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대로 산다

by 전성배

과일과 가까이 살다 보니 그 이름을 달리 부르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과는 사과로, 귤은 귤, 멜론은 멜론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총칭'을 부르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으로 치면 인종으로 부른다고 해야 할까?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등으로 부르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름있다. 그리고 이름이란 대개 의미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타고난 성품으로 남을 북돋으며 선하게 살라는 '성배'라는 이름이, 누군가는 편안한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지안'이란 이름을 갖고 태어났다.


이름이란 세상에 던지고 새겨진 만큼 이름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뱉어진 이름의 수만큼 생을 가진 것들은 그것을 발판 삼아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그래서 더 이름을 부른다. 내가 부르는 이름의 수가 그가 향할 삶에 발판의 일부가 되길 바라면서. 그것이 과일에도 전념되어 총칭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


사과의 품종 중 '홍로'는 겨울의 절기 중 "흰 이슬이 맺히며 겨울을 알린다"라는 뜻의 '백로白露'를 따라 '홍로紅露'라 지어졌다. 홍로는 여름이 식어감에 따라 붉게 익으며, 이른 아침 제 살에 붉은 이슬을 걸어두는 것으로 가을을 알린다. 즉, 홍로의 삶은 '가을의 전령'이다. 멜론의 품종 중 머스크는 사향麝香을 뜻하며 단순히 특정 향을 지칭하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아니다. 오래전부터 '향'은 그리움의 촉매로 사용돼 온 만큼 누군가의 그리움의 방아쇠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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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이름 어느 하나도 허튼 것이 없다. 그래서 생을 가진 것들은 이름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고, 생을 가진 것들은 저마다 제 이름이 낼 법한 분위기를 함께 발산한다. 내가 이름을 부르는 이유와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 모두가 설명되는 대목이다.


한때 나는 이름의 무게를 가벼이 여겼다. 운명론보다 자유 의지론을 더 믿기 때문일까?'이름'이란 것이 갓 태어난 생에 함부로 운명이란 족쇄를 거는 것 같아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수많은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름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을 고쳐 잡았다. 운명론도 일부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아니 죽음도 운명의 한 갈래라면 세상은 확실히 운명론의 구조로 운영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이란 자유 의지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름을 갖는 것은 족쇄가 아니라 날개를 다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 전문가가 과일의 품종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 모두가 운명론에 반기를 드는 혁명적 행위이다. 죽음이란 운명을 갖고 태어났으나, 그 운명을 가만히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 이 이름을 갖고 그런 생을 살아가자는 의지가 낳은 운명을 향한 반기 말이다.


나는 계속 이름을 부를 것이다. 이름이 가진 무게가 무거워 한 음절씩 세상에 뱉을 때마다 온 힘을 다할 생각이다. 그 힘이 누군가의 삶의 종착지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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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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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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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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