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들었던 죽음에 대한 어느 남녀의 대화가 가슴에 쿵하고 떨어졌다. 불과 5분 남짓의 짧은 대화였지만, 그 밀도 높은 질문과 대답 속에서 나는 마음의 대부분의 자리를 빼앗겨 한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무거워진 마음이 나 또한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 생각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짧은 대화에서 나는 인간을 전제로 한 죽음과 우주적 시선에서 바라보는 자연을 전제로 한 죽음. 이 두 개의 큰 시선의 죽음을 비교해 보기로 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내가 당신을 잃게 되는 비극과 내가 당신 곁을 떠나는 비극. 사랑하거나 사랑했거나 좋아했던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면 우리 대부분은 세상의 붕괴를 직감한다. 양자 물리학에서 물질인 전자의 상태가 인간의 관측 유무에 따라 파동과 입자의 형태를 오가던 미시 세계의 현상을 은연중에 물증 삼아, 우주란 우리가 인식함으로써 확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예로 우리의 죽음은 세상의 붕괴임을 우리는 감히 말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죽음은 한 우주의 소멸과 다름없다. 그래서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일은 세상과 세상이 만나는 우주적 교착이며 새로운 우주의 탄생과 진배없으니 이것이 바로 인간을 전제로 한 죽음이다.
반면, 자연을 전제로 한 죽음은 인간의 죽음이 단순히 자연의 섭리라 단정 짓는 것이 아닌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환원의 형태라 말한다. 인간을 포함한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물론 그 울타리를 더욱 확장하여 관측 가능한 우주까지 포함해 모든 것들은 쪼개고 쪼개다 보면 '원자'라는 공통의 형태를 띤다. 그것이 모이고 모여 어딘가에서는 생명으로 어딘가에서는 흙과 나무 같은 자연으로 어딘가에서는 항성이 되어 칠흑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과 인간과 같은 생명은 지금까지 인간이 찾아낸 영역 내에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빛에 떠다니는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에만 국한된 원자들의 특이점일 뿐이다. 그저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살아 있어 생명을 세상의 보편적인 형태라 인식할 뿐이지, 우주적인 시선으로 보면 되려 생명은 부자연스럽다.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우주에서는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의미다.
이를 미루어 보면 죽음은 원자의 자연스러운 형태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둘의 죽음의 시선에서 자연을 전제로 한 죽음에 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을 전제로 한 죽음에 마음을 두기에는 우주가 탄생한 이래 우리는 외딴 우주에 떠다니는 작은 행성에 표류한 지독히도 외로운 존재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나를 찌르기 때문이다. 이 작은 행성 위는 칠흑이라는 진실을 만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날아 오르길 반복했던 인류의 우주 과학 역사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인류의 발이 닿은 게 달뿐이라는 사실은 찌른 살갗을 더욱 파고든다.
혼탁해진 삶을 갈무리할 시간, 전자 수필집《삶의 이면》전성배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