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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서러움은 아이에게 있어 이토록 무른 것

by 전성배

미운 이들과 살던 시절이 문득 생각났다. 사람이 미워 결국 죄 없는 장소도 미워하기로 하였으나 돌이켜보니 억울하고 서럽던 시절은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 잊히는 피로감, 딱 그 정도였던 모양이다. 그 밉던 것들이, 적어도 염치는 있어서 안갯속에 여생을 스스로 묻기로 한 것들이, 안개를 헤집으며 떠오른다. 장소와 사람이 떠오른다.


어미는 집에 있는 날보다 집에 없는 날이 더 많았다. 단칸방 살이가 숨이 막혀서였을까. 모자란 숨을 몰아쉬기라도 하려는 듯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나가 짧게는 한나절, 길게는 며칠을 소식도 없이 있다 들어오곤 했다. 돌아온 어미가 멀쩡한 모습을 띤 적은 거의 없었다. 대체로 취해 있었고, 취한 몸은 언제나 크고 작은 상처를 달고 있었다. 취기를 못 이겨 부딪히거나 넘어져 생긴 것들이었다. 나이 먹은 몸이 세상에 기대 휘청이는 모습을 지금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 대체 얼마나 억울하길래, 대체 술이 뭐길래 그 어린아이들을 두고 밖을 돌 수 있었을까. 어른이 된 아이는 안다. 어떤 이유든 제 아이를 내팽개칠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때 그 아이는 걱정뿐이었다. 다치고 어눌한 말투의 어미의 모습에 지레 겁이 났다. 자신이 아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기에.


그날도 엄마는 며칠을 입어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그대로 방에 드러누웠다. 아이는 잠든 엄마의 두 팔을 잡고, 있는 힘껏 방 안 쪽으로 끌어당겼다. 가장 따듯한 공간으로 옮기기 위함이었다. 옥탑방의 겨울은 사실 어느 곳이든 춥기 마련이지만, 확실히 현관보다는 방 안 쪽이 덜 추웠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따듯하게 자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는 제 몸에 족히 두 배가 넘는 어른의 몸을 당겼다.


옮기자마자 한 일은 엄마의 머리에 베개를 받친 뒤 사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어디가 다쳤을까. 전에는 무릎이 까져 있었는데. 다행히 이번엔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 다만 며칠 전 참치 캔 뚜껑에 베인 상처가 거즈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요즘 통조림 제품은 고객이 다치지 않게 여러 안전장치를 해 두었지만, 그때 통조림 류는 하나같이 날이 서 있었다. 그래서 캔 뚜껑을 따다가 손이 베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엄마는 다 먹은 빈 캔을 버리기 위해 뚜껑을 분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중에 베였다. 손금을 따라 정확히 베인 상처가 꽤나 깊어 병원을 가는 게 옳았으나 엄마는 대충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덧대었다. 당시 갓 서른을 넘긴 엄마도 병원은 무서웠던 것 같다. 아이는 피 흘리는 엄마가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고.


덜렁이는 거즈를 떼어내니 불어있는 상처가 드러났다. 이제 피는 멎었지만 벌어진 피부 사이로 새살이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엉겨 있었다. 찢어진 몸이 자력으로 회복하려는 치열한 모습. 아이는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르고, 새 거즈를 네모나게 잘라 두어 번을 접은 뒤 덮었다. 마지막으로 의료용 테이프를 여러 개 잘라 단단하게 고정하였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엄마가 하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했으니 틀린 방법은 아닐 것이었다. 이 일화는 아이가 성인이 되고, 청년이 되고, 중년을 앞두고 있는 여태껏 어미가 추억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된다.


제 아이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참 착하다는 일차원적인 주장에 입체감을 더하기 위해 꺼내는 이야기. “우리 아이가 참 그렇게 착해요. 엄마 손이 다쳤다고, 그 아무것도 모르는 게 어쭙잖은 손으로 기억을 더듬으면서 상처를 덮어주더라고요.”


사실 다 큰 아이는 어미가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부아가 치밀었다. 자신의 치부를 숨기고, 제 눈에 아름다운 것만 이야기한다는 게 화가 났다. 제 자식을 예쁘게 봐달라 말하는 부모의 그것과 다름없는 마음이었지만. 그 치부를 꺼내서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는.


아이는 어미와 아비와 누이와 살던 모든 시절을 싫어한다. 그 시절에 살던 학익동과 용현동, 신현동, 석남동도 모두 싫어한다. 아이의 글의 모든 과거는 그들을 빼고 쓰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들을, 그때 그 동네들을 떠올리고 있다. 어떤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가족의 일생이 우리의 가족과 단 하나도 같지 않아서 도리어 우리가 떠올랐다. 어떤 기억은 때론 단 하나의 유사성도 없을 때 더 강하게 떠오른다. 비교하며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래 본 적 없다고.


생각해 보니 그런 날도 있었다.


두 밤만 있다가 돌아온다던 엄마는 며칠을 더 보내고 나서야 돌아왔다. 아이는 엄마가 또 거짓말을 했다며 엄마가 돌아온 밤, 그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마른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베개 위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을 씩씩대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눈을 떴을 때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에 취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이는 일순 화난 사실도 잊고, 오랜만에 맨 정신에 잠든 엄마 옆에서 다 깬 잠을 다시 불러왔다.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가족을 싫어하고, 그들과 살던 모든 곳들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때 그 작은 기억들을 떠올린다. 괴로웠던 상황과 감정들은 퇴색되거나 스킵되고, 아주 조금 따듯했던 이야기들로 와전되어 떠오른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잊히는 피로감처럼. 미움과 서러움이 아이에게는 이토록 무른 것처럼.



과일 장사꾼을 위한 이야기 <내가 팔았던 계절>

https://litt.ly/aq137ok/sale/Zm0Fk1U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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