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창 밖을 상상하다가
세상을 단어로만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마음보다 말이 빠른 사람이다. 마음이 느린 것도, 말이 빠른 것도 아닌 그 특징에는 책임감이 없다. 말에 책임이 없고 행동엔 더더욱 책임이 없으며 상처를 새기고 나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새긴 상처는 작은 것이라며 자신의 모든 행동들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상대의 행동은 합리화하기는커녕 생각해볼 시간도 없이 당당한 비난을 건넨다.
눈과 입의 속도가 같은 사람은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다. 상상력이 좋으면 상황을 넓게 생각할 수 있기에 대화에서 처음 알게 되는 특징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낯섦으로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다. 항상 안 좋은 상황과 가장 좋은 상황을 모두 생각했으니 자연스레 여러 상황들에 대한 이해심이 생긴 것이다.
상상력이 없는 건 살아가고 나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순조롭게 모든 길들을 지나가서 점점 어른이 되어갈수록 장점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아직 표정이 덜 거쳐간 아이일 때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는 아이가 칭찬받을만한 아이의 기준이어서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듣는 칭찬을 한 번 듣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경험들은 부러움으로 쌓이고 부러운 사람들이 쌓여가며 마음이 엉켜져서 여러 부러운 상황들을 미움으로만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잘못이 아닌 것을 잘못인 것처럼 비난받으며 지내왔으니 자꾸만 마음속에서 자신도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무감해질 때 이미 그런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이후에 풀어도 늦지 않았다. 돈과 시간이 아니라 마음으로 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가 잠들어있던 시간이었다고 해서 이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기에 헝클어진 밤을 견뎌야 하던 나 자신은 이해하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어했을 것이다. 잔인한 공감 속에 더이상은 진심을 털어놓고 싶지 않다고 느꼈을 때 나를 책임져주는 것보다는 상대의 위치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것을 원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다. 인정의 그늘에 가려지느라 보지 못한 빛을 끌고 오면 반대편의 생각도 함께 담겨있었다. 아주 어릴 때 배우고 잊어버린 평등이었다.
상상력이 좋은 사람은 자신이 상상한 상황이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서 속으로만 미안함을 전하는 것이 그 사람에겐 너무도 아픈 현실이다. 그리고 상상력이 좋은 사람은 넓은 꿈을 꿀 수 있기에 상상한 많은 것들이 모두 일어나지 않는 상황들도 많이 발생한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야기하거나 넓은 꿈을 가진 것 자체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많은 상상들을 꿈과 현실에 닿을 만큼 기억하며 가져오기까지 수많은 노력을 들였고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당연히 그것만은 비난의 이유가 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눈보다 빠른 판단으로 비난을 내뱉음에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고민 없이 빠르게 말해버릴수록 자신의 상황이 고민도 필요 없이 쓸모없는 상태인 것 같아서 자책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 많다.
상상력이 없는 경우에는 누군가 당연한 듯이 받는 관심을 한 번 받는 것도 어려웠던 마음의 결핍이 있었고 상상력이 좋은 경우에는 아이일 때는 칭찬과 부담 모두 가질 수 있었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는 헛된 꿈을 꾸는 사람으로 여겨져서 차가운 시선들을 감당하고 갖고 있었던 시간이 있어서 잃은 것이 더 아파오는 공허함을 견뎌야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둘 다 서로 주고받은 아픔이 있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아픔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게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상상력이 없는 것과 좋은 것은 특징은 달라도 아픔은 비슷해서 누구나 반대편의 아픔까지 책임지게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싸움은 끝이 있다. 지치는 건 누구에게나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이 다치며 미안함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능력으로 누군가의 자리를 뺏었다는 것과 그런 나의 능력이 미래가 되어서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모두 슬픈 일이다. 슬픔이 많은 상태에는 화도 많아지기 쉽다. 나의 화가 아픔과 함께 슬프게도 늘어났을 때 사람들과 멀어지면서 자연스레 풀리지 않을 것 같던 화가 풀렸다.
싸우는 상대끼리 굳이 대면해야 할 필요가 없다. 좋아하는 사람 만나기에도, 좋아하는 사람 만들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서로를 보기만 해도 힘들고 짜증이 나는데 홀로 남겨졌을 땐 서로 이해하길 바라며 뭉클해진 마음을 누른다. 싸우는 상대끼리 떨어졌을 땐 예상할 수 없던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사람은 시간을 애틋함과 그리움으로 채울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따뜻해진다. 여러 표정들을 배우기 전의 상태로 잠시라도 돌아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싸움 앞에 서면 모든 시간들을 알고 있는 듯 따졌지만 서로를 기억하는 건 완전히 멀어진 이후에야 시작된다. 그렇게 결핍과 결핍이 만났던 길고 긴 싸움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