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 6월까지 - 윤종신
사랑이 떠난 자리의 향기의 농도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래서 추억과 감정을 쌓는데 획기적으로 이바지하는 계절의 순환과 밤의 횟수도 그것이 남기는 향기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헤아릴 수 없는 긴 날을 만난 사랑이라 한들 그 향기가 짙다고 장담할 수 없고, 찰나를 만난 사랑이라 한들 그 향기가 수년을 만난 연인의 그것보다 더 진한 향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시간이 우리에 의해 임의적으로 생겨난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점과 사랑으로 쌓은 시간은 그리움이라 말하는 향기의 밀도를 좌우할 수 없다는 점은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간이란 개념을 도입해 삶의 이정표를 새기는 인간의 시선에서 우주적인 시간의 흐름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다. 우리가 정의한 시간 속에서 저 밤하늘을 채운 무량의 별빛을 보면 헤아릴 수 없는 억겁의 과거로부터 날아온 빛이라고 하니, 시간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더 이상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무쓸모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사랑도 우주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품은 사랑은 인간의 내면에서 무한히 확장한다. 사랑은 우주가 가진 헤아릴 수 없는 영역과 현재도 진행 중인 빛을 초월하는 팽창 속도 이 모두를 가지고 있으므로, 가히 우주와 필적하며 우주와 마찬가지로 빛을 아득히 초월하는 속도로 우리 안에서 무한히 확장한다. 그래, 1979년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 (Eugene Wigner)가 말한 "우주는 그 자신의 존재를 위해 의식을 가진 생명체를 필요로 한다."의 말을 빌려 나는 유일무이한 인간의 사랑과 우주의 유사성을 믿는다.
그렇기에 사랑도 응당 우주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찰나의 사랑이 남기고 떠난 향기에 묻혀 끝없는 향수병을 달고 사는 그 사람과 장대한 시간을 쌓았던 연인을 놓고 새로운 우주를 만나 행복해하는 그녀의 잔향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랑과 우주 앞에 시간은 가치를 잃는다.
혼탁해진 삶을 갈무리할 시간, 전자 수필집《삶의 이면》전성배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