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사랑
사랑의 이면을 빈틈없이 물들인 진실.
"나를 취한 너는 이제 혼자일 수 없다."
사랑은 곧 내 자리의 옆에 한 사람의 몫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대체될 수 있을지 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 사랑도 사랑한 놈이 안다는 우스갯 말의 시초는 냉정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한 번 시작한 사랑은 나를 홀로 두지 못하게 한다. 특히 강한 염원으로 짙게 물든 사랑은 대체될 수 조차 없다. 사랑이 사람으로 변질된 것이므로. 내 자리 옆 한 사람의 몫이 사랑이 아닌 사람이 된 것이므로, 네가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된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다.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경험들을, 기억과 사람을 단 한 번 경험한 것에 불과함에도 더 이상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게 돼버린다. 이는 사랑을 했던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생각이 드는 건 사람의 간사함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에 뒤따르는 이별과 더불어 중독과 애(초조한 마음)라는 부정한 것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세상을 병들게 하고, 우습게 서로의 죄를 묻고 심판하는 우리가 어리석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랑이라는 한 번의 경험으로 다신 그것이 없이 살 수 없게 되는 아픔을 감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 이번만큼은 우리가 아닌 사랑 그 자체에 책임을 물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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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주말이면 채널을 스치다 가끔씩 보게 되는 드라마가 있다. tvN에서 방영하는 '호텔 델루나'라고 하여, 장만월(아이유)이라는 생生이 멈춘 자와 구찬성(여진구)이라는 평범한 인간이 함께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이며, 만월이라는 인물은 월령수라는 나무에 묶인 채 1000년의 가까운 삶을 하나의 생生으로 버티며 살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시간이 멈춘 것이라는 설정 때문이었다. 그래, 그녀는 영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흐름이 멈춘 채 그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는 모호한 상태.
나는 그 드라마를 보던 중 한 회차의 장면이 잊히지 않아, 사랑의 이면에 대해 막연히 허공에 대고 추궁할 수밖에 없었다. 만월은 드라마의 한 편이 끝나갈 무렵, 바다의 대낮을 밀어 노을로 물들이고 파도를 치게 하는 경이를 보이며 낮게 말했다.
"그 바다가 그 바다네"
어떠한 모습을 한들 변함없는 바다임을 자각하며 퉁명스레 뱉는 그녀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다 한 켠에 모여들었다. 그곳엔 그(구찬성)가 서있었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옆에 앉은 채 그녀의 시선이 나아가고 있는 선상에 함께 눈빛을 올리며 바다와 노을을 보았다. 그리고 선홍빛으로 불든 노을 밑 해변에 앉은 채 바다를 응시하던 그녀는 그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봤다.
그가 말한다.
"바다가 참 예쁘네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러게, 슬프게. 나는 조금 슬퍼졌어, 아까 보던 바다보다 지금 보는 바다가 더 예뻐져서"
시간이 멈춘 채 다른 이들의 시간에 기대 현재에 다다른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오랜 옛날에 경험했던 찰나의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이 그리워 오랫동안 현세에 머물며 지내던 그녀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시간인 만큼 무뎌지는 감정 속에서 이제는 괜찮아진 혼자의 시간들에, 또다시 그렇지 못하게 만들 사랑이 오는 것에 크게 두려웠을 것이다.
만월에게 있어 그는 평범했던 시간들을 더 이상 평범하게 놔두지 않는 존재였다. 평범했던 바다가 예뻐졌듯 모든 순간과 시간들이 점차 그로 인해 달라질 것이며, 이제 더 이상 원래의 평범함을 보는 것은 외롭고 슬퍼지는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는 분명히 사랑 그 자체가 가진 부정적인 것들 때문이다.
시간이 멈춘 채 존재일 뿐인 말라버린 고목의 만월에게 있어 사랑은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다. 잘 견뎌낸 지난 시간과 달리 앞으로의 시간은 홀로 견디지 못하게 될 테니까. 사랑에서 만큼은 인간의 간사함으로 인해 한 번의 사랑으로 혼자를 버틸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 그 자체가 가진 부당함으로 인해, 타의에 의해 더 이상 혼자를 견딜 수 없게 된 것. 이는 인간보다 특별한 그녀에게도 해당되는 비극이었다.
그나마 대부분의 사랑은, 사람은 떠나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둘 수 있는 희망을 갖게 하지만, 만월에게는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사랑이 사람으로 변질된 사연이므로, 그런 희망조차 품을 수 없다.
불합리하고 간사한 사랑.
대상 없이 허공에 계속해서 추궁해도 들을 수 없는 답 이지만, 확실하다. 사랑 이후에 혼자가 될 수 없는 외로움은 우리의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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