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게이가 아니라 패션게이다

원나잇 금지법

by 이정우 글

성경을 들고 스쿼트를 하다가 생각했다. 성경에서 동성애를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있다는 이유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다는 이유만으로 시위 차량 앞에 드러누워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한 믿음 모두 가득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종교 하나나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이라는 글이 그 정도의 열정을 불어넣어 준다면 나도 원래 쓰던 글 대신 종교서를 새로 만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설파하고 싶은 내용도 이미 있다. 우리는 한 번의 삶이 끝나고 나면 모두 이 세상 또는 다른 세상에 새로운 존재로 배정받는다는 이야기다. 우리 종교에선 더 좋은 존재로 배정받기 위해 기도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 매사에 행동을 조심할 필요도 없다. 더 좋은 존재란 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헌금을 두 배로 내준다면 나에겐 좀 더 좋은 존재가 될 수 있겠다.


가끔은 화장실이 이슬 머금은 아늑한 곳인 것 같아서 너무 좋고 돌아서면 화장실도 아닌데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옷을 벗고 있어서 당황스러운 피터 폴 루벤스의 <파리의 심판> 같은 느낌을 느끼게 된다. 여신의 옷을 벗는 의미가 있고 여성미를 표현하는 의미가 있다지만 내 앞에서 옷 좀 안 벗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화장실이 좋다. 안정된 공간에서 나만 옷을 벗을 수 있으니까. 천주교 성경에서의 하느님은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어서는 안 되고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더 여성복을 입어보고 싶어졌다. 그림 속 사람들도 상대 성별의 옷을 못 입어보는 것에 안달이 나서 차라리 옷을 벗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잘못도 안 될만한 걸 막았을 때 사람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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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판>은 인터넷에 와인의 역사를 바꿔놓은 파리에서 열린 포도주 시음회로 더 많이 나온다. ‘프랑스 와인이 아니면 와인이라고 할 수 없다’라며 저러다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의 자부심을 가졌던 프랑스가 캘리포니아라는 품질 좋은 포도 생산에 좋은 환경과 양조학과 출신들이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점점 입지를 넓혀오고 있던 미국에게 와인으로 보기 좋게 지고 만 것이다. 가격 차이는 몇 배로 프랑스의 와인이 비싸기도 했지만 안대는 사람들이 찡그리고 보고 싶은 것에 매기는 가치를 온전히 잊게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박수 치며 살아왔던 것이다. 더 올곧아야 하는 것과 더 천박해야 하는 것이 있었고 아무리 정장 위에 향수를 뿌려대도 향수를 이유로 게이 같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었다. 더 올곧은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고 싶어 하던 사람들은 계단 손잡이를 계단처럼 타고 다녀도 장난쯤으로 여겨지거나 다음 날부턴 계단 손잡이를 계단처럼 타고 다니는 것이 모두가 따라야 할 문화처럼 변하곤 했다. 원초적인 다름으로부터 나오는 문제들이 있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그 문제들은 가려놓고 발끈한다는 것이다.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면 프랑스 와인이 늘 무시해 오던 미국 와인에게 블라인드로 졌듯이 어떤 정부의 조치 없이도 성소수자의 수가 이성애자의 수를 넘어서는 시대가 올 것이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를 넘어설 대중종교는 100년 후엔 완전히 자리 잡을 것이고 40~50년 내로 약간의 인정과 자신을 배 불려줄 헌금들, 그리고 헌금에 비했을 때엔 저조한 비판들을 받으며 이 세계에 등장할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은 정상인 것들이 하나씩 별난 것들로 바뀌어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 본다. 별난 것들이 정상인 시절을 살고 있는 지금의 10대, 20대 정도가 노년이 되어 젊은 세대에게 싫은 소리 정도를 해댈 것이고 새로운 젊은 세대는 보란 듯이 이전과는 아예 다른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사피엔스>는 자연의 이치로부터 시작되는 것들을 분석해 낸 책이기 때문에 100년 이내로 성경, 불경과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보다 먼저 남성이 여성복을 입는 것이 유니크한 패션에서 청바지 정도의 옷을 입는 것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청바지 또한 성별의 자유를 끌어올려준 유니섹스룩이다. 1960년대엔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면서 활동적인 팬츠 슈트가 유행했고 여성들이 남성의 옷을 입으며 남녀가 함께 입는 유니섹스라는 개념이 시작되었다. 사회는 앞으로도 옷을 입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패션 테러리스트로 단정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옷을 하나라도 걸치고 나서부터는 그게 패션이 되고 원래 매일같이 옷을 입던 사람이 갑자기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어재끼는 것 또한 패션이 될 것이다. 완전한 나체가 패션이 되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변화 사이에 조금씩 노출되는 피부들이 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여성복인 것을 누가 봐도 보수적이게 보이는 동네 할아버지가 입고 다니는 시대는 꼭 온다. 청바지를 여자는 조신하게 살림이나 해야 한다는 말이나 씨부리는 유형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입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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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 때문에 2040년대, 2050년대부터만 해도 북극의 얼음이 녹고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며 잠기는 땅들이 생기는 변화가 심해질 것이라 사회분위기가 180도 바뀌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 기독교 신자들이 떠나가고 있다는 현실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혐오로 모은 인원은 자연스럽게 다른 혐오로 떠나갈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기사를 찾아본 후엔 재미를 조금이라도 더 충족시키고 싶어 또 누군가의 논란과 관련된 기사만 찾게 된다. 종교는 늘 같은 것이 문제니 혐오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개인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금세 다른 걸 혐오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출근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과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주머니는 바로 나에게 혐오대상이 된다. 교회에서 단체로 나와 드러눕고 똥 싸고 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사라지면 동성애는 자연스레 혐오시장의 수단에서 밀려날 것이다. 환경오염과 혐오가 지루해지는 시간이 모두 흐르고 나서 100년 후가 되면 그때의 세대는 짜여진 왕국의 시간이 많이 쌓였으니 더욱더 그 왕국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집단의 생각을 가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왕국의 새로운 왕이 되는 건 짜여진 것들에 처음으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성소수자가 중심이 되는 세상의 선두에 설 수도 있겠다.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성소수자의 의견이 더 오래 갈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에서의 일본을 보면 의견을 혐오표현을 통해서만 내더니 이제는 단체로서의 의견은 밀어붙이지 못한다. 그리고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편임에도 성평등에 있어서는 114위의 후진국 국가라는 결과를 얻고 있다. 모든 국가들이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에게 등을 돌렸다. 그래서 일본은 어떻게든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기만 할 뿐 또 다른 혐오표현을 통해 문제를 다시 쟁점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 기독교 안에 존재하는 성소수자 혐오 단체도 일본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혐오표현을 통해서만 의견을 내는 집단은 다른 집단이 따라붙음으로써 커질 수는 없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의 축제에는 장애인인권운동가와 같이 다른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동행하고 있다.

존재 자체만을 혐오하는 무리가 생기고 있음에도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이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성소수자냐 아니냐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인권이 생긴다고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가 빼앗기는 것이 아니니 이성애자들이 성소수자의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래도 요즘은 모두가 성소수자에 대해 존중은 한다라고 이야기는 한다. 하지만 기꺼이 돕지는 못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존중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존중은 하지만 주류의 세상에 들어오는 것은 안 된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존중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성애의 연애담들과 상대 성별의 생식기를 신화처럼 여기는 세상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 100년 후엔 혐오를 버텨온 것들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이 세계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과 싫은 변화도 모두를 고려한 것이기에 수용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성애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 생산성이 없다고 하는 이가 더 생산성이 없다. 정치인의 권력이 존중되는 이유는 미래의 변화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라는 이유로 한 사람씩 미래에 필요한 인원에서 빼기 시작한다면 유연성이 좋은 누군가는 다리를 높이 들어 그의 머리를 내려찍는 연습을 하며 지낼 것이다. 숨을 이유 없이 숨어있는 사람들이 주류의 세상으로 들어오는 건 충분히 생산성이 있다. 두려움에 숨어있고 꿈꾸던 걸 포기한 인구가 주류의 세상에 들어오도록 만드는 게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이고 주류의 세상은 평범한 인생길에서 한 번도 꺾이지 않은 사람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동성인가 혹은 이성인가 혹은 양성인가를 결정할 권리와 동의 없이 성관계를 하게 되거나 원하지 않는 대상의 강요로 시작되는 성관계의 압력에서 벗어날 권리를 포함한다. 성관계에 대한 자기결정권 부분은 성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지만 교묘한 태도로 자신의 성적 성향에 대한 부분은 아예 삭제시켜 버린다. 두 권리가 모두 갖춰져 있어야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국가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클럽에서 원나잇하는 것은 그저 허용범위 내의 일탈로 보고 군 내에서 동성이 성관계를 맺는 것은 일탈이 아닌 형벌을 받아야 할 죄로 규정한다. 군대라는 장소에서 성관계를 맺는 건 동성 간이든 이성간이든 옳은 행동이라고 볼 순 없다. 불이 꺼지면 그 정사각형으로 이뤄진 큰 인테리어용 의자 같은 것을 침대 여러 개 역할이 된다고 우기는 곳이 다른 무드를 띌 수도 있겠지만 보통의 상상 속 군대는 성관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이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긴장이 요구되는 장소에서 성관계가 이루어졌다는 지점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럼 같은 장소에서의 여군과 남군 간의 성관계가 이루어졌을 때도 처벌받을 죄로 규정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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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으로 처벌받는 것은 피해자, 가해자 모두에게 권리이고 의무이다. 가해자는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변호받고 자신의 죄에 대해 항변하거나 반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권리가 있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범죄일 때 강력처벌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가 가지는 권리이지만 무턱대고 강력범죄면 사형시키자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연쇄살인범 같은 악질강력범죄자들은 사형제도가 존재할 땐 자신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사회와 격리될 필요가 없으니 더 겁먹지 않고 자신의 범죄욕구를 사형을 각오하고 치르게 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반성 없는 악인에겐 사형이 무기징역에 비해 훨씬 가벼운 처벌이다. 사형이 범죄율을 줄여줄 순 있어도 연쇄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는 절대 줄여줄 수 없다. 그래서 사형제도를 비틀어 15년 선고 후 사형제도 형태로 일정한 징역형의 책임 또한 치른 채 사형이 집행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사실 이러한 범죄들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처벌보다 어린 시절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의 성교육은 성범죄가 발생하기에 딱 좋은 교육이다. 성관계를 어떻게 하는지 성에 눈 뜨게 되는 시기가 주로 언제인지 등만 반복해서 가르치고 있고 성범죄 예방의 교육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만 중점적으로 이뤄지는 편이다. 교육과정엔 피임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게 들어온 지 오래됐지만 중학교 시절 교육을 생각해 보면 정해진 시간 동안 학생들의 호기심만 해결하고 떠나가는 게 성교육이고 교육청과 학교가 믿고 맡기는 기관의 성교육 교사들이었다. 어떻게 해서 피임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국가에서 학생 때 임신하면 부모 또한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만을 죄로 규정하고 혼낸다. 애초에 성적자기결정권에서 중요한 내가 어느 성별을 좋아하느냐 하는 성향에 대한 결정권리조차 가르치지 않고 사회가 보장하지 않으니 동의 없는 성관계와 성적인 착취와 폭력에 노출되지 않은 권리가 효력을 가지는 것은 생각해 볼 수도 없다.


서로의 동의가 있는 성관계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교육 없이 이렇게 클럽에서 원나잇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와중에 군대에서 성관계를 했는데 성관계가 아니라 동성끼리였다는 것을 범죄로 엮는다는 것은 이 나라가 얼마나 후진적인 국가인지를 보여준다. 그게 이성애자들의 헌법인가? 법은 언제부터 편리함만 보장해주면 되는 존재가 된 것일까?


원나잇금지법을 만들어 연인관계가 아닌 사람끼리의 성관계는 모두 처벌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본다. 군대에서의 성관계, 처벌할 거면 이성, 동성의 경우 모두 처벌하고 안 그럴 거면 동성 또한 처벌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성소수자 인구조사를 통해 정확히 이 나라에 몇 퍼센트가 성소수자인지를 알아야 한다. 다수 중 권력과 힘이 있는 소수들은 소수자들을 매도하고 제도적으로 괴롭히지만 정확한 퍼센티지로 매겨지는 소수에게는 약하다. 1%만 넘어가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 지금 성소수자들도 노력하여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의당처럼 대선에서 2% 이상 정도의 투표를 받는 정당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모호한 영향력을 가진다. 성소수자의 인구가 수치로 매겨졌을 땐 정치인들도 그 퍼센트가 다 표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매도하는 것을 무관심으로 일관하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성소수자 인구를 조사하는 정도의 사회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국회에 원나잇금지법을 발의하러 자주 난입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아니더라도 원나잇금지법 발의를 다수가 찬성하는 나라는 적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시피 할 것이다. 내가 만든 나라 페리빌단도 제도적으로 아주 조금은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해서 국제기구에게 경고를 받진 않지만 내가 국회에 그것도 원나잇 금지법을 주장하며 난입한다면 그 나라를 만들어준 사람이라도 예외 없이 내보낼 것이다. 입막음까진 없을 것 같아서 기분은 덜 더러울 것 같긴 하다만.


아무튼 한국은 국제기구에게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경고까지 받은 나라이고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해 싸우는 정치인들 중 거대양당의 경우에는 민주당 한 명의 의원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도 진전이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든 원나잇금지법이 통과되어서 모텔들이 위기에 놓인 상황이 되어 모텔 사장님들에게 원성을 듣는 상황이라도 만들 것이다. 물론 가장 필요한 건 성소수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들이 회복되고 모든 국민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으로 자기 권리에 대해 탄탄한 보호막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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