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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Mar 05. 2021

삼겹살만 좋아한다.

삼겹살 데이를 돌아보며

돼지고기 소비를 늘려 양돈 농가를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삼겹살데이. 지난 3월 3일에도 어김없이 삼겹살 데이라는 홍보 문구가 대형마트와 인터넷상을 도배하며 소비자의 삼겹살 구매를 유도했다.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자리해 빼빼로 데이나 밸런타인데이처럼 우리의 일상적인 문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양돈 농가를 위한다는 원론적 취지가 무색하게 그들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되레 삼겹살 데이가 없는 것이 더 낫다는 푸념을 내뱉는 농민도 적지 않다. 바로 삼겹살에 극단적으로 몰린 소비 성향 때문이다. 부족한 삼겹살 가격은 고공행진하고 비선호 부위는 쌓여만 간다.


수년 전 정육점에서 몇 개월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루에 약 3~5두 정도의 돼지를 직접 발골하는 매장으로,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매장 천장에는 도축 업체에서 배송된 돼지가 걸려 있었다. 오전 일과는 늘 같았다. 숙련된 발골 기술자 형님들이 천장에 걸린 이분 도체된 돼지를 크게 앞다리와 뒷다리, 몸통으로 나누면 발골이 시작됐다. 나는 가장 값싼 뒷다리 발골을 담당했고, 그다음으로 싼 앞다리는 나보다는 숙련된 A형님이 맡았다. 그 외 삼겹살과 목살, 등갈비, 특수 부위는 가장 베테랑이던 B형님이 맡았다. 해당 부위들은 가장 많이 또 비싸게 팔리는 부위다. 따라서 기름을 어떻게 손질하냐에 따라 마진율을 달라지기 때문에, B형님의 노력한 손길을 꼭 거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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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골 작업이 끝나면 다음은 정형 작업이었다. 불필요한 기름을 잘라내고 상품화하는 작업으로, 이 작업까지 마무리되면 저장고에 발골 일자별로 정리를 해 선입선출을 기본으로 판매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골칫덩어리는 우둔살이 붙어 있는 뒷다리살이었다. 안심과 등심도 늘 넘치는 재고량을 고민해야 했지만, 돈가스용으로 꾸준히 나가는 편이라 비교적 괜찮았다. 문제는 역시 뒷다리살이다. 등심, 안심과 마찬가지로 기름기가 거의 없어 퍽퍽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팔리지 않는 부위였다. 어쩌다 불고기용, 민찌(다짐 고기), 찌개용으로 아름아름 팔리는 게 다였다. 한편 삼겹살과 등갈비, 목살은 늘 인기가 많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이런 대조적인 인기에 종종 삼겹살 하나가 부족해 돼지를 발골해야하는 경우도 생겼다. 혹은 이것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육가공 업체에서 부족한 부위만 따로 공급을 받는다거나 소비자에게 수입 삼겹살의 장점을 어필하며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판매량을 조절해야 했다.


여담으로 일부 부족한 부위 때문에 돼지를 또 들여와 발골하는 것이 손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돼지고기는 냉동을 통해 유통 기한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다. 직접 발골을 하는 정육점은 매장에서 일 년간 소화해낼 수 있는 선을 산정해두고 움직인다. 이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는 다른 부위가 처지더라도 부족한 부위를 수급하기 위해 돼지를 사입하고 직접 발골한다. 그것이 마진율이 더 좋기 때문이다. 단, 이 선을 넘길 것 같으면 위처럼 마진이 적더라도 부분육을 공급받거나 다른 상품으로 판매하는 등의 차선책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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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돌아와 이쯤이면 정육점에서 삼겹살 부위는 늘 부족한 부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삼겹살 데이만이 아니더라도 삼겹살은 이미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일 년 내내 없어서 못 파는 부위가 된지 오래다. 그래서 가장 비싸게 거래될 수밖에 없다. 내가 일했을 당시만 해도 국내산 돼지 1근(600g) 기준 뒷다리살은 3000원이었던 반면, 삼겹살은 12000원이었다. 돼지 한 마리에서 삼겹살이 더 적게 나오기 때문이 아니라, 삼겹살만 찾는 소비 성향이 결정적 원인이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지난 3년 동안 삼겹살 가격은 21% 올랐지만, 비선호 저지방 부위의 가격 변동은 거의 없다. 여기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건 일본과 중국, 프랑스, 캐나다 등 전 세계 10개 나라 평균보다 2.3배 높은 가격이라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돼지기름은 몸에 좋지 않다" "삼겹살은 그런 기름이 너무 많은 부위다" "저지방 부위가 건강에 좋다" 등의 말이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사람들은 이미 돼지기름의 고소한 맛에 중독되어 버렸다.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SBS 프로그램인 '맛남의 광장'을 통해 백종원 대표가 보인 행보 때문이다. 뒷다리살 재고 적체로 양돈 농가와 육가공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바로 '빽햄'이었다. 빽햄은 스팸과 같은 상품으로, 오롯이 비선호 국산 돼지고기만을 사용하여 업계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등장한 제품이다. 비선호 부위인 만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과 백종원 대표의 영향력이 겹쳐져 현재까지도 인기몰이 중이다. 덕분에 그간 정체되어 있던 양돈 업계에 변화의 의지가 태동하고 있다. 이번 빽햄을 계기로 비선호 부위를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와 제품을 개발하고, 수출로까지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마트

마지막으로 업계의 노력만이 아니라 삼겹살에 편중된 소비자 인식도 개선되길 바라며 다음 말을 전한다. 소비자 시민 모임 사무국장인 '윤명'씨가 조사한 결과, 산지 가격이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판매에서는 여전히 업자들이 기존에 받던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산지 돼지고기 가격은 4.9% 떨어진 반면 계속해서 오르는 삼겹살 가격에 위와 같이 말했다. 지난해에는 돼지고기 가격과 삼겹살 소비자 가격이 무려 5.8배나 차이가 낫다고도 한다. 코로나19로 저지방 부위를 주로 소비하던 학교 급식이나 외식업체가 타격을 입으면서, 저지방 부위의 돼지고기 재고가 더 늘어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무조건 유통 업체들이 폭리를 취한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삼겹살에만 편중되어 등한시되는 비선호 부위의 리스크를 커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산지 가격이 떨어진 와중에도 판매가는 떨어지기는커녕 똑같거나 되레 상승하는 건 명백한 폭리다. 아울러 요동치는 수입 삼겹살 가격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소비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비선호 부위의 소비 증진을 위해 업계만 노력할게 아니라 소비자도 함께 변화해 시너지를 일으켜야 한다.

unsplash

빽햄을 시작으로 업계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비자 인식은 "요리에 맞춰 다양한 부위를 활용하자"로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적당한 기름기가 있는 부위가 좋다. 그래서 다른 저지방 부위보다 비교적 기름기가 있는 앞다리살이나 아예 삼겹살, 목살을 활용한다. 하지만 뒷다리살과 사태 등을 활용해도 충분히 맛이 좋다. 제육 볶음과 돼지 불고기는 고기를 얇게 썰어내는 만큼 뒷다리살을 활용해도 퍽퍽하지 않고 맛이 좋다. 잡채에 들어가는 고기로 등심을 많이 쓰지만, 뒷다리살도 좋다. 주로 안심을 쓰는 카레용 고기도 마찬가지다. 뒷다리살 수육은 어떻게 삶느냐에 따라 삼겹살까지는 아니라도, 앞다리살 만큼의 부드러운 식미를 낼 수 있다. 해당 레시피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미트볼과 햄버그스테이크는 어느 정도 기름이 섞여 있어야 고소한 풍미가 난다. 그렇다고 기름기가 있는 부위를 갈아서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뒷다리살과 같은 저지방 부위에 등심을 손질할 때 나오는 기름을 일정량 섞어 갈아도 그 풍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소비자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삼겹살 소비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삼겹살이 좋다고 대부분의 요리에까지 그것을 활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요리에 알맞게 또는 대체가 가능한 선에서 다양한 부위를 활용하는 것이 종국에 우리가 삼겹살을 조금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의 삶과 농산물 사이의 교점을 말하다"

농산물 에세이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지음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영풍문고」


전성배 田性培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 / 2021 . 02

@_seong_bae : 미문美文

@_siview : 농산물農産物

@seongbae91 : 페이스북

《삶의 이면》 : 전자 수필집 / 2020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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