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가 원한 삶 / 어벤져스 : 앤드게임 (스포주의)

by 전성배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남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기분과 안전, 업력이 가장 중요했던 그에게 '동료'라는 의미와 '수호'라는 무게감은 알 수 없는, 알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11년 전, 피랍되어 갇혀있던 동굴에서 '희생'을 보았다. 바로 테러리스트에게 가족을 잃었던 앙센이란 인물이 자신의 탈출을 위해 함께 갑옷을 만들고, 시간을 벌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희생한 일이었다.


"토니, 이제서야 난 가족을 만나러 갑니다. 당신도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길 바랍니다."


토니는 자신의 생사가 오고 가던 그 어둑한 동굴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닌, 하나의 큰 무게를 알게 되었다. 한 생명의 무게와 자신을 위해 희생한 거대한 의미의 무게감을. 그날 이후, 그는 여전히 자신의 멋과 거만함에 취해 있었으나, 자신의 역할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인물이 되었다. 바로 11년이라는 수호의 길을 스스로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숱한 위기가 자신과 자신의 땅, 동료들에게 찾아왔다. 작게는 도시의 위기, 크게는 지구, 나아가 범우주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때마다 자신이 차근차근 준비했던 계획들을 토대로 타파해 나갔다. 거기에서 진정 자신의 평생의 사랑을 깨닫기도 했고, 그녀를 위해서 자신을 내던지는 대범함을 보였다. 하지만 진정한 위기는, 자신만의 어긋난 신념으로 온 우주를 뒤흔들려 하는 타노스의 등장이었다. 지키기 위한 희생은 필연이므로, 모두가 살기 위해선 반은 희생되어야 한다고 말하던 타노스. 토니는 수년간 찾아왔던 위기의 배후가 타노스였음을 은연중에 이미 알고 있었고, 그의 등장과 그의 행보를 이미 예상했으나, 삽시간에 최종 계획의 절차를 밟아 나가는 그의 힘에 자신의 대비책은 무용지물임을 깨달았다. 머리에는 피가 흘렀고, 배에는 칼이 지나간 흔적이 선명했으며, 순간순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공격에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아가 그를 막아섰지만, 결국 전 우주에 퍼져있는 생명의 반이 소멸하는 최악의 상황을 대면한다. 그 안에는 마음으로 깊이 감싸 안았던 피터의 소멸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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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엄청난 자괴감과 불안, 슬픔에 빠졌다. 피터를 죽게 만든 죄책감과 동료들의 안위, 연인 페퍼의 생사가 불안했다. 식량이 바닥나 온몸이 마르고, 산소는 불과 하루밖에 남지 않은 채 유영하던 우주에서조차 자신의 죽음만은 의연해 하면서, 타노스를 막지 못한 자신의 무력함을 탓할 뿐이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타노스와의 전쟁에서 완패하고 수많은 것을 잃었으나, 우주에서 죽기 직전에 새로운 동료인 덴버스의 도움으로 토니는 지구로 귀환할 수 있었고, 살아있는 페퍼를 확인하고 안도했다. 그로부터 수 년의 시간이 지난 뒤, 토니는 자신과 페퍼 사이에 태어난 딸아이 모건과 함께 산속에서 조용히 살게 되었다. 많은 것을 잃었으나, 그 안에서 얻게 된 이 작은 행복만이라도 지키며 살자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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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하나의 기회가 생겼음을 알게 된 스티브는 나타샤, 스캇과 함께 토니에게 찾아가 이 기회를 말했다.


"토니, 이것은 모든 것을 되돌릴 마지막 기회야. 결단을 내려야 해."


토니는 스티브가 말하던 확신 없는 기회에 남은 것마저 잃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었고,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어둠을 헤매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을 지킬 수는 없어. 나의 마지막 기회는 페퍼와 모건과 함께인 이곳에 있어. 이것만은 지켜야 해"


하지만 말과 달리 그는 이미 그럴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한 생명의 무게와 그 생명이 사랑했던 가족. 남은 사람들의 망가진 삶을 보며 사라진 동료를 떠올리니, 자신의 역할이 아직 남아있음을 직감했다. 이 모든 것을 되돌릴 하나의 수를 확실하게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으니,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것이었다.


"페퍼, 찾았어. 시간 여행의 단서를. 당신이 원한다면 그냥 이대로 살아도 난 상관없어. 마음 같아선 이 모든 걸 강물에 던져버리고 당신 그리고 모건과 함께 지금처럼 살고 싶어"


"토니, 언제나 당신을 막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어. 당신의 말처럼 모든 걸 강물에 내던진다 해도, 당신이 편히 잠들 수 있을까"


토니는 남은 동료들과 함께 시간 여행을 이용한 '시간 강탈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과거의 시간에 존재하는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새로운 건틀릿을 만들어 사라진 생명을 현재로 데려오자는 이 플랜은 불가능한 계획일 것 같았지만, 나타샤의 큰 희생으로 계획은 성공했고, 사라진 생명은 되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끈질기게도 과거로부터 쳐들어온 타노스는 생명의 반을 없애는 것이 아닌, 온 우주를 부수고 재창조하겠다는 목적으로 인피니티 스톤을 빼앗으려 했고, 그와 주먹을 맞대던 토니는 드디어 스트레인지가 보았던 14,000,065개의 경우의 수 중 단 하나의 승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자신이 직접 타노스를 죽이는 것. 그로써 그의 계획을 영원히 멈추는 것이었다. 토니는 죽을 걸 알면서도 자신의 오른손에 스톤을 박았고,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손가락을 튕겼다.

나는 아이언맨이다.

아이언맨의 시작을 알린 문장이 그의 끝을 알리는 문장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으며, 그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것이 영화 '어벤져스 : 앤드게임'의 끝이며, 11년 동안 20여 편이 넘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그렸던 마블의, 아이언맨 토니의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다. 마블은 지난 11년 동안 히어로라는 인물들의 삶을 단편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해 보여주었다. 다른 영화와 차이점이라면 마블의 수십 편의 영화는 모두 긴밀하게 연결된 채 11년을 달려왔다는 것이다. 여타 영화들처럼 하나하나가 독립된 작품이었다면, 이토록 강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블의 지난 10년의 영화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부족한 캐릭터의 서사와 그 캐릭터들만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섬으로 만들어 바다에 퍼진 섬에 각각 다리를 연결했고, 그로써 많은 시간을 얻어낸 영화로 차근차근 캐릭터들의 삶을 우리에게 긴밀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토니와 스티브의 삶이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수십 편에 달하는 영화의 수만큼, 토니의 아이언맨으로써의 삶은 참으로 유구했다. 그렇기에 현실의 우리는 자칫 지루할 수도, 때때로 그의 삶에 대해 흥미를 잃을 수도 있었겠지만, 마지막 토니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던 우리였으니,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화의 크레딧이 나오는 동안 그의 일생을 돌이켜보니, 그 장대한 이야기들이 짧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마치 우리의 삶과 비슷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시계를 보며 초침을 하나하나 새는 것만큼 막연하고 지루할 정도로 길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일 년이 되고, 그 일 년이 수십 개가 쌓이고 나면 문득, 모든 시간들이 찰나였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지난 시간들이 아쉬울 때가 많다. 마블의 영화가 보여준 토니의 10여 년의 역사도 이와 비슷하다. 한 편 한편을 헤아렸을 때는 조금은 길고 지루하기까지 했지만, 앤드 게임에서 보인 그의 마지막은 마치 우리의 삶처럼, 지난 시간이 찰나였음을 느끼게 하며 우리를 아쉽게, 또 슬프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의 죽음이 참으로 깊고 무겁게 다가온다.


자칫 그의 죽음이 불행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토니 자신만큼은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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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앤드게임이 다룬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가 단순히 타노스가 일으킨 사건을 되돌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채택한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을, 과거로 간 토니가 아버지 하워드를 마주친 장면에서 확신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토니에게 있어 평생의 애증이었으며, 후회였다. 살아생전에 제대로 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고, 냉철했던 아버지에게 실망만을 안겼었다. 그리고 그 응어리는 페퍼와 결혼을 하고, 모건을 낳으며 더 깊고 무거워졌다. 그런데, 과거로 떠난 그 시점에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하워드를 만난 토니는 잠깐의 대화를 통해 그것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하워드가 곧 태어날 자신에게 가진 불안과 남모를 애정, 부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헤어지기 직전에 하워드를 껴안으며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주어 감사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토니가 가진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시간 여행은 그의 마지막을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자신과 동료, 지구를 목 조르던 타노스를 죽음으로 이끌었으나, 자신 또한 희생해야 했던 토니의 운명은 기구했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 한 사람으로서 가장 지키고 싶었던 로디와 피터, 페퍼의 안전을 차례로 확인했으니,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안식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토니, 이제 괜찮아요. 이제, 편히 쉬어요"


페퍼는 알고 있었겠지. 그 날밤, 시간 여행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토니의 말에 자신은 당신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다녀오라 말하면서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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