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비로 젖은 5월에 사과는 믿음과 함께 떨어졌다.

by 전성배

관측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에만 강수일수가 14.4일에 달한다고 한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내린 것인데, 그래서인지 5월은 여느 해와 다르게 제법 선선한 달이었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반가웠을 터다. 보통의 5월이라면 큰 일교차로 인해 다가올 여름을 걱정해야 했을 텐데, 올해는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난 글에서 다뤘던 '양파'의 경우에도 비가 자주 내린 덕에 도리어 생육이 왕성해져 양파 입장에서는 잦은 비가 반가웠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물에 국한된 것으로, 농부 입장에서는 풍작으로 인한 가격 폭락을 걱정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비단 양파 농가만이 아니라 온대성 작물을 기르는 농가에서도 잦은 비로 인해 시름하고 있다. 양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온대성 작물과 농부 둘 모두가 피해를 호소한다는 것이다. 바로 사과의 이야기다.


통상 5월은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온대성 작물들의 생육이 왕성해지는 시기이다. 낮은 물론이고 밤에도 비교적 따듯한 온도가 계속되면서 영양 공급이 활발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5월은 비가 자주 내리면서 일조량은 크게 떨어지고, 밤 기온도 8℃ 이하로 떨어지는 날들이 많았다. 결국 열매에 영양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대량의 낙과가 발생했다. 특히 추석 사과라고 불리는 조생종 '홍로'사과의 피해가 심하다.


실제로 경남 밀양시 산내면에서 3000평 규모의 사과농사를 짓는 전태우씨는 "저온피해로 사과가 채 자라기도 전에 낙과한 것이 태반이다"라며, "9년생 홍로는 한 나무에 열매가 130개 전후로 달리는데, 지금은 2~3개만 남아 있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뿐만 아니라 만생종인 '후지(부사)'도 낙과율이 40%에 이른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현재 전태우씨의 상황은 대부분의 사과 산지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5월 31일 기준 밀양지역 낙과 피해 신고 현황은 1200농가 690ha, 거창지역은 1311농가 915ha로 알려져 있다. 경북 문경에서도 6월 3일 기준 1040여 농가가 낙과 피해를 신고했는데, 그 규모가 1000ha 육박한다고 한다. 문경시의 전체 사과 재배면적이 2080ha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가량이 피해를 본 것이다. 더욱 암담한 것은 그 피해 규모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올 추석 사과값도 저렴하지는 못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지난 4년간 이러한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생한 자연재해로 인해 농민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사과값을 감당해야 하는 소비자에게까지 피해가 생기려 하고 있다. 사실 계속해서 사과에만 국한해 이야기했지만, 마늘과 배추의 피해도 사과 못지않다.


마늘의 경우에는 잦은 비로 벌마늘(가을에 싹이 나고 봄에 수확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차 생장으로 인해 봄에 수확하기 전에 다시 싹이 나서 먹지 못하는 마늘)이 증가했고, 수확과 건조에서도 애로사항이 많은 상황이다. 배추는 무름병(독특한 냄새가 나면서 흐물흐물해져서 썩는 식물 병해)발생률이 크게 증가했고, 노균병에 걸린 배추인 '가시리'와 속이 물러진 배추인 '꿀통'같은 비품 배추도 많이 나오고 있다.


5월 기준 50년 만에 최다 강수일수를 기록한 올해. 해가 갈수록 극심해지는 자연재해로 농산물의 피해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갈수록 피해를 예상하고 그에 대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어차피 전례 없는 현상으로 대비책을 무색하게 할 테니 말이다. 어떤 농부는 이제는 피해의 성격과 그 규모를 감히 판단할 수조차 없어져, 이 땅에서 농사를 짓는 날이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니라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농부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기우가 아닐 것 같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저 먼발치서 농부와 농업을 관조할 뿐인 내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픔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내가 죄스러워졌다.


언젠가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농부는 설령 올해의 농사가 흉작이더라도, 다음 그다음 해는 반드시 풍작을 맞이할 거라는 천지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하늘과 땅은 그 믿음을 결코 져버리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자신 있게 못 할 것 같다. 그 믿음이 점점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어서다. 도무지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황만 매년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늘과 땅의 변심이 아니라 인간의 무모함 때문이라고 하면, 나는 그저 농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아주 볼품없고 힘없는 뉘우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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