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을 가득 채운 빌딩이 무색하게 하늘은 높고 맑다. 구름 한 점은 물론, 구름의 잔여물조차 없어 고스란히 내려앉는 햇볕에 눈이 멀어버릴 것 같다. 이제는 가을을 입에 담을 수 없는 12월이나, 햇볕은 여전히 가을에 머물러 따뜻하게 내려앉으니,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은 열세하다. 연인의 손을 잡고 오랜만에 나선 서울의 거리는 밀집된 빌딩으로 인해 추울 줄 알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추위를 피해 어디를 들어가기보단 다리가 아파 더 이상 걷는 것이 힘들어질 때까지, 옆에서 걸어주는 네가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걷고 싶을 정도였다. 정처 없이 다녀도 반가울 만큼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지난 휴일에 홀로 걷던 동인천의 거리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그 날은 겨울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을 치고는 추운 날이었고, 구름 하나 없는 건 오늘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날은 햇빛에도 서늘함이 서려있었다. 높은 건물 하나 제대로 없는 동인천 거리의 햇빛은 서울의 도심보다 넉넉했지만 더 싸늘했다. 그러나 기분만큼은 묘하게 상쾌했으니, 정반대의 날씨를 가진 오늘의 서울만큼이나 그때도 나는 충분한 만족을 느꼈다.
돌이켜보니 나는, 빈번하게 나타나는 온도와 바람, 하늘이 가진 파란색의 짙은 농도가 한데 엮여 만들어내는 앙상블에 쉬이 기뻐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쉽게 웃으며 걱정이나 불안, 답답함 같은 좋지 못한 껄끄러운 감정을 잠시 접거나 날려버리는 경이를 자의로 일으켰다.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에 어울리는 적절한 단어가 바로 '행복'인 것 같다.
지난달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KBS 드라마인 '동백꽃 필 무렵'의 주인공 동백이는 마지막에 어머니와 마당에 있는 평상에 나란히 앉아 이런 말을 했다.
"행복하자고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아? 행복은 좇는 게 아니라 음미야 음미. 나 서있는데서 이렇게 발을 딱 붙이고 찬찬히 둘러보면, 바바 전체가 꽃밭이지?"
드라마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어떤 경험에 의해서 동백이가 이런 말에 달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동백이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단어의 가치가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행복은 그 가치를 스스로 어떻게 책정하냐에 따라 쉽게 가질 수도, 반대로 아등바등해도 절대 가질 수 없는 이중성을 띤다. 즉, 행복은 지천에 널려 있으며 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만고불변의 법칙임과 동시에, 이를 어떻게 감지하여 내 입에 넣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를 간과한 채 이미 입에 문 행복을 제대로 씹지 않고 삼켜내기에 급급한다면, 그는 해소되지 않는 허기에 좇기며 살아갈 것이다. 동백이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온 모든 날이 불운의 연속이었기에, 작은 부스러기 같은 행복이라도 입에 담는 날이면 그것을 입에 넣고 한참을 음미했다. 초콜릿 한 조각에도 충분히 허기를 달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백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저 꽃 무리가 마냥 아름다웠고,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꽃내음이 코에 닿을라 치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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