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시간의 배려가 닿기를

by 전성배

새해를 불과 몇 시간 앞둔 오후입니다. 모두가 오늘 하루 끝과 시작의 교점에 서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아침 여느 날보다 조금 더 일찍 눈을 떴습니다. 시간은 새벽 5시 40분.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어 새벽이 떠날 채비를 하는 허공을 얼마 동안 응시했습니다. 오늘도 속없이 하늘이 맑을 것인지, 시커먼 새벽하늘에서도 맑음이 보였지요. 그리고 예상대로 지금 하늘은 눈부실 만큼 선명한 푸르름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마지막이 아쉽지 않은 피날레이고, 시작과 어울리는 서막입니다.


2020년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 김에 저는 지금 이 순간, 지난 12월 한 달의 속력을 가늠해봅니다. 생의 마지막 2020년의 12월은 제게 있어 여느 달보다 빨랐습니다. 거리 두기 강화로 11월 말부터는 좋아하던 카페를 가지 못해서 일까요? 아니면 지인을 만나 속을 달래는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일까요? 12월은 홀로 보낸 날이 많아서인지 도리어 시간의 속력이 좀 더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31일이 된 오늘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벌써 마지막 날이라니…. 이를 보면 동적인 육체를 스치는 시간보다 정적인 육체를 스치는 시간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2월뿐만 아니라 올해 자체가 제게는 너무도 빨랐습니다.


2020년을 202X 년이라 쓰고 싶을 정도로 지우고 싶은 올해는 반강제적으로 멈춰 무엇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계 초침의 똑딱거림을 셀 수 있을 만큼 하루의 길이가 막막할 정도로 길었지만, 돌이켜보면 참 빨리도 흘러갔습니다. 시간의 주체가 멈출수록 시간이 빨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 년 내내 우리와 함께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 서른하나가 됩니다. 숱한 글에서 세월의 축적과 함께 저물어가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 했지만, 지금은 조금 두렵습니다. 유독 더 빠르게 흐른 올 한 해 때문에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두려움이 양염이 되어 새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내년에는 고단해도 좋으니 동적인 시간을 살며 바쁘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은 배려가 깊어, 기억하고 추억해야 할 것이 많은 우리에게는 느리게 흘러갈 테니까요. 반대로 멈춰버린 일상에 시간은 배려를 하지 않을 테죠.


조금이라도 더 세월의 느림을 느끼며, 젊음의 특권을 음미할 수 있도록 내년에는 시간의 배려를 꿈꿔봅니다. 아울러 귀한 인연과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설렘에 자유가 깃들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캐낸 글감들을 올 한 해 동안 다 써버려 비어버린 저의 자루에 가득 채울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께도 시간의 배려 닿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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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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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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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bae91 : 페이스북

《삶의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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