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흐를 리 만무한 당신

by 전성배

시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시간을 두고 흐르지 않는 것 혹은 다수의 파편, 하나의 컷이라 말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상의 실체가 사실은 초당 수십 장에 달하는 사진이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한 것처럼 시간을 영상의 특질에 비유하며,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도 영상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실체는 매 순간 일 분 일 초가 독립적으로 분리된 사진으로써 존재하는 정적인 것이며, '기억'이라 불리는 플레이 장치에 의해 영상의 형태로 재생되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같은 가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바로, 작년에 개봉한 <어벤져스 4 앤드 게임>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이러하다.


"시간은 정적이며 독립적이다. 일 분 일 초 아니 그보다 더 세분화된 시간 속에서 모든 사건은 그 순간에 박제되어 영원히 반복된다."


영화는 이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현재의 인물이 사건이 발생되기 전인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 사건을 바꾼다 해도 현재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설령 과거의 나를 내 손으로 죽이더라도 현재의 나는 사라지지 않으며, 더불어 내 손으로 나를 죽인 그 사건을 기점으로 나의 현재와는 또 다른 세상으로 시간은 물꼬를 튼다고 말한다. 인과가 서로 얽혀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의 연결고리는 추상적인 것일 뿐 우리의 모든 시간은 단절되어있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는 이야기.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벤져스의 시간은 현실에 가깝고 영화 <백 투 더 퓨쳐>의 시간은 공상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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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의 시간에 대한 지론持論을 말미암아 나는 단절된 시간이 지금껏 설명할 수 없었던 그리움의 실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움의 기질은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회상이므로, 어딘가에서 버젓이 우리의 사랑의 사건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데 그리움이 사라진다는 건 만무한 일이다. 시간은 단절된 것이나 그 시간에 사건을 새기는 우리의 불완전함이 완벽하다 생각한 시간의 단절을 약간 흐리기에 그리움은 우리네 삶에 나의 삶에 끊이지 않는다.


언젠가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라 믿으며, 내내 흐르지 않고 고인 채 썩어가는 당신을 기억하며 원망과 울음을 수없이 토했던 시절이 있었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언젠가 당신도 흘러가겠거니…. 수많은 밤을 버티며 물이 흘러 맑아질 수면水面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의 본질은 나의 믿음을 완전히 뒤엎었고, 이제야 나는 그런 기대는 헛된 바람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을 모른 채 수많은 시간에게 기대했던 무모한 희망 속에서 나는 얼마나 고문을 당했던가. 이제는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흐를 리 만무한 당신을 인정하며 기꺼이 그리움과 싸우려 한다. 언젠가 또다시 겪게 될 그리움 앞에 무모한 희망을 걷어내고 기꺼이 상처에 뛰어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혼탁해진 삶을 갈무리할 시간, 전자 수필집《삶의 이면》전성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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