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느낄 수 없는 감동

by 전성배

날이 차가워질수록, 시골집의 외벽을 끝없이 두드리던 벌레들의 소리는 소강한다. 바람이 얼어붙을수록 벌레들의 목은 얇아지고, 소리는 살얼음이 낀 듯 무거워져 벽에 닿지 못하고 이내 땅으로 추락한다. 날카롭게 얼어붙은 바람만이 쉼 없이 불기 시작하며 점차 작은 것들의 목소리는 죽어 사라지는 계졀 겨울을 떠올리면, 조용해진 틈을 타 오래된 검은색 라디오에서 나오던 주파수 소리가 섞인 노래들도 함께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생인 시절에는 이미 MP3가 큰 유행을 타고 세상을 잠식하고 있었다. 더불어 파일을 이용해 음악을 듣는 것이 대중화된 시점에서 라디오의 음악감상 분야의 실용성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모의 세대처럼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듣기 쉽지 않던 시절에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방송시간에 맞춰 라디오 앞에 엎드려 누운 다음, DJ가 선곡하는 음악에 전적으로 자신의 음악 감상을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시간이 지나 카세트테이프와 CD를 이용한 휴대용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비교적 간편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경지 올라섰지만, 우리 시대의 MP3가 가진 접근성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선명한 음질까지 갖췄으니,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깨끗한 음질로 들을 수 있다는 건 MP3 가진 매력 중 가장 컸다.


나도 그 매력에 빠져 MP3로 참 많은 음악을 들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원하는 시간과 타이밍에 들을 수 있었으니, 덕분에 당시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음악 감상'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접근성과 반비례로 사라져 가던 것은 반가움이었다. 약간의 잡음 섞인 음악이 들려주는 투박한 음질과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듣게 되는 반가움은 바래지고 말았다.

"그땐 어쩌다 한번 좋아하는 음악을 만나게 되면, 노곤하게 풀어진 몸을 뉘운 이부자리에서 마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기뻤어.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시절 이후로 그런 감동을 만나본적이 없는 것 같아"

전성배

그래, 정확히는 사라진 감동에 가깝다. 제 아무리 상황과 시간을 임의적으로 조율해 당시의 공간을 만든다 해도, 인위적인 상황에서 도출되는 건 '짐작'과 '예상'이라는 단어뿐이다. 결말을 스포 당한 영화나 들키고만 몰카라는 이름의 방송프로 일뿐이다. 그 시절에 박제된 감동은 한 걸음 시간을 건너기 시작하니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지인이 말한 그 시절 이후로 만나지 못한 감동은 그런 연유로 영영 이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가을을 며칠 더 보낸 뒤 날이 더 차가워졌을 때, 할머니의 집으로 가 아직 살아있는 라디오의 먼지를 닦아내고, 일찍 떨어지는 해에 맞춰 잠자리에 누운 다음 라디오를 켠다고 해도 반갑기는 하겠지만, 씁쓸함이 분명 뒤따를 것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문자를 하면서도, 인스타와 페북을 하면서도 때때로 이런 쓸쓸함을 눈치채고 만다. 멀리 떨어진 거리를 유일하게 넘을 수 있던 편지가 주는 불편함과 함께 묻어 전해지던 감동. 시대가 한 발짝 앞서니 SNS의 발판이 된 싸이월드의 출현으로 좀 더 자유롭게 시간을 넘어 전할 수 있었던 투박한 기능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에서만 느낄 수 있던 것들.


모두 하나 같이 과거라 말하는 시간에 묶여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이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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