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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Mar 10. 2017

로건

용서받지 못한 영웅

  로건, '울버린'이란 이름이 바래졌군


끝이 하얗게 서린 수염, 얼굴 사이사이에 패인 주름, 느려진 몸, 버거워진 발걸음, 날카롭게 빛나던 것은 자취를 감춘 처량한 발톱, 나는 진정 죽어가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죽음, 그토록 염원하던 끝이 나에게 업혀 있었다.


나의 삶은 늘 불행했다. 자신만의 고통이 전부라 여기는 인간과 달리 진정 나는 고통과 불행 그 자체의 삶이었다. 원망과 한탄, 분노, 자만과 교만까지 호소하며 끝없이 이어질 이 삶으로 악착같이 사는 인간을 비웃던 나에게 '찰스'는 길잡이를 자처했다.


찰스는 나에게 영웅이라 했지만, 난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잘난 영웅, 그 희생적인 영웅이란 말이 난 지금도 간지럽고 징그럽다. 모든 고통에 무감각한 것이 아닌 그저 회복이 빠를 뿐, 나 또한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받는다. 살이 베이는 고통 이 살을 찢고 나오는 발톱, 가슴에 박히는 총알, 누군가를 잃는 아픔을 나 또한 받는다.  그렇기에 영웅을 자처한 그들을 대단한 위선자라 여길뿐 난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지금은 더더욱 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만이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있어, 로건

죽어가는 내 몸을, 예상할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는 고약한 찰스는 알면서도 이런 악화 속에서 저 고집을 피운다. 아이 하나가 뭐라고, 당신 자신과 내 몸하나 사리기도 버겁지 않은가,


허나, 찰스는 마치 신의 파수꾼처럼 운명을, 그의 입을 타고 흘러가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집에 이유를

마주했다. 날카로운 발톱과 몸놀림, 야성, 포악한 살상, 파릇파릇한 생기는 어린 시절의 나였으며, 젊은 날의 파편이었다.

로건, 그 아이는 너와 많이 닮았어

죽어가는 나와 어린 나와 쇠약한 찰스는 어찌 움직이는지도 모를 낡은 차로 먼 목적지를 내리 달렸다. 그리고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 어느 중간쯤 외진 시골에서 평범한 가족을 만났다.

로건, 그들과 저녁 정도는 같이 먹는 게 어떤가

갈길이 조급했던 나에게 찰스는 또다시 고집을, 이길 수 없는 제안을 해왔다.


그들에게 우리는 어땠을까? 평범한 아버지와 어린 딸, 오지랖 넓은 할아버지로 보였겠지, 지독히도 평범한 저녁 식사이니 우리를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짓지 못했던 미소를 그날 밤, 두루 앉아있던 식탁에서

빛이 짙게 깔려 서로의 색색의 옷은 그림자에 짙어져 얼굴만이 전부였던 그 식탁에서, 오랜만에 지었다.


그리고 그 밤이 마지막이었다. 모든 불행은 절정에 이르렀고, 난 여기, 숲이 우거진 자리 쓰러진 고목 옆에 쓸쓸히 죽어가고 있었다. 나의 이 오래된 육신이, 낡은 영혼이..

 

나와 닮은 그 아이가 어쩌면 나의 아이라고 말하던 찰스는, 종국에는 씩씩거리던 나와 그 아이 사이에 애정 아닌 애처로움과 고마움, 사랑을 넘어 존경이 마지막 나의 죽음을 애도해줄 것이라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거대한 물통 안에서 연명하던 찰스, 수백 개의 총알 자국이 별이 되어 빛나던 가려진 밤을 바라보던 찰스는

어떠한 마음이었을지,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아마도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겼겠지,


조용히 살고자 했고, 세상을 대적하기보단 도망을 택한 나를, 억지로 끄집어낸 자신과 나를 영웅이라 칭하며 인간과 우리의 친화를 이루기 위한 열쇠라 여긴 자신을 이렇게 된 현실에 대한 죄책감으로 죄인이라 여겼겠지,


결국,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준 나에게 '가족'이란 것을, 평범한 저녁식사와 평범한 대화 가장 값진 평범한

미소를 선물해주고자 했던 모양이다. 자신의 죄의 일부였던 나에게..


하지만, 이렇게 희미해지는 난 여전히 영웅은 아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를 지키기 위해 악을 죽였으나 그 또한 결국은 살생이었고, 죽어가는 동료들 곁에서 조차 빌어먹게도 살아있던 난, 지금 이 순간도 결국 용서받지 못한 자일뿐이니까,


허나, 로라 너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분노와 탓으로 살아온 내 삶은 결국 죄 많은 삶이었고, 속죄할 수 없는 벌이었으나, 너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밝은 곳에서 밝은 생각으로 좀 더 사람과 가깝게 살기를 바란다.


끝까지 '찰스'당신의 뜻이 운명이 되어 나의 삶을 이끌었고, 이내 마침표를 찍었다. 200여 년의 긴 삶, '가족'이란 평범함을 알게 해주어 고마웠다. 내 딸 로라, 아버지 '찰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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