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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Jul 16. 2017

뷰티 인사이드 #1

고맙다 상백아

내 이름은 '김우진'이다. 하나, 이 이름을 갖고 사는 얼굴은 수십, 수 백개에 달한다.

그들이 사는 삶


나의 나이 열여덟 살 때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맞이한 아침에 들여다본 거울 속에 다른 이를 발견한 건. 내 얼굴을 잃고 살아가는 삶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은 쇠약한 노인으로 비 오는 어느 날은 험상궂은 아저씨로 또 어떤 때는 하얀 피부의 여자로. 성별과 나이, 국적마저도 다른 사람으로 매일 아침 눈을 떠야 했다. 

하루아침에 완벽히 소멸(消滅)된 일상. 가장 평범한 것을 영원히 잃어버린 삶. 매일매일 다른 얼굴을 하는 나를 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저 모든 사실을 알고 계신 어머니의 포옹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하지만, 하나의 기둥이 집 전체를 받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난 어머니에게 의지 하는 것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었다. 흔한 학교에서의 하루, 친구들의 잡담, 그들이 쌓는 추억 같은 것을 그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 삶은 '어머니'라는 버팀목 하나만으로 견디기에는 버거웠다.


그들 사이에 찾아온 하나의 친구


그러던 어느 날, 상백이가 집 대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도 모른 척할까"라고 생각했다. 상백이가 졸업 후 대학을 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풋내 나는 사랑을 시작한 건 미니홈피를 통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행복'이란 것을 꼭 쥐고 살아가고 있으니, 저렇게 며칠 나를 찾다가 뜸해질 줄 알았다. 뜸해지다 차츰 잊힐 줄 알았다. 하지만 넌, 참 꾸준히도 나를 찾았다. 

나를 찾아와 매번 내 앞에서 나를 찾았다. 그래서 문을 열어 널 마주하는 걸 택했다. 그날 넌, 한 겨울의 눈으로 쌓아 올린 벽을 허물 듯 나의 마음을 처음 열어젖혔다. 나의 비극(悲劇)을 말해 달라는 듯.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비밀을 발설하는 순간 누설되거나, 듣는 이가 비밀을 듣고 "나를 떠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망설여지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매번 나를 찾는 너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난 매일 매일 다른 사람으로 눈을 떠. 나의 생각, 마음, 기억은 김우진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데, 나의 모습은 매일 매일 김우진이 아닌 사람으로 살게 만들어.

어머니 외에 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나의 비밀을 말했다. 그리고 넌, 당황하면서도 호탕하게 웃으며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었다. 익살스러운 녀석이기에 어쩔 땐 이런 나를 놀리기도 하지만, 되려 그 모습에 고마움을 느낀다.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 나를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더 장난스럽게 대하며, 계속해서 나의 옆을 지켜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매번 문 앞에서 나를 찾던 너의 목소리는, 겹겹이 닫힌 내 마음을 하나씩 두드리고 있었던 것 같다. 고맙다 상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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