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이 몇 해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 예술 분야에서 출현한 개념이다. 이후에는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쓰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수년 전부터 유행한 미니멀리즘의 개념은 건축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케아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함께 가구와 인테리어, DIY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미니멀리즘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최초에 우리가 접한 미니멀리즘은 꼭 필요한 가구와 용품만을 공간에 배치해 채우기보다는 여백에 너그러움을 가지며 생활을 가볍게 하자는 취지였으니까. 이런 의미에서 미니멀리즘은 나에게도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미니멀리즘을 맹신하며 그것이 나의 삶의 방향성이라 큰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미니멀리즘의 기초인 단순함과 간결함이 내가 간과하던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넘게 계속되는 흐린 날씨가 처음 시작된 지난주였다. 별다른 약속이 없어 오랜만에 방 청소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곧장 운동기구와 옷, 책, 프라모델 등과 함께 갖가지 소품으로 채워진 작은 방을 우선 비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물건 하나하나에 손을 대니 의외로 양이 많아 20여분을 들인 후에야 날것의 방이 등장했다. 그사이 책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벽지의 얼룩과 잃어버린 줄 알았던 팔찌를 수납장 뒤편에서 발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반지와 받았던 편지까지 덩달아 찾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방을 다 비우고 청소를 하려 하니, 그렇게 찾아 헤매던 물건들이 방에 있었다는 사실에 절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결국, 청소를 위해 시작했던 방 비우기는 이미 물건을 찾기 위한 탐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비워진 방을 말끔히 닦고 꺼내 놓은 물건들을 방안에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간단했다.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가져다 놓으면 그만인 일. 그러나 쉽사리 행동을 빨리 할 수 없었다. 왠지, 원래 그 자리에 다시 둔다면 그토록 아끼던 물건들이 또다시 자취를 감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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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수필가 도미니크 로로가 자신의 책 <심플하게 산다>에서 "우리는 공간을 채우느라 공간을 잃는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문장을 단 한번 낭독하는 것으로, 문장이 가진 의미가 가슴에 맹렬히 날아와 꽂히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제 욕심으로 공간을 채우다 보면 끝내 자신이 있을 공간이 줄어든다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의미만이 아니라, 공간을 채우다 끝내 공간을 넘어 제 안의 무언갈 잃게 되는 소실의 단계까지 접어들지 모른다는 숨은 의미가 보였다.
채우고 채우다 결국 잃는다는 말은 모순적이다. 그래, 공간을 잃는다는 건 일리 있는 말이나 그것만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도 잃는다는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매료되어 하나둘 내 안에 채워 넣다 보니 정작, 아끼고 사랑하던 것들을 잃어버렸다면 어떨까. 몇 글자 담기지 않은 쪽지에 가까운 편지와 수년 동안 매일 함께였던 싸구려 반지는 새롭게 내 공간을 채웠던 것들과 비교해도 절대 작지 않은 가치였지만, 나는 제 욕심으로 공간을 채우느라 내 안에서 그만 그것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빼곡히 들어찬 방을 비우다 찾아낸 소중했던 것들을 마주하니, 나는 그날 방을 원래대로 가득 채울 수 없었다.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창고에 넣고 문을 걸어 잠갔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두었다. 이는 방이 아닌 머릿속에 들어찬 여러 인연과 소중한 것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청소였다. 새롭게 얻은 인연과 즐거움, 행복에 의해 간과한 태초에 내게 소중했던 것들을 다시금 상기했고, 넓지 않은 마음에 그저 담아내기 바빠, 묻히고 떨어지고 잃어버렸던 것들을 하나둘 마음의 수면 위에 띄웠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다시는 소홀해지지 않도록 한 번씩 어루만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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