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장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장사에 고될 만도 한데, 집으로 돌아가면 기어이 몇 글자라도 적던 시절, 바람이 체력을 이끌던 때. 실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지금보다 더 필력이 부족해 단문으로 가려야만 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제는 제대로 글을 쓰기 위해 장사를 그만두었을 때쯤 너를 만났다. 아니 우리가 다시 만났다.
열두 살에 처음 만났고, 스물일곱에 다시 만난 것이다. 너는 변함없는 얼굴과 목소리와 키로 나를 반겨 주었고, 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너를 반가워했다. 우리 사이에 쌓인 시간이 높고도 공고해서 한 명의 인간이 바뀌기에는 충분했으므로. 살은 많이 빠지고, 근육은 조금 붙고, 장나끼 많던 아이는 글과 가까이 사는 사이에 조금 진중해졌다. 덥지도 춥지도 않던 봄날에 우리가 만나 나눈 대화에는 제법 이십대 후반다운 진지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너는 그때 같이 모여 놀던 친구들 중에 유독 나를 더 좋아했다고 들었다. 인터뷰와 글쓰기로 자리를 함께하지 못할 때에는 내 얘기를 꼭 꺼냈고, 내가 나온 날에는 유독 더 활기차졌다고 했다. 지금도 너는 인정하지 않지만, 나는 그게 네가 나를 좋아하는 중에 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네게 빠지는 중이었던 것처럼.
서로에게 빠지고 빠지다 우리는 결국 사귀게 되었고, 사귀자 말한 시간으로부터 8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과거에 만났던 그 어떤 연인들보다 더 오랜 시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각자의 한 시절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래 목도했다.
네가 본 나는 참 곡절이 많은 삶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글을 쓰기를 수 년, 끝내 서른 한 살의 첫 책을 내고 이듬해 바로 두 번째 책을 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동시에 성과를 내는 건 참으로 어렵다던데, 크지는 않아도 적당한 성과를 일궜으니 너는 내가 제법 멋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이를 굵은 이력으로 삼아 농부를 만나고, 과일을 파는 걸 보면서는 앞으로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도 했을 것이다. 혹은 먹고 남을 돈을 번다던가. 당장은 홀로서기가 위태로워 보여도 네게는 그런 믿음이 있었겠지. 그리고 지금 이 모습은 너의 상상에는 없던 모습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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