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 일상인 동네에 발을 들이면 꼭 마주하는 건 땅과 정면을 번갈아 응시하는 어르신들의 시선이다. 노쇠해진 육체로 어딘가를 떠나기에는 쉽지 않은 탓일까?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먼 곳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은 바람에서 일까. 어르신들은 한산한 낮 시간대면, 작은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골목에 앉은뱅이 의자 하나를 갖고 나와서는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수 시간 동안 바깥공기를 몸 안으로 천천히 순환시키며 바람을 맞는다. 탈것 같은 더위가 있는 날이 아니라면, 살을 에는 추위가 오는 날이 아니라면 사계절 내내 그런 심호흡을 이어가신다. 동인천의 '전동로'일대와 동인천 옆 도원역 뒤편의 작은 동네의 모습이 그러하다. 드문 드문 세워진 빌라가 뒤쳐진 시대를 간간히 견인하지만, 옛 주택가의 수가 더 많은 탓에 금세 맥없이 주저앉아 버리곤 한다.
가을의 끝물이던 어느 날이었다. 평일이던 날로, 이른 아침부터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카페베네에 가서 점심때까지 업무를 본 뒤 두 시쯤 카페를 나섰다. 일교차가 큰 가을 날씨를 그대로 보여주듯 오후에 내려앉는 햇볕은 여름을 방불케 했지만, 다행히 바람은 계절을 잊지 않고 선선하게 불어왔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천천히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사실, 그날만이 아니라 늘 실행하는 습관이었다. 시간이 날 때면 꼭 카페를 가서 글을 쓰거나 업무를 보고, 다 마치고 나면 홀가분한 마음을 거리에 흩뿌리며 한두 시간을 걷는다.
동인천역과 카페베네 사이에 위치해 있는 작은 먹자 골목을 지나니 삼거리가 나왔다. 직진하면 삼치거리였고, 좌측으로 돌면 홍예문과 자유공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긴 언덕이었는데, 걷기에는 그 방향이 가장 좋으니 발길을 언덕으로 옮겼다. 언덕을 올라갈수록 키 작은 주택이 하나 둘 늘어나고, 키 큰 건물의 수는 줄어갔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샛길에는 새로 생긴 주택과 카페들이 보였고, 샛길의 끝에는 가만히 입을 닫고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의 침묵이 보였다. 순간 나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발길을 한번 더 틀어 넓고 상쾌한 길을 두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한동안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목격한 어르신의 수는 다섯 남짓이었다. 모두 하나 같이 비슷한 표정과 비슷한 속도로 호흡하고 계셨다. 나의 동네에서 느끼던 어르신들의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는 하나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웃음도 마주 앉은 이가 있어야 나오는 법. 홀로 앉아 계시는 어르신이 웃음을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이미 자유공원과는 많이 멀어져 돌아갈 수 없으니, 이 골목을 좀 더 구석구석 그려보기로 했다. 10분, 20분. 시간이 지나 또 한 번 어르신을 발견했고, 이례적으로 할머님과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목 인사를 전하니, 할머니께서는 답례 인사 대신 말을 걸어오셨다.
"학생이 이 시간에 여기 있누, 학교 안 가는 가"
할머님 눈에는 젊은 청년은 다 학생으로 보이셨던 모양이다.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었으니, 간단한 대답과 함께 몇 차례 목격한 어르신들의 호흡을 할머니께 묻기로 했다.
"쉬는 날이라 산책 삼아 걷고 있어요. 할머님은 바람이 찬데 왜 밖에 앉아 계세요?"
할머니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바람이 좋잖여, 햇빛도 따뜻하고. 맨날 집에서 티브이만 볼 수 있나, 이렇게 바람도 맞고 햇빛도 맞고 간간히 지나는 사람도 보는 거재"
할머님은 그 말을 끝으로 몇 번의 끄덕임과 함께 계속하시던 침묵과 호흡을 이어가셨다. 나는 할머니의 말에서 상반되는 두 개의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외로움이었고, 하나는 그것을 떨치는 환기감이었다. 골목 곳곳에 계시는 어르신들도 사정이 비슷할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외로워져 간다고도 말한다. 하나 둘 사랑하는 이들이 출가를 하고 혹은 생을 달리하면서 노쇠해지는 건 육체 만이 아니라, 함께 했던 이들과 맺은 관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쉽사리 떠날 수 없는 두 다리와 감당하기에는 너무 복잡해진 세상. 그로 인해 자신의 세상은 점점 작아지고, 그저 가족과 친우가 찾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만 남은, 기다리는 삶이 되어버렸다. 젊은이들의 두발만 있으면 떠날 수 있다는 호기로움에, 마음만큼은 지지 않지만 따르지 않는 육체는 이미 두 손을 들었고, 그저 최대한 세상을 가득 담을 수 있는 골목에서 세상을 관망한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시던 할머님과 다른 어르신들 모두 이 작은 골목에서 자신의 세상을 여행하고 계신다. 가끔씩 찾아오는 여행객을 맞이하면서.
작가가 전하는 건강한 농산물, 건강한 작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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