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돌봄을 제공할 의무가 없는가?
지역사회 일원으로 학교가 되길 바라며...
초등학교 1-2학년 27일(수)에 등교하기로 결정되었다. 학교별로 편차가 있지만, 인천 다수의 학교는 홀수와 짝수 번호에 따라서 퐁당퐁당 등교가 될 듯하다. 그리고 하루는 학교 방역의 날로 지정되면서 실제 1주일에 2회 정도 학교에 갈 것 같다.
학교 등교에 맞추어 긴급돌봄이 끝이 났지만, 문제는 등교를 하면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기에, 기존 긴급돌봄 학생들의 경우 돌봄 공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 등에 교육부가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을 통해서 앞으로 학교에서 돌봄 제공을 의무화하려는 입법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전교조, 교총, 교사노조 등의 반발로 교육부 발표 2일 만에 철회가 되는 해프닝이 발생하였다.
교원 단체 등의 반대는 돌봄의 의무는 지역사회라는 입장이었다.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돌봄제공기관은 아니라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나는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단순히 초중등교육법의 개정만이 아니라, 이 기회에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해보는 것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나의 의문.
학교는 지역사회 일원이 아닌가?
교원단체의 논리 중 하나는 돌봄 제공의 의무는 지역사회라는 것이다. 그럼 학교는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일원은 아닌가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교원단체들의 이런 사고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 범주는 어떤 지역을 근거로 모여 있는 모든 것들이다. 지역사회 범주에는 학교를 포함한 다양한 공공시설, 주택, 민간 업체 등을 망라한다. 즉 어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지역사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교원단체는 돌봄이 지역사회라고 의무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책임성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원래 학교는 지역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근대화 이전에는 서당/향교를 통해서 지역사회에 필요한 공동규칙을 학습토록 하면서 현 시스템을 유지/강화하는데 기여하였다. 즉 학교라는 공간은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했다. 근대화되면서 학교는 노동자 양성소로 바뀌었다. 서구 사회는 가정의 돌봄제공자가 하루 12시간 일을 하면서 돌봄제공의 필요에 의해서, 신분 상승의 통로로서 기능하였다. 여기에 교육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주요 기능은 지역사회의 요구에 따른 부응이었다.
현대가 되면서 학교는 사회의 분업 시스템에 기여한다. 결국 교육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분업화되기 시작했다. 역시 지역사회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학교가 독립적으로 존재해서 교육만을 제공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맞지 않을뿐더러, 논리적이지 않다.
다시 원론으로 들어가면, 돌봄이라는 것은 지역사회의 어떤 기관이 주도적으로 담당하여야 한다. 지금은 한 가정에서만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주도적인 기관이 학교여야 하느냐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럼 지역사회에 어느 기관이 돌봄을 제공하면 좋을까라는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진보교육감 시대. 마을교육이 각광을 받고 있다. 마을교육이란 무엇일까? 마을 교육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이는 학교가 지역사회 일원으로서의 선언이고, 지역사회와 함께 학교를 운영한다는 철학이 배경이다. 그런데 그동안 학교에서 진행되는 마을교육의 실상은 마을을 대상화하고, 자원화했다는 것이다. 나는 돌봄과 관련한 논쟁에서 학교는 진정 마을교육 공동체를 실현할 의지와 철학을 지녔을까 의심된다.
교육이란, 학교란 무엇일까?
이 주제는 너무 본질적이다. 나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깊이가 없다. 그냥 나의 생각을 끄적거려 본다.
교육은 한 사람이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행위를 하는 이들은 교사만의 몫인가? 그렇지 않다. 학교 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전인교육이라고 하지 않나? 전인교육은 사람이 되어가는, 즉 사회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사만 그것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노동자로서, 민주시민으로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등 다양한 모습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교육은 본질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그 시대가 요구되는 것들에 대해 파악하고,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현시대는 교육과 돌봄의 결합을 요구한다. 학교라는 공간이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것을 넘어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부모가 일을 하는 시간 동안 일정 부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도 사고된다. 이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논쟁되었고, 제기되었던 이야기다.
나는 이 기회회에 교육과 학교라는 본질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주차장으로서, 조기축구회의 축구장으로서가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지역사회의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 예를 들면,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이들이 학교 공간을 활용하여 교육이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운동장은 주민단체나에게 무료로 개방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만 그 책임을 온전히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관과 책임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이런 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싶다.
학교 개방과 관련하여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리고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 담장을 없애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의 안전사고 발생으로 모든 게 없는 일처럼 되었다. 학생들의 안전도 중요하다. 그래서 학교의 안전을 학교만 책임지게 해서는 안된다. 학교가 할 일은, 교원단체가 할 일은 이런 일들을 학교만 온전히 책임지도록 하는 것들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대안은 무엇일까?
대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정책과 제도, 인력과 예산, 사회적인 합의 등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그래도 몇 가지 조심스럽게 대안을 제시해보면.
우선 대규모/과밀학교는 소규모화 되어야 한다. 학교가 과밀화되는 것은 지자체 등의 도시계획의 결과물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을 계획하면서 학교는 그 안에 1개 정도만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학교는 과밀화된다. 코로나19에 취약한 학교는 대규모/과밀화된 학교다. 과밀학급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거대한 학교는 돌봄 등 제공에 있어서 보수적이다. 큰 학교는 긴급한 시기에 융통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이제는 학교 소규모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둘째. 학급당 학생수를 획기적으로 낮추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의 연장이다. 학급당 학생수를 15명 내외로 하면서 교사들의 행정 업무를 대폭 줄여야 한다. 학급당 학생수를 낮추면서 돌봄과 관련한 논의를 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셋째. 학교 개방에서 지역사회 돌봄을 제공하는 기관이 학교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지역사회라는 공간을 찾아봐도 학교보다 좋은 곳은 별로 없다. 어떤 곳은 학교가 유일하다. 이렇게 좋은 시설물이 개방되지 않고, 오후 4시 30분이면 문을 닫는 것은 낭비다. 학교 시설이 지역사회에 공유되어야 하고, 이렇게 긴급한 시기에 지역사회와 돌봄을 나눌 수 있도록 관련기관 협의가 시급하다.
나는 교육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라 어떤 부분은 이상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은 긴급한 시기에 학교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보면서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해보지만, 실상 본질적인 이야기는 하지 못함에 대해 씁쓸했다.
교육부는 당장의 법 개정보다 우선 찬찬하게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시간을 가지고 논의해보면 어떨까 싶다.
#지역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