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날 때면, 생경한 거리를 걷습니다. 후미지고 낡은 건물이 즐비한 틈을 찾아서, 일부러 길을 돌아 돌아 걷습니다. 그 사이 생각을 비집는 가요보다는 가사가 없는 경음악을 들으며 걷습니다. 적당히 따스한 햇살과 머리칼을 헝클지 않는 적당한 바람이 부는 오후에 갖는 이 시간은, 평화라는 단어에 가장 근접해 있죠.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를 말합니다. 혈류를 가속시키는 흥분과 분노, 등골을 타고 흐르는 조급함 따위는 무색한 상태. 그것도 평화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가 서로를 향해 칼을 들지 않고, 빈손을 서로 맞잡는 것만이 평화가 아닌 것이죠. 하지만, 수시로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일부 지역의 분란과 내란에 의해 평화란 오직, 싸우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고유명사가 된 것 같습니다. 싸우지 않는 모습만이 평화가 되어, 실제로 그 안에 살아가는 국민 개개인의 치열한 삶은 대의에 의해 무의미하게 되었고, 나라와 나라의 분란만 없다면 모든 것이 괜찮다는 듯 흘러갑니다. 정작 먼저 이뤘어야 할 개인의 평화는 대의에 묻혀버렸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나라가 평화로워야 국민도 평화롭다고. 그러나 이는 반대로 국민이 불행하다면, 나라는 결코 평화로울 수 없음을 뜻합니다. 국민과 나라는 긴밀하게 연결된 채 서로의 평화를 위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진정한 평화일 테니까요. 단, 국민의 평화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의 평화는 온전한 국민의 평화가 될 수 없지만, 국민의 평화는 온전히 나라의 평화가 될 수 있으니까요.
나라가 외세에 맞서 땅의 울타리를 지키고, 국민을 감싸 안아 안전하게 살도록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이를 잘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개인의 평화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우리는 혹시 조급함과 치열함, 시기라는 단어에 침략당한 채 식민인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요.
마음이 불안한 삶. 결코 그것을 평화롭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 그렇다 한들 불안을 배제하고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삶을 꾸리는 것 또한 평화라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치열하게 살되 반드시 자신의 평화가 될 시간을 혹은 누군가를 만들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나의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치열하고 조급하고 불안했다 한들 아주 잠깐 주어지는, 내가 정의한 평화의 시간을 만끽하며 행복을 느낄 때, 그만하면 개인의 평화를 이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라의 의무는 국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의무는 스스로 자신만의 평화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필멸자의 삶을 사는 우리는 불행하게 태어난 만큼, 삶은 불가항력의 힘으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고 있으니까요. 그 흐름에 몸을 싣고 평화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저의 평화는 한산한 오후에 있으며 행복은 그 사람에게 있으니,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 맞을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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