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의 비에 젖은 야경이 창가에 비스름한 빗줄기를 새기는 밤. 37층에서 보이는 풍경이었다. 사람보다 몇 배나 큰 자동차들은 빛을 뿜는 하나의 점이 되어 다리를 줄지어 건너고, 사람을 수만, 수 십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은 손가락의 길이보다도 짧게 마디의 간격보다는 좁게 다닥 다닥 붙은 채, 땅을 수놓았다. 사람이 만들었으나 사람보다 거대한 것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공중. 연인과 휴가를 맞이해 방문한 고층의 호텔이 안겨준 세상은 그러했다.
거대한 몸집의 호텔 건물 안은 신기할 만큼 은은한 태양빛을 뿜는 조명이 빈틈없이 자리해 있고, 출처를 알 수 없는 특유의 향이 벽과 바닥에 밴 마냥 사방해서 퍼져 나왔다. 평소에는 느낄 수 없던 분위기였기에 그곳에 있던 이틀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와 차, 시간을 보내는 모든 순간들이 평소와 다르고, 사람을 치켜세우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위치와 지위가 사람을 거만하게 만든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음을 수긍하게 할 정도로.
그래서일까, 수도 없이 마주치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그런 분위기에 취해 조금은 눈살을 찌푸리겠다. 엘리베이터 내에서 투숙객들의 편의를 위해 층수를 누르던 직원이 건네던 호의에 "몇 층을 눌러라"라는 날카로운 반말을 내뱉던 사람과 프리미엄 라운지에서 저녁을 즐기던 어느 테이블에서 흘러나온 노멀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폄하하는 사람까지.
그들의 오만함에 절로 고개를 저었다. 어떠한 위치에서 어떠한 지위를 누리며 살아가는 인물인지는 몰라도, 입에서 나온 말의 탁한 악취에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정녕 아득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빛내게 하는 것은 사람의 품성이고 인격일 텐데.
어둠에서 한 줄기로 지나는 태양 광선의 이면에서 처량하게 빛나는 하나의 푸름 점을 이야기하는 책 '창백한 푸른 점'의 저자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러한 말을 남겼다.
이 사진은 인간 중심의 원리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인 이 창백한 푸른 점을 보존하고 소중히 가꿀 책임이 있다.
1977년 8월과 9월에 각각 '보이저'라 불리는 비행체 1호 2호는 태양계 바깥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그중 2호는 170년 만에 찾아온 태양계 행성들의 직선 배열의 기회를 받아, 각 행성들의 중력의 도움으로 가속하며 태양계 끝자락에 닿았고, 선체를 뒤로 돌려 촬영한 지구의 모습이 바로 칼 세이건이 말한 창백하고 푸른 점, 우리 지구였다.
그는 그 점을 바라보며 광활한 우주 속에서 한없이 작은 우리를 상기했고, 당시 사람들 또한 어둠 속에 표류한 지구를 보며 아득한 고독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호텔에서 저열한 말투를 일삼는 몇몇의 사람들 속에서, 우주에서 창백하게 빛나는 이 땅을 떠올렸다. 천문학이 말하는 표류를 떠올렸다.
천문학을 일각에서는 단순히 우주를 탐구하는 학문을 넘어, 그 실체를 겸손과 인격수양의 학문이라 말한다. 고개를 올려 별을 살피고, 그 별이 박힌 우주를 탐닉하며 한 점 한 점이 하나의 행성임을 깨닫고, 점과 점의 무한한 거리에서 오는 아득함을 뼛속까지 담아내는 순간, 우리는 티끌과 같은 점에서 사는 존재일 뿐이라는 진실이 수면 위에 떠오른다. 그 사실 속에서 우리는 그저 이 한 점의 배를 함께 탄 동료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더 친절해질 수밖에 없고, 서로를 할퀴며 밟는 행위의 덧없음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 그럼 무언가를 폄하하고 누군가를 폄훼하는 것만큼 교만하고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점에 함께 올라탄, 다를 것 하나 없는 표류한 선박의 표류자 일뿐이다. 그저 그 선박의 크기가 광활해 위치와 지위가 생겼을 뿐, 다를 바 없는 사정이다.
물론, 그 진실을 일생 동안 무시한 채 살아도 무관하다. 하지만 홀로 사는 선박이 아닌 만큼 서로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은 숙명이니 상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득, 저열한 말투를 귀에 담고 그들을 찡그린 표정으로 바라본 나 또한 일종의 오만을 부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판단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는 법이니까. 그저 표류자라는 자리를 수긍하고 더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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