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대화를 할 때 혹은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사연을 접할 때 나는 때때로 거북스러운 감정을 버티지 못해 대화를 피하고 채널을 돌린다. 가늠할 수 없는 이유로 이러한 행태를 부리는 것은 아니다. 잠깐 자기변호를 하자면, 나는 대화의 주체가 되는 인물의 아픔이 목소리에 실려 들려오는 것을 가만히 받아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타인의 슬픔을 들을 자신이 없다. 고르라면 차라리 시기하던 누군가가 성공가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는 게 더 나을 정도다. 배가 아픈 정도야, 어루만질 수 없는 가슴속을 콕콕 찌르는 감정의 고통을 참는 것보다는 훨씬 쉬우니까.
처음에는 자신과 그 대상물과의 융화를 꾀하는 정신 작용인 '감정 이입'이 지나치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감정이란 요소의 구성을 해석하고 분해해 다시금 나의 글로 재구축하는, 일명 '감정의 연금술'에 찌들어 사는 나이니, 지나친 감정 이입에 따른 자기 파괴를 예방하기 위한 자기 방어적 행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보면 '이입'이 아니었다. '감정 이입'이란 상대의 슬픔과 기쁨의 구별 없이 내 감정을 거기에 교접하여 함께 울고 웃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이입은 자의적 컨트롤이 가능하다. 언제든 내가 이입하고 있음을 자각할 수 있고, 멈추거나 더 나아가거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반면, 내가 벌이는 행태는 전염력을 가진 무언가의 숙주가 되어 자기 파괴가 일어나기 전 예방을 위한 방역에 가깝다.
그래, 감정은 전염성을 가진 병원체다. 특히 그중에 '아픔'의 성격을 가진 건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를 마음대로 하는 이형적 구조물이다. 전파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는 어떤 병처럼.
얼마 전 유재석, 조세호 진행의 '유 퀴즈'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프로그램의 최초 제작 취지는 야외를 다니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버라이어티 토크쇼를 지향하고 있었으나,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의 창궐로 현재는 일시적으로 스튜디오 촬영만 진행하고 있는 프로였다. 지금은 연예인과 더불어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일반인을 초대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내가 보았던 특집은 '정신과 의사' 편이었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의사가 최근 코로나의 장기화로 일명 '코로나 블루'라는 신종 우울증의 등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터뷰의 서막을 열었다. 잠깐 코로나 블루를 설명하자면, '포스트 코로나'라고 불릴 만큼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극명히 갈리게 된 지금. 코로나와 함께 달라진 일상에 극심한 우울을 겪는 이들이 대표적인 코로나 블루의 증상자라고 한다. 그는 코로나 블루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우울증 환자에 대한 아픔과 진료를 하는 의사의 불안감, 고충을 조리 있게 이야기해 나갔다. 모두 하나 같이 안타까운 이야기들이었지만 특히, 인터뷰 말미에 그가 던진 문장에서 나는 숙연해짐과 동시에 작은 탄성을 토했다.
의사 중에서 자살률 1위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곧바로 그의 첨언이 이어졌다.
저도 특히나 힘든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싶은 날은 병원을 나올 때 뭔가 에너지를 다 쓴 느낌이고, 세상이 어두워 보이기도 하고, 진짜 힘든 일과 안 좋은 일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는 그의 말에서 그동안 내가 아픈 대화를 기피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의 전염성을 무의식 중에 알았기 때문이니라. 잠시라도 방역을 방심한다면 그 아픔에 전염되어 순식간에 육체를 점령당할 것이 두려웠다. 치유할 방법과 쓰다듬을 형체도 없는 감정이 한번 전염된다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 자명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의 아픔이 들려온다면 듣기를 포기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좋은 점이라면 꾸준한 자기 방역 덕에 아직까지 숨을 쉬며 살고 있다는 것이고, 안 좋은 점이라면 면역이 없어 방심하는 순간,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기에 소극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정도? 딱 그뿐이다.
그런데 요즘따라 이런 생각이 든다. 감정의 사대 요소 희喜 로怒 애哀 락樂 중에 '애哀'를 모르면서 감히 감정을 빚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사실, 각 감정의 뿌리를 따라 내려가면 그 심연에는 씨앗 자리가 하나뿐이다. 그 말인 즉, 모든 감정은 단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 하나를 모르면 모두를 안다고 할 수 없고, 모두를 알고 싶으면서 하나만 몰라서는 안된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아픔에 전염되어야겠다. 더 오래 살며 진짜 감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전성배 田性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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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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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