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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글 Apr 04. 2019

책이 안팔리는 이유

광화문에서 일정이 일찍 끝나서 집에 가기에는 아쉬운 시간에 교보문고를 들렸다. 서점을 둘러보다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책이 불현듯 생각나서 검색을 했다. 나온 지 좀 된 책이라 그런지 재고가 1권뿐이었다. 진열대에서 찾을 수 없어서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곧 가져다주었다. 책의 가격은 만오천원이었고 비닐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 살펴볼 기회도 없이 포장된 책을 살지 말지 바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책을 꽤 산다는 나도 그런 상황에 닥치고 보니 당황스러웠다. 책의 내용에 대한 정보 없이 만오천원을 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구매를 보류하고 외서 코너로 발을 옮겼다. 마침 1년에 한 번 한다는 할인 기간이었다. 외서가 20% 할인한다는 건 여행을 가지 않고도 현지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니까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잠시,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몇 권 발견했는데 할인을 받아도 대략 2만원 후반대~3만원였다. 2권을 사면 5만원, 3권을 사면 대략 8만원쯤. 몇 번을 들었나 놨다. 책을 살 때에는 왜 이렇게 고민이 되는 것일까?



책을 살 때에는 왜 이렇게 고민이 되는 것일까?




불확실한 행복

책 구매는 불확실한 행복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소비하는 먹을 것, 입을 것, 잡화 등은 구매와 동시에 기대치가 충족된다. (물론 책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책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을 가질 수 있다. 돈만 내면 가질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완전히 소유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설령 시간을 들였다 하더라도 기대와 다르게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구매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행복을 사는 것이며, 시간과 노력을 들이겠다는 다짐도 일부 포함되는 것 같다.


양장본 책의 보통 가격인 2만원을 예로 들면 체감이 확 된다. 만약 2만원짜리 신상 치마가 날씬해 보이기까지 한다면 너도 나도 지갑을 열었을 것이다. 치킨이 먹고 싶은 날에 2만원은 손쉽게 쓸 수 있는 돈이다. 2만원으로 예쁜 카페에서 케이크 한 조각에 커피 두 잔을 마시면 금방 행복해질 수 있으며 인스타그램에 인증샷도 남길 수 있다. 앞에 언급한 치마, 치킨, 카페는 보장된 행복이며 시간과 노력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치품도 아니고 필수품도 아닌

인간의 욕망 중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식욕, 수면욕, 성욕 등이 있다면 책은 그 어느 것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책이 사치품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책은 필수품도 아니고 사치품도 아닌 것 같다.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물건에 가까운 것 같지만 사치품으로 정의 내리기도 힘든 것 같다. 인간의 욕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 구매력도 낮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만약 책이 식욕을 떨어뜨려 준다면?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더해준다면? 불면증을 치료해준다면? 책은 다르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책을 산다고 해서 내가 좀 더 멋있어지지도 않으며, 당장 더 나아질 것이 없다. 반대로 책을 안 산다고 해도 잃는 것이 없다.


사치품의 정의
- 위키백과 : 사치품 또는 호사품은 고소득 소비 계층을 겨냥하여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적은 물량으로 고급스럽게 만들어 낸 상품이다.
- 네이버 백과사전 : 분수에 지나치거나 생활의 필요 정도에 넘치는 물품.




쾌락의 속도

인간은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고 죽을 때까지 소비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이 텍스트 > 이미지 > 영상으로 급변하고 있다. 유튜브를 틀면 손쉽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영상을 보기 전에 수없이 노출되는 광고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이제는 다들 알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공짜이기까지 하다. 영화는 5~10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보고, 책 소개는 카드 뉴스의 이미지로 슥슥 10초 만에 넘겨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쾌락을 주는 속도가 너무 느리며 비용까지 지불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텍스트를 주로 운영되는 브런치도 성장세가 더디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는 10초 아니 지금 당장 쾌락을 느끼고 싶어 하는데 텍스트는 그 속도를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빠르게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볼거리가 널릴 세상인데 뭐하러 돈을 주고 '읽을거리'를 소비하나라고 우리의 본능이 이야기하고 있다.




공공재로 인식

자그마한 살롱에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서관이 있으니까 책 사는 돈이 아깝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사람들에게는 책은 공공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책이 팔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구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살 때 망설이게 되는 이유를 적어보았다. 그럼에도 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생각의 힘을 기르기 위함이다. TV의 다른 이름이 '바보상자'라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영상은 즉각적인 쾌락을 주는 만큼 모든 감각이 동원되고 생각의 틈을 앗아간다. 이건 경험으로 알 수 있는데, 나의 경우 영상을 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할수록 창작물이 적어진다. 나는 영상을 많이 소비할수록 생각의 시간이 줄어들고 > 영원히 소비자로 남을 확률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직장이 없어지는 시대, 개인이 부각되고 개인으로서 생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각자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기르고 이것을 바탕으로 무언가 만들어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종이책은 몇 백년간 이어져온 플랫폼이다. 종이책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해도 책을 구매하고 읽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면 이야기를 담을 매체가 하나 줄어드는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미래의 밥그릇 하나가 줄어드는 것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해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 당신은 미래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것인가?



지난 몇 달간 책을 정말 많이 샀다고 생각했는데 지출내역을 살펴보니 두 달간 23만원 정도를 썼다. 책 구매비용 치고는 적지 않지만 겨울 패딩 하나 값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책이 안 팔려서 서점은 출판사에서 책 진열비를 받아 유지하고, 책이 안 팔려서 외국처럼 가벼운 문고본을 만들어낼 수 없다. 여전히 암담한 현실이지만, 미리 투자를 받아 책을 판매하는 북펀드, 챕터별로 쪼개서 판매하는 전자책 싱글즈, 독립출판물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재미있는 게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책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생각 한 조각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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