 어느 시점부터는 최초에 테세우스의 배를 유지했던 조각들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데, 그때 그 배를 과연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였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그 본질과 의미에 대해 어상반하게 갈렸다. 또 이 논리는 배를 넘어 여러 형태로 변주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를 예로는 배의 낡은 조각들을 떼어낸 것을 버리지 않고 모아 다른 장소에 테세우스의 배를 그대로 재현 한다면,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가 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지극히 논리적인 측면으로도, 지극히 감정적인 측면으로도 이는 확고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는 테세우스의 배 만이 아니라, 과거의 건축물이나 유물을 유지 보수하며 지켜가는 각 나라, 각 지방에게도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화재 사건 이후에 재건 사업을 통해 다시 우뚝 선 숭례문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계속해서 유지 보수되고 있던 배야말로 테세우스의 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일하게 역사를 발판 삼아 나아가는 생명체다. 과거의 것을 새겨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과거의 유물을 지키는 것이, 역사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의 업이다. 그렇다면 이 평생의 업이 단순히 현물을 지키는 것일까, 나는 그 이상의 깊은 것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대는 변해도 선조의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는 현 인류에게 있어, 남은 과거의 유물은 보다 선명하고 확실한 이야기를 듣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지 않을까. 부부가 자식을 낳아 사랑과 지식을 전하며 생을 다할 때까지 돌보는 과정의 무한한 반복으로, 우리는 머나먼 과거를 듣고 배우며 자라왔다. 유물과 서적, 건축물 같은 것은 그저 그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이정표 정도 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유지하며 더 깊은 곳에 있는 정신과 사연이 온전히 전해지겠끔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전통과 정신, 마음이 현물에 구애를 받는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들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필멸과 육체로의 존속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siview market / siview instagram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