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스한 갈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는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한 듯, 눈은 퀭하고 눈 밑은 꽤나 어두웠다. 긴 손가락과 큰 키를 가진 마른 체형의 그녀는 누가 봐도 피곤에 찌들어 보였고, 그러한 것들이 오묘하게 섞여 표현하기 힘든 서늘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보통 혹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하게 보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그러한 행색으로 다니게 된 것일까. 이유는 누구도 믿지 않을 무형의 힘이 그녀를 옥죄였기 때문이다. 큰 눈과 흰 피부, 둥그런 얼굴형을 가지고 순박한 목소리를 내던 그녀는 원치 않았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듣게 되었음에 형편없는 몰골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영혼을 본다. 우리가 흉凶이라 말하며 불길하다 여기는 귀신을 본다. 이름은 태공실. 수년 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주군의 태양'의 여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는 이유를 모른 채 어느 날부터 귀신을 보기 시작한 여자와, 그녀와 스치기만 해도 눈에 보이는 귀신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남자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코미디물로, 방영 당시 꽤나 인기를 끌었기에 몇 편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전체 줄거리는 잘 모르지만 그때 당시 드라마를 보며 하나는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귀신이라는 소재가 여전히 형평 없는 형태로 쓰이는구나 라는 탄식이었다. 귀신鬼神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하나같이 불길해 하거나 거부감을 갔지만, 실제로 단어 자체는 그저 사람이 죽고 난 뒤에 남는 넋 혹은 화禍와 복福을 내려 주는 신령神靈을 일컫는 말로 마냥 불길한 말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귀신을 징그럽게 혹은 무섭고 불길하게 묘사한 덕분에 우리들에게 안 좋은 의미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주군의 태양'이 귀신을 징그럽고 무섭게 묘사하며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대사를 듣기 전까지. 몇 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주인공이 전한 문장 하나에서 다른 뜻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람은 사라져도, 그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
그 문장이 나온 이후부터 드라마의 행보는, 영혼들이 생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던 마음을 여주인곳이 대신하여 이뤄주고 그로써 영혼을 성불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여주인공이 진정 귀신을 볼 수 있었던 숨은 의미를 넌지시 시청자들에게 일러주며 결말을 향해 나아갔다. 작품은 귀신이라는 단어가 가진 몇 개의 뜻 중, "사람이 죽고 남은 넋"에 작품의 방향을 이미 정했던 것 같다.
'마음'이라 말하는 '넋' 그것이 깊고 진하게 남은 것을 말하는 '한恨'을 보며, 우리가 익히 알던 형태를 가진 귀신과 영혼은 허구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귀신이라는 단어를 통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형상을, 실제로는 누구도 목격한 적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선조들로부터 이어진 귀신이라는 진정한 의미가 현대에서 풀이된 불길하고 무서운 존재를 일컫는 것이 아닌, 마음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도 남는 넋은 마음만이 아니라 죽어간 이들이 남긴 모든 말과 업적, 뜻, 가족을 통틀어 가리킨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은 , 실체는 없으나 기록과 구전을 통해 끝없이 전해지고 있다. 별 헤는 밤을 읊조렸던 윤동주의 뜻과 글, 독립을 위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뱉어내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나보다 어렸던 이들의 정신. 가까웠던 지인이 떠난 뒤 남긴 애정 어린 말들까지. 모두 떠나간 이들이 남긴 것들이며 하나같이 지워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의미의 생명을 부여받고 이어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명의 발달이 수없이 많은 것을 규명해냈고, 더 많은 것을 규명하기 위해 힘쓰지만, 귀신의 존재를 여전히 밝혀내지 못하는 것은 형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초점은 형상과 현상에 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 지나간 이들의 뜻에 맞췄어야 한다.
우리는 귀신과 함께 산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다. 밝혀지고 설명된 것을 또다시 규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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