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까지 보은 대추를 말할 수 있을까

by 전성배

처서處暑를 코앞에 두고 있는 오늘도 뜨거운 볕이 내리쬐고 있다. 예년보다 긴 더위가, 평년보다 뜨거운 더위가 마치 여름을 가을도 없이 겨울의 코앞까지 이끌 것만 같은 불안한 날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초여름에 꽃을 피웠던 무언가가 지금 그 꽃잎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초록색을 현현하며 여름에 피었던 자신의 꽃에 경애를 드러낸다. 아, 나는 그 모습에 탄성을 감추지 못한다. 가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일순간 종식시키는 존재의 탄생을 목도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9월 말 즈음엔 입추立秋라는 절기도 정확하게 짚지 못한 가을을 비로소 명료하게 짚으며 발음할 것이다. 지금부터 가을이라고. 경애를 다한 자신의 초록을 가을의 적갈색으로 물들이면서. 우리가 그를 <대추>라고 부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대추는 6월~7월 무렵 즉 여름에 꽃을 피운 뒤 8월 중순쯤에는 초록의 열매를 맺고, 9월 하순에는 적갈색으로 서서히 익는 열매다. 주산지는 경상북도 경산과 군위, 청도 그리고 충청북도 보은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보은 대추는 특히나 전국적으로 그 품질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대추 산지에서 들으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보은군의 대추를 제일이라 말하고 싶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자란 농산물을 제일로 여기는 건 그곳에 빚을 진. 고향이라 부르는 사람이 가져야 할 예의이지 않은가. 나는 보은군 내북면 창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내가 자각하는 기억의 기저에 가장 먼저 깔린 것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인천도 아니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그 낡은 집의 시간의 일부다.


<너를 애도하는 날에도 나는 허기를 느꼈다>

※ 책 판매 수익금은 집필 활동과 농가 홍보를 위해 쓰입니다.


보은군 대추가 유명한 이유는 지리적 특성에 있다. 여기서도 땅의 조건과 산업의 조건이 적당히 합쳐져 대추의 맛을 키웠다. 먼저 보은군은 내륙 분지 지형으로 태풍과 같은 재연 재해가 적은 반면 일조량은 많고 일교차가 커 대추는 물론이거니와 사과와 배 등의 과수도 자라기에 좋은 조건을 가졌다. 아울러 지형뿐만 아니라 토질에도 비법이 숨어 있다. 내륙 분지는 난바다와 수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모래 함유량이 많은 사질 토양이 보통으로, 보은군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질 토양은 다른 토질에 비해 작물에 필요한 영양분이 적을 수밖에 없는데, 대신 높은 투수성과 통기성 그로 인한 유기물 분해가 빠르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이 역설적으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게 하는 방법이 되었다. 보은군은 과수 산업뿐만 아니라 한우로도 유명하다. 즉 수많은 농가에서 나오는 축산 퇴비와 같은 유기물 비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화학 비료 사용은 지양하는 것으로 사질 토양의 단점은 보완. 장점을 살려 과수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은 대추 또한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될 정도로 우수한 품질을 갖게 되었다.


다만, 이 모든 건 농부가 예상할 수 있는. 혹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흘러가는 자연의 순리일 때 가능한 이야기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격화되는 이상 기후는 더 이상 보은의 대추가 아니 모든 지역의 농산물이 제 명성을 지킬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대추의 작황이 좋다는 말보다 올해도 좋지 못하다는 말을 더 많이 듣는 해를 몇 번째 보냈는지 모르겠다. 올해만 해도 지난 6월에 발생한 이상 고온 현상과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 8월에 쏟아진 전례 없는 폭우, 긴 장마로 인해 수확량은 지난해 대비 50% 이상 급감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에 매년 10월이면 열리던 보은 대추 축제는 당초 계획했던 축제 기간보다 크게 줄은 열흘간만 열린다는 소식이다. 자그마치 팔 일이나 줄은 것이다.


내가 빚을 진 보은의 명물, 대추는 점점 명물의 모양새를 잃어가고 있다. 과거 보은의 대추 농부는 대추 하나로 의식주는 물론 자식의 혼인 비용까지 해결했다. “삼복에 비가 오면 보은 처녀의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진다.”라는 속담이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어떤 작물이든 대추와 같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귤 농부에게는 귤이, 사과 농부에는 사과가, 축산 농가에는 돼지와 소가, 어민에게는 물고기가 농축어민을 먹여 살렸다. 그러나 이 땅은 이제 범지구적 재해에,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예견된 미래에 그간 자신들을 살리던 작물의 이름을 잃어가고 있다. 아직은 그 이름을 쥐고 있는 손이 버티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에 태어났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발행인이며, 농산물을 이야기하고 농부를 인터뷰한다. 농업계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 삶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지은 책으로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나라 농부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다.


aq137ok@naver.com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에세이

@_seong_bae : 미문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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