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가장 가까운 곳은 바로, 포도 농부 황준수

by 전성배

농업을 사랑하는 두 청년이 있다. 그들은 많은 부분이 닮았다. 일찍이 어찌 됐든 땅과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점과 유년 시절을 자연에서 보냈다는 점, 우리나라 농업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늘 고민한다는 점 등 두 청년의 사이에는 자그마치 6년에 달하는 격차가 존재함에도 그것이 무색하게 둘은 닮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시간의 격차를 한 번 더 넘어 공통의 목표를 가진 동료로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아주 긴 추신으로 남기겠다.


나는 황준수를 농부를 만나 숱한 독자에게 자칭 농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나는 그 말을 하는 동안 사실 단 한 번도 농업을 사랑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유를 함구한 채 절대다수에게 막연히 농업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마음도 없이 만난 누군가를 시간으로 사랑하게 된. ‘정’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확한 모양새였다. 나를 가장 오래 돈 벌게 하고 먹고살게 해줬다는 고마움과 그러는 동안 농산물에 얽힌 이야기를 범인들보다는 곱절은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자만을 가진 채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그는 다르다. 그가 하는 건 분명 찰나에 반한 뒤 기한을 두지 않고 사랑하게 된 사람의 감정에 가깝다. 그는 농업을 사랑하게 된 이유를 명확히 말하는 이이기도 하다.


시작은 이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이 사랑을 중매했던 그의 부모가 귀촌을 했던 시기였다. 현재 스물여섯 살인 그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그의 부모는 경상남도 합천군으로 터를 옮겼다. 아직 삼십 대밖에 되지 않았던 두 분이 귀촌을 한 것에 그는 당시 귀촌과 귀농에 대한 관심도가 사회적으로 높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런 유행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떠나온 두 분의 행보는 그런 것치고는 전혀 유행적이지 않았다. 두 분은 합천에 내려와 폐교를 인수했다.

KakaoTalk_Photo_2022-09-07-14-10-45.jpg 황준수 농부의 아버지가 자연을 배우러 온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다.

[황준수] “도시에서 오랫동안 교육 쪽 일을 하셨던 두 분은 시골에 내려와서 농사도 농사지만, 더불어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길 원하셨어요. 바로 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가르치는. 네, 지금도 하고 계시는 자연학교는 그때가 시작이었습니다.”


어쩌면 도시에서 조금 더 편하게 했을 교육을, 그 어려운 농촌 환경 속에서 하고자 했던 두 분의 마음은 우리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알 수 있었다. 갈수록 자연에 무지해지는 아이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황준수] “수도권 과밀한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슬픔입니다. 지방의 인구 감소, 수도권 인구 집중 그로 이한 부동산 값 폭등, 일자리 부족 등등 문제야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두 분께서는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자연을 모르게 되는 걸 걱정하셨어요.”


[전성배] “그렇네요.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수도권에만 천만이 넘는 인구가 몰려 있어 사실상 도시 국가나 다름없는데요. 그렇게 되는 동안 출산율은 꾸준히 떨어져,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무려 0.75라고 합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치예요. 고령화는 둘째치고 국가 단위의 소멸을 걱정해야 정도로. 그나마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수도권에서 태어나니, 역시 국가보다는 지방이 먼저 소멸하겠죠? 농촌 지역은 여건에 따라 이미 출산율 제로를 기록하는 곳도 있으니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할까요? 네, 두 분의 걱정처럼 실제로 농촌 아니 작은 자연조차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황준수] “두 분은 그래서 가르치고 싶어 하셨어요. 도시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자연을 아이들에게 꼭 보여줘야 한다고도 생각하셨고요. 그 자연을 일찍이 몸에 새기고 성장한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 두 분은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요.”

IMG_0117.jpg 황준수 농부

[전성배] “분명 알고 계셨을 거예요. 황준수 농부님만 보아도 일찍이 본인이 살았던 농촌의 삶 때문에 이렇게 농부가 되셨으니까요. 그 정서를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으셨겠죠. 다른 아이들도 농부가 되라는 게 아니라, 이토록 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자연이라고. 그런 자연을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보다 더 단단하게 성장하고 나아가 이 땅의 위기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겠죠.”


[황준수] “농촌도 그 무해한 환경만 든다면 도시보다 더 살기 좋고, 아이들의 정서에도 더 좋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살려면, 살고자 하는 방법이 이곳보다는 더 많은 곳이 바로 도시니까 떠나는 거죠.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만 해도 유년 시절만 농촌에서 보냈을 뿐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땐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교육도 일할 기회도 농촌은 마땅치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자연은 좋은 곳이니 와서 살아라”가 아니라 이런 곳이 우리나라에 있고,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게 바로 우리나라라고도 알려주고 싶으셨던 거죠.”


황준수 농부는 그의 부모가 가졌던 이상에 첫 번째로 순응한 인물이다. 한발 더 나아가 농촌에 친히 다시 돌아가 땅과 함께 일하겠다는 다짐까지 한 게 바로 그다. 그가 농부가 되고자 했을 때 두 분이 진심으로 환영하셨다는 것을 이로써 이해할 수 있었다. 농부라는 직업의 매력과 그것에 내려진 천명을 두 분이 그에게 열심히 들려주신 것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전성배] “그간 만났던 젊은 농부님들 중 대부분은 반대였어요. 농부가 되고자 하는 자식에게 그들의 부모님은 농부의 고됨과 불합리함을 이야기하며, 부디 조금 더 편한 일을 하기를 당부하셨죠. 실은 저도 자식이 있다면 그렇게 할 것 같아요. 수많은 농부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는 제게는 더욱 그래요. 하지만 그럼으로써 누구도 농부가 되지 않게 된다면, 이 자연은 이 땅은 누가 지킬까요? 누군가는 필히 해야 하는 일. 이기적이지만, 그 사람이 황준수 농부님이라 다행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도 그곳에서 자연을 가르치는 두 분이 있어 다행입니다. 비겁한 저는 농부가 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도움을 드리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를 안위하네요.”


[황준수] “그런 작가님의 활동도 너무나 소중합니다. 농부로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전성배] “자 그럼 지금부터는 황준수 농부님에게 조금 더 집중해 이야기해 볼까요. 시작은 성인이 된 직후가 좋겠네요.”


지금부터 그가 들려줄 이야기가 바로 나와 그의 차이점이다.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농촌에서 일하는 걸 결심한다. 그것도 무전으로. 농촌은 늘 일손이 부족하니 젊은 자신이 가 일을 돕는다면 숙식은 물론이고 약간의 용돈벌이도 가능할 터. 계획대로만 된다면 정말로 전국 여행도 가능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농촌에서 일하는 것에 여행을 위한 도움닫기뿐 아니라 다른 속셈도 갖고 있었다.

IMG_0119.jpg 황준수 농부

[황준수] “스무 살이 되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건 여행이었어요. 그와 동시에 이번 여행을 오랫동안 영위하기 위해 농사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경비도 경비지만, 농부라 불리는 사람을 부모님 외에는 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거든요. 다른 농부는 어떻게 일하고 다른 작물은 어떤 힘으로 길러질까. 이왕이면 전국을 돌며 그 두 가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아니 진짜 목적은 바로 이것인데요.”


정말로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황준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의 농장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타인의 농장에서 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농부라는 직업을 알고자 했다. 그 경험을 하고도 진정 내가 농업에 관심이 있다면,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면 그는 어떤 형태든 땅과 가까운 곳에서 일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던 나는 조금 기가 막혔다. 이게 정녕 스무 살의 어린 청년이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인가? 결심인가? 적어도 나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스무 살의 나는 학교에서 알선해 준 직장을 다니며 꿈보다는 꿈만 같던 여인을 좇았다. 그러다 군대를 갖고, 전역한 후에는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친구의 꾀임에 넘어가 시장에서 과일가게 일을 시작했다. 그게 내가 농산물과 연을 맺은 계기다. 낭만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시작. 그것을 자그마치 4년이나 이어간 끝에 지금처럼 혼자 일하게 되었다. 농산물을 팔다가 지금은 농산물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그렇다. 나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유일하게 아는 농산물을 나의 유일한 무기로 삼고 여태껏 휘두르며 살고 있다. 그러는 동안 정이 쌓였던 것이고. 농업을 향한 사랑의 구체를 알아보는 시간을 난 단 한 번도 가지지 않았다. 이만하면 과연 사랑은 하고 있는가를 자문해야 할 지경이다. 서두에서 말했던 대로 나는 정말 정으로 농산물과 사는 것인가.


황준수의 여행은 무려 2년여간 이어졌다. 처음 목표한 바대로 전국의 농가를 다니며 일하고, 밥을 먹고, 몸을 뉘었다. 부모의 농장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농부라는 직업의 지난함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야말로 성실히 사랑의 윤곽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끝내 여행의 종점에서 농업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리라 다짐했다. 이후에 그는 입대를 했고, 전역 후에는 얼마간 다른 일을 하다 농업과 가까운 곳이라 하면 역시나 땅이고, 그 땅과 가장 가까운 건 역시 농부라는 생각에 닿아 긴 준비 기간 끝에 2022년 초봄 드디어 농부가 되었다. 첫 시작은 경상남도 합천군. 부모와 함께 살던 곳이었다. 첫 작물은 샤인머스캣이었고. 스무 살의 여행에서 알게 된 김천의 한 포도 농부가 그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 주었다.


[황준수] “지금은 약 400평 정도의 규모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김천의 포도 농부님과 주변에 계시는 포도 농부님이 친히 스승님이 되어 도와주신 덕분에 시설과 묘목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단, 여전히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기에 추가로 지역 농업기술센터와 방통대를 통해 열심히 채워가는 중입니다. 다음 계획은 어쨌든 규모를 넓혀야 하니 청년농 사업에 지원하려고 합니다. 이미 준비에 들어갔는데 아마 내년쯤에는 신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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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수 농부가 자신의 농장에 시설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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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의 일이다.

그간 나는 몇 명의 청년 농부를 만났다. 그들은 저마다 휘황한 사연들을 등에 업고 농부가 되었고 적게는 2~3년, 많게는 5~6년을 농부로 지냈다. 즉 그들 모두 몇 번은 자신의 작물을 길러낸 경험이 있는 것. 그래서 이제 막 시작하는 황준수 농부와의 대화에 나는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이제 막 시작하는 청년 농부들의 반은 얼마 안 가 그만두기 일쑤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단 한 번도 제 작물을 기른 적 없던 사람. 전심을 다해 쓴 글이 훗날 무용한 것이 될까 염려가 되었다. 나는 나와 농부의 글이 아주 오래오래 우리의 공간에 남아, 농부를 찾는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란다. 나의 불안에 대한 나름의 변호라면 변호다. 허나 결론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더 잘 알다시피 기우였다. 아주 오랫동안 농부로 살아갈 한 사람의 시작을 나는 그저 운 좋게 먼저 포착했을 뿐이다. 행운이다.


그는 농업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일찍이 증명하기 위해 전국을 다녔다. 거기서 만난 인연을 훗날 자신의 스승으로 만들었다. 그는 용기 있고 거침없는 사람이다. 인연을 이끄는 힘을 보아 성품도 보통이 아닌 듯하다. 그와 나는 똑같이 유년 시절을 농촌에서 보내며, 시멘트보다 흙을 더 많이 밟으며 살았는데 어찌 이렇게 다를까.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묘한 열등감이 느껴졌다. 미래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나의 물음에는 “기술을 쌓아 훗날 농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스승이 되고 싶고, 농업 기술이 부족한 지역과 나라에는 조력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약간의 경이감과 창피함을 느꼈다. 농부를 이야기하는 나의 일이 결코 작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유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이토록 목표마저 뚜렷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말했다. 이 땅의 농업을 위해 자연을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자고. 그저 감사한 말이다. 나의 글쓰기는 이미 그 일환이니 분명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기는 힘들 것 같다. 나는 아직 사랑의 윤곽을 그리지 못했다. 나는 먼저 그것부터 해야 한다. 보기 좋은 말로 꾸민, 허세 같은 이유가 아니라 진짜 이유를 나도 찾아야 한다. 정으로만 농업과 함께하기에는 농업은 너무도 사랑스러운 존재다.


내가 농업을 사랑하는 이유는….


2022. 6. 7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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