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는 작지만 그 의미는 작지 않은
다소 내향적인 성향인 나는 작은 책방이 불편했다. 책방에 들어가는 순간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림이 부담스러웠다. 서로 의식하고 있으면서 침묵하고 있는 것이 책을 구경하는데 다소 방해가 되었다. 게다가 책방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사고 나와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방문했었다. 그래서 겉핥기식으로 슥 구경하고 언뜻 들어봤던 제목의 책을 급하게 사서 나오기 일쑤였다. 책방도 좋고 응원하고 싶지만 무엇보다 불편한 마음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책방 주인이 열심히 골라놓은 책들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작은 책방들에 대한 책을 읽고 책방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해본 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도 작은 책방에 가게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최근에는 대형서점의 진열대에 ‘광고'라고 붙기 시작했지만) 대형서점의 진열대는 대형 포털 사이트의 배너 광고판과 같이 돌아가고 있다. 가장 노출이 잘 되는 자리는 몇 천만 원의 자릿값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대형서점에는 방대한 양의 책이 있고, 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각종 편의시설이 있어 편의성이 크다는 장점이 있지만 크게 보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돌아간다. 철저한 분석에 의한 수지타산이 계산된 될만한 게임의 대표주자인 책들이 자릿값을 내고 진열되어있다. 씁쓸하게도 대형서점도 책 판매가 어려워서 그렇다고 한다.
책 판매가 적어서 > 책을 진열하는 자릿값을 받게 되고 > 마케팅 비용이 높게 책정된 책이 더 많이 노출되고 > 등단한 작가의 책, 상업성이 짙은 책이 우선 노출되고 > 다양한 책이 노출될 가능성은 더 줄어들고 > 창작환경은 더 나빠진다.
얼핏 보면 이런 악순환의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희망이라면 작은 책방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SNS의 파워가 강력해지고 있어서 주목을 받지 못한 책이나 작가들이 발견되고, 자본의 게임의 판도를 뒤엎는 책들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작은 책방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잉하며 그들이 추천하는 책을 자주 보다 보니 대형서점에서 주로 팔리는 책과 독립서점에서 주로 팔리는 책의 차이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은 책방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만한 점은, 광고비를 받지 않고 직접 고른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와
당신이 읽은 책 목록이 비슷하다면
당신은 광고에 상시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작은 책방에서는 사소한 이야기, 신진 작가의 책이라도 책방 주인의 마음에 든다면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될 가능성이 있다. 대형서점에서는 책장 구석에 꽂힐 책도 작은 책방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다. 오직 책 자체로만 추천받을 수 있는 곳은 지인 또는 작은 책방이 유일하다. 케이크에 비유하자면 대형서점은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판매하는 케이크 vs 작은 책방은 로컬카페에 있는 홈메이드 케이크와 같다고나 할까.
작은 책방들에 관심을 가진 뒤로는 베스트셀러의 범주를 벗어나는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베스트셀러는 검증된 리스트일 수도 있지만 단지 지금 인기 있는 책 일 수도 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하고 묻혀버린 책 중에도 좋은 책은 너무 많다.
책방들의 열악한 사정을 여러 책에서 봐왔다. 이렇게 힘든데 이 사람들 왜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큰 서점과는 책의 원가가 다르게 책정되어 최저시급도 나올까 말까 한 구조인 것 같았다. 책방지기들을 인터뷰한 책을 읽어보니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책과 사람’이 두 가지를 좋아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책방지기들의 생각을 살펴보니, 책방은 책을 팔아서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현실적으로 책만 팔아서 이익을 내고 있는 책방이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형서점에서 사든 작은 책방에서 사든 책의 내용은 같다는 것이 가장 걸림돌이 된다.
작은 책방의 가치 또는
책방에서 얻은 경험에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사람들이 작은 책방에서 책을 사게 될 것이다.
(책방 관계자분들이 보고 뭔 헛소리야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책을 파는 곳보다는 책방의 경험, 책을 읽는 경험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방의 경험이라 하면 책방에 들려서 주인과 나누는 이야기 일 수도 있고, 묻혀 있거나 일반 서점에는 없는 책을 만나는 경험일 수도 있고, 책방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겠다. 모든 게 디지털화되어가면서 텍스트에서 이미지 영상으로 빠르게 전환되어가고 있다. 이야기는 좋아하지만 글씨로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독서를 ‘지적인, 생각이 깊은, 지식인들이 주로 하는’ 이런 이미지로 만들수록 책이란 것은 고립될 것 같다. 함께 즐겁게 소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었으면 좋겠다.
작은 책방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독립출판물의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기도 하고, 같은 취향을 가진 독자들을 연결하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이들이 저자로 성장하기도 한다. 공간은 작지만 그 의미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자영업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책방은 그 동네의 로컬 문화의 거점이자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창구이다. 나 같은 창작자 입장에서는 작은 책방들이 잘 되어서 책 판매를 부탁할 작은 책방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작은 책방들이 잘 먹고 잘 살아야 작은 목소리로, 파편과 같이 세세하게 쪼개진 취향, 뚜렷한 개성을 담은 책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설 수 있는 곳이 더 많아진다.
회사가 점차 없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 창작자는 더 많아질 것이다. 기부의 마음이든, 공간에서의 경험이 매력적이라면 책을 정가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든 영세한 창작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늘어나야 개개인이 생산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 움직임의 시작이 어쩌면 가장 영세한 작은 책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작은 책방 팁
작은 책방에서 발견한 좋은 책이 있다면 책방에서 구매해주세요. 대부분의 작은 책방들이 시간을 들여 책을 고르고 있습니다. 책방지기의 노력으로 좋은 책과 만나게 되었다면 그 책방에서 책을 구매해주세요.
작은 책방 관계자들에게
독립서점 연합을 만들어서 출판사로부터 공동구 매식으로 매입해서 공급가를 줄인다던지 하는 대안은 없을지 고민해주세요. 항상 응원합니다. :-)
이 글을 쓰는데 영향을 끼친 책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 브로드컬리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이후북스 책방 일기' - 알마
'로컬전성시대' - 어반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