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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Jan 13. 2022

기억의 총량

요즘은 지난 늦가을에 출간 제의받았던 원고를 쓰는 중이다. 격간 전성배 산문 연재로 인해 집중해서 쓰기는 아직 힘들지만, 마감일에 늦지 않기 위해 일찍이 쓰기를 시작했다. 이번 원고는 '책폴'이라 불리는 출판사에서 올해 중으로 출간될 책에 린다. 책은 여덟 명의 작가가 각각  꼭지씩을 맡아서 쓰기로 했고,  원고도 그중 하나다. 주제는 학창 시절 특히 밤에 얽힌 이야기라 나는 오랜만에 고교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귀금속 공예 특성화고를 다녔다. 그곳에서 3년간 귀금속 신구나 금속을 이용한 소형 조형물 같은 것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법을 배웠다. 고온의 불꽃과 쇠로  각종 공구, 실톱 등을 사용해 만드는 통에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여자 남자   없이 모두 손가락에  개의 상처쯤은 갖고 살았다.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을 하는 학생이었다. 보통 밤작업이라 하면 낮에 다하지 못한  마무리하는 개념이었는데, 나의 경우에는 그런  상관없이 그냥 밤에 많은 것을 만들었다.  작업 속도가 느리다거나 복잡한 디자인 때문에 밤까지 작업하는  아니라, 그저 밤에 하는 작업이 좋아서 일부러 난이도를 어렵게 혹은 낮작업에는 속도를 내지 않았다. 밤작업을 좋아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오직 밤이기에 가능한 기분과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과 함께 날이 서는 감각은 평소 낮에 집중하면 서는 감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똑같이 예민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더해 밤에는 자분자분해진다고나 할까. 예민해지고 차분해지는 정신과 마음이 창작에 불을 지폈다. 그 불씨는 낮에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내 작품은 주로 밤에 완성되었고, 남들보다 더 많이 만들었던 만큼 내 손가락에는 데이고, 찢기고, 베인 상처가 유독 더 많았다. 한때는 그 상처가 마치 훈장처럼, 예술가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 "손에 그 상처들은 다 뭐야"라고 물어보면, "요즘 작품을 하느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낯간지러운 소리다. 아무리 대단한 걸 만든다 해도 '학생의 공예품'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마추어의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스스로 아주 만족스러운. 낭만적인 3년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고교 시절의 반추는 자연스레 내 머리가 기억할 수 있는 범위를 헤아려보게 했다. 고교 시절은 비교적 잘 떠오르는 반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일순간 빛이 단절된 어둠에 갇혀, 손만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기억의 총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망각'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있다. 대중적으로는 '잊다'로 순화되어 간접적으로 쓰이고 있는 말이다. 빈도는 매우 높다. 그만큼 우리가 아주 잘 잊는다는 의미이다. 기억하고 잊기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특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까운 과거는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며 살아간다. 반면 먼 과거의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양은 늘어가고. 나만 해도 사실 이십 대의 시간들만이 선명하게 떠오를 뿐. 그 전 시간대는 하나같이 어딘가 한 부분씩 부서진 기억들로 보관하고 있다. 더 먼 과거일수록 더 많이 부서져 있다. 이 모든 게 기억의 총량 때문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기억의 양이 정해져 있기에 오래된 기억부터 순차적으로 탈락되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더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서른둘의 나보다 육십의 아버지가, 아흔을 바라보시는 할아버지가 더 많은 기억을 잃은 채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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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田性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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