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일주일 남짓 앞둔 지금 배 농가에서는 연일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는 유달리 추석이 빨라서다. 통상 9월 중순에서 말, 늦으면 10월 초에도 찾아오는 추석이 올해는 9월 초에 찾아오면서 추석에 팔아야 할 배가 채 다 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배는 주로 명절에 제수용, 선물용 명목으로 판매되는 만큼 대과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 농가에서는 추석에 맞춰 성장촉진제 처리를 통해 배의 성장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올해는 유달리 추석이 빨리 찾아오면서 촉진제 처리를 했어도 비대 기간 자체가 충분하지 않아 대과 출현율이 크게 떨어지고 만 것이다. 산지에서는 평년보다 중·소과 비중이 높고 대과 비중은 지난해의 30%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중·소과 비중이 높아진 요인에는 이른 추석뿐 아니라 올봄 기상 상황이 양호해 착과가 많이 된 점도 들 수 있다. 과일나무는 착과가 많을수록 영양분이 분산되어 대과 출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적화>와 <적과> 작업이다. 쉽게 말하자면 과수에서 개화수 혹은 착과수가 예상보다 많을 경우 이를 솎아내 적정 수의 과실만 달리게끔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해거리’라고 하여 한 해에 열매가 많이 열리면 나무가 약해져 다음 해에는 열매가 거의 열리지 않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작업은 사람이 손으로 직접 해야 하는 만큼 일손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근래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크게 떨어지면서 일손 부족으로 제대로 작업이 되지 않았다.
혹자는 그럼 수량이 많은 중·소과 판매에 더 집중하면서, 수량이 적은 대과는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면 되지 않겠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대과를 선호하는 명절 시장의 특성상 대과는 현저히 부족하면서 중·소과만 많을 경우 자칫 소비자가 배 자체를 선택하지 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명절에 주로, 특히 대과 위주로 소비되는 품목이다. 다시 말해 평상시에는 소비가 저조한 품목이기에 명절에 팔아내지 못하면 배 농가는 고스란히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재 우리나라 배 시장의 실체다. 배의 주산지 중 하나인 전라남도 나주의 경우를 보자. 보통 추석에만 배 생산량의 60%가량을 팔아내는데, 올해는 판매량이 30%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지 한 관계자가 “추석 시장에 팔고 남는 배가 4만 톤에 이를 것”이라며, “이는 지난해 나주지역 배 생산량 전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안타까운 건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통가에서는 중·소과는 팔기 어렵다며 일찍이 배 물량을 줄이고 <샤인머스캣> 등 다른 품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는 가뜩이나 농자재, 포장 상자, 기름값 등이 모두 상승해 농가 경영비가 크게 늘었는데, 이대로라면 대다수의 농가의 소득이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
※ 책 판매 수익금은 집필 활동과 농가 홍보를 위해 쓰입니다.
당장은 정부와 유통업계 그리고 산지가 손을 잡고 소비 캠페인을 벌이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면서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근시안적인 해결책밖에 되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어려운 사정을 봐달라며 물건을 사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기적으로 기고 중인 LG전자 플랜테리어 커뮤니티인 <그로로>에 최근 보냈던 <신고배를 향한 줏대 없는 사랑>(올해 말쯤 게시될 예정)이란 글에서도 썼듯 기존 배 소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배 시장의 첫 번째 문제는 <신고> 품종 하나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부유> 단감, <캠벨> 포도, <부사> 사과, <설향> 딸기처럼 단일 품종이 시장에서 대부분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사례는 흔하지만, 저들은 다양한 크기와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고배와 결이 다르다. 또 저들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품종이 도입되는 중이고, 실제로 시장에 정착한 경우도 많다. 반면 평균적으로 700g이 넘는 대과에 속하는 신고배는 오직 그 하나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다 가격까지 비싸니,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위에서 잠깐 말했던 나주지역 사례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그렇기에 실제로도 명절에 대부분의 물량이 소비되고 있고, 평소에는 제사나 요리용으로 찾는 손이 대부분이다.
기존에 있던 <원황> <화산>과 새롭게 도입된 <조이스킨> <그린시스> 등 배 시장에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두 번째 문제 때문일 것이다. 바로 대용량 유통이다.
배는 현재 평시에는 15kg, 명절과 같은 대목에는 7.5kg으로, 대용량으로 유통되기에 소비자의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가뜩이나 개별 중량 자체도 많이 나가는 신고 품종을 15kg, 7.5kg 대용량으로 유통하니, 1인 가구 등 소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요즘 추세와 맞지 않는다. 소매업장에서 이를 사입한 다음 소분해 판매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했듯 개별 중량 자체가 워낙 크기도 하고, 산지 유통 자체가 소용량화 되지 않으면 배 소비는 활발해질 수 없다.
이 문제를 농림축산식품부도 모르는 건 아니다. 신품종 육성에 적극적인 한편 배 소용량 유통 정착을 위해 산지와 몇 번이나 합의를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산지에서 신품종 도입은 대체로 환영했지만, 배 소용량 유통은 자칫 수익 저하와 물량 적체를 야기할 수 있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2022년 현재 배 소용량 유통 추진은 무기한 유보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배 시장이 살아남으려면 언젠간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일손은 지금보다 더 부족해질 테고, 소비자는 크고 많은 양의 배 소비를 점점 더 꺼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비를 견인하던 제사와 같은 명분은 세대가 젊어질수록 바래지고, 선물이라는 명분 또한 수많은 선택지에 밀려 바래질 것이기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에세이
@_seong_bae : 미문美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