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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Nov 12. 2021

그 뭐였더라

나이가 들수록 기억에서 멀어지다.

갈수록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할 때 “그 뭐였더라”라는 말을 자주하게 된다. 떠올리려는 이야기가 있는 시간에서 일 년 일 년 멀어질수록 선명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기억을 조각조각 나눠 흩뿌리며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선명도 문제든 파편화 문제든 하여간 나는 갈수록 떠올리는 기억의 빈자리마다 “그 뭐였더라”라는 말을 끼워 넣는다. 그간 나는 여러 글을 통해 나이듦에 대한 사유를 수시로 이야기했다. 점점 변해가는 육체를 보는 씁쓸한 마음에 관해서라던가,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마땅히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의 부재에 관해서라던가, 해가 갈수록 무게를 달리하는 책임에 관한 것들 등등. 나이가 들수록 그전에는 생각하지 않았거나 짊어지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에 대한 사유는 잦아졌고, 그때마다 두려워했다. 우울해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 할수록 나의 그릇 밖의 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나’라는 존재와 나를 끼고 가는 세월이 서로 다른 자아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저기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어린 친구들을 보며, 그들과 나 사이에 자그마치 11년이라는 시간이 자리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물리법칙 벗어난 무언가를 보기라도 한 듯 나는 자주 놀란다. 11년이라는 장대한 시간을 더 산 것에 비해 내가 그 아이들보다 뛰어난 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시간의 길이만큼 내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없는 반면에 아이들에게서는 수시로 나보다 더 나은 점을 발견한다.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나보다 더 뛰어난 생각과 재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 아주 오래전에 찍어 둔 어린 나의 모습과 지금 거울 앞에 서있는 나를 비교하며, 어쨌든 이 말도 안 되는 시간을 지각한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 11년이라는 큰 간극이 있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티가 날 수밖에 없는 긴 시간이라고. 아주 우울한 이야기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는다. 마땅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신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이들은 모두 나처럼 우울하고 두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뭐였더라”로 기억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가장 구슬프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기억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이 사실만큼은 어떤 것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나이 든 자의 애처로움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놓인 사람이 하는 일이 일평생의 기억을 주마등처럼 스쳐 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실은 늙어가는 육체도 부족한 성과도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도 하등 두려울 것 없다. 슬플 것도 없다. 오직 기억에서 멀어지는 일. 그 하나가 사무치게 아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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