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가진 고유의 성질과 모양으로, 본인이 직접 경험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타인에게는 어떠한 행태로든 알릴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말, 자상自相은 타인을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사물과 장소, 자연현상까지 포괄하는 진리와 같은 단어라 단언해도 과하지 않다.
우리가 가진 선입견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훈육의 단어인 자상自相을 떠올릴 때면, 누군가를 만날 때 무언가를 만질 때 무언가를 겪을 때 일말에 말도 듣지 않고, 한 순간에 대상을 판단했던 지난날의 경솔함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우리는 어쩌다 선입견을 갖게 된 걸까. 어쩌다가 대상을 겪기도 전에 선입견을 갖는 도를 넘은 행동을 일삼고, 대상을 본 적조차 없는 인물에게 까지 이를 전이시켜 대상을 끝없는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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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소문과 루머, 선전지와 같은 불손한 움직임을 파생시켰다. 휴대폰만 있으면 고화질 영상 촬영과 사진 촬영,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업로드가 일반화되면서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은 획기적으로 간소화되었고, 그 덕에 우리는 자연스레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정보의 획득과 이익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생활 침해도 비일비재해졌고, 비밀이란 단어는 세상에서 꽤나 옅어졌다. 더불어 개인 매체의 발달로 너도 나도 유명해지는 시기. 소문과 루머, 선전지는 개인에게 까지 피해를 확산시켰다. 확인되지 않은 무성한 소문이 세상을 유영하고, 누군가가 "그는 그런 사람이더라"라고 말하면 겪어본 적도 없는 다수의 여론은 그를 욕하고 죽이려 달려든다. 현시대의 마녀사냥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물론, 실제로 A라는 인물을 겪어본 B의 경험담은 C가 A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준다. 행실과 의도가 좋지 않은 사람을 애써 겪어 피해를 받을 필요는 없기에, B의 경험담으로 사전에 시간과 수고를 덜고 상대를 거를 수 있다. 하지만 B의 경험이 얼마나 맞을까. 그 말에 신뢰성은 얼마나 되고, 그의 말에 왜곡률은 얼마나 될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은 와전되기 쉽고, 이야기를 뱉는 사람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기억이란 경험과 실체를 바탕으로 하지만 결국은 머리와 마음에 옮겨 그림으로 남겨두는 것이므로 완벽할 수 없다.
결론적으론 B가 전하는 A에 대한 경험담은 C에게 도움이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도 불확실한, 극복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 꼴이다. 다만 확실한 건 전이된 선입견으로 누군가를 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상대를 자상自相한 당사자에게만 주어진 선택이다. 전이된 타인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행위다.
겪어보기도 전에 대상을 단정 지는 선입견은 전염성을 띤 불치병임이 틀림없다. 사람에 의해 끝없이 퍼져, 내면에 깊이 침식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골을 더 깊게 하고 편 가르기를 부추긴다. 이 사실은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선명한 문제.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
나는 다시 한번 자상自相의 뜻을 되새긴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한다. 겪어 보지 않았다면 무엇도 판단하지 않겠다고. 누군가 내게 밀고하는 말로 상대를 판단하지 않겠다고. 상대를 겪어본 경험은 자상自相의 뜻처럼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없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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