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자주 보다 보니, 어느덧 알고리즘이 시청자가 선호하는 영상을 추려주기 전에 스스로 원하는 영상을 찾아보게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음식을 다루는 먹방이나 다큐 영상, 출퇴근 시 기분을 환기시키는 예능 영상과 전자 제품을 리뷰하는 영상 등이 즐겨 보는 카테고리다. 그리고 이것들을 통틀어 가장 애정하고 찾아보게 되는 건 역시 '영화 리뷰' 영상이다. 이야기를 활자로 담아내는 게 책이라면 그것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영화이니, 활자를 통한 상상을 게을러 하는 나에게 영화는 그 게으름을 지지하는 핑계가 되어준다. 무엇보다 개인이 펼칠 수 있는 상상과 그림의 한계점을 알기에,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서로 손잡는 작가와 연출가, 감독의 상상을 엿볼 수 있는 영화는 확실히 홀로 상상할 때와 달리 더 넓은 상상을 가능케 한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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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오늘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우유 한 컵을 마시고 운동을 하기로 했다. 점심 약속을 가기 전까지 다섯 시간 정도 남았으니, 무료하게 빈둥거리기보다는 운동을 하고 동네 카페의 오픈 시간에 맞춰 밖을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운동할 공간을 확보한 뒤 곧장 아이패드를 거치대와 함께 무릎 정도 높이의 스툴에 올렸고, 적막한 운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검색창에 좋아하는 영화 리뷰어를 검색해 그가 새롭게 올린 영화를 훑었다. 그중 햇빛에 노랗게 물든 것 같은 영상 하나를 찾아 재생했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였다.
몇 분 안 되는 짤막한 영상은 영화의 장면을 일부만 보여주며 영화가 흐르는 물살의 방향 정도만 구독자에게 제시하고 있었다. 어떠한 이야기를 가졌는지,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며 결국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영화의 긴밀함은 최대한 가린 채 시청자의 호기심만 자극하는 아쉬운 영상이었지만, 그런 만큼 영화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발사제가 된 것 같아 묘한 기쁨을 느꼈다. 나만 해도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유료 영화 서비스를 통해 해당 영화를 바로 구매했으니까.
운동하는 동안에 볼 만큼 리뷰 영상이 길지 못해 영상을 다 본 뒤에 운동을 시작했고, 약 40분이 흘러 운동이 마무리 된 뒤 바로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그리곤 나갈 채비를 다 하자 마자 동네의 '탐 앤 탐스'에 가 창가에 앉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계속해서 내 시선이 머물렀던 모든 영화를 곱씹었다. 정확히는 나의 눈길을 잡아 두던 영화의 공통점을.
현재 나에게는 당장이라도 줄거리를 말하라 하면 막힘없이 뱉을 수 있는 각인된 영화가 몇 편 존재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른 모습이 되는 남자와 그를 사랑한 여인의 이야기 <뷰티 인사이드>, 시각 장애인 여자와 복서의 이야기 <오직 그대만> , 삶에 지친 청춘의 쉼표 <리틀 포레스트> 등 기타 몇 개의 영화는 여전히 내 기억 안에서 자신의 줄거리를 잃지 않고 낭독하며 끝없이 스스로를 되새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태양이 무언갈 물들일 수 있다면, 모든 장면을 햇빛에 담근 듯 노랗게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화려함으로 무장한 히어로 무비와 SF 등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영화들도 물론 좋아했고, 영화관에서 상영할 때면 몇 번씩 재 관람을 할 만큼 열성이었지만, 정작 내 안에 새겨지던 건 미풍에 일렁이는 잔물결 같은 영화였다. 삶이 주제였던 영화. 동네가 배경이 되고 늘 먹던 음식이 이야기가 되며, 평범함으로 영상을 끝없이 메우던 영화만이 내 안에 새겨졌다. 그 영화들은 하나같이 햇빛에 물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늘 우리가 마주하는 하루와 거기에 빠짐없이 안착하던 햇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나는 화려함과 눈이 멀 것 같은 영상미로 무장한 영화가 아닌, 먼발치서 천천히 유영하는 파도만을 깊이 새겼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 내 삶과 밀접하고 내 삶이 닮았으면 하는 이야기가 제 안에 담기는 법이었다. 화려한 맛으로 무장한 어느 저녁식사 자리 보다 동네에서 조용히 즐기는 조촐한 식사를 더 좋아하고, 찬란한 건물들이 즐비한 도심의 빛나는 카페보다 한적한 동네의 오래된 건물을 살려 자리 잡은 카페를 더 자주 가고, 어디를 가던 꼭 이른 아침에 눈을 떠 그 동네를 거닐어야만 하는 고집도 결국, 그 영화들을 제 안에 새기던 이유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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