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거울을 온종일 보았다
나를 돌아보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남을 돌아보는 일은 누구보다 쉽게 하는 사람들이다. 사물이 가장 많은 곳에서 목을 최대한 먼 곳까지 돌리면 남이 걸어온 길들을 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일이 그려지지 않는 시간만큼의 여유가 생겨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려 한다. 너무 돌아보지 않아서 불안해진 마음으로 남을 돌아본다. 그건 비교가 되기도 하고 동경이 되기도 하며 가장 흔한 미움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온종일 까만 거울을 바라보는 일과 같다. 까만 거울을 해가 질 때까지 바라보면 눈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온갖 영양제로 눈의 면역력은 길렀는데 마음은 그사이에 하나도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내 머리카락과 탈모가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동시에 바라보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난 머리가 풍성한 대신 마음이 가난하다는 게 너무 당연해진 것 같아서 나를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보기만 해도 갈 곳이 없는 나였다.
그래서 내가 나를 돌아봐야 할 의무만 주어진 방랑자라면 일몰시간 1분 전이 되어서야 거울 앞에 설 것이다. 하지만 난 시간을 아끼려 했음에도 의도와 다르게 다음 일출까지 숙면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까만 거울은 잠깐만 바라보아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마음의 거짓말들을 내 앞에 놓아둘 것이다. 기억이 떠올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의 내가 떠올라서 두려운 것은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이 그저 까맣게 막혀버린 막막함일 뿐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글 쓰는 시간을 보내겠다는 결정을 했다. 쉬울 거라고 생각은 안했지만 덜 아픈 주사를 맞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도 내 결정이 조금 못나게 보인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를 보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마음이 되어도 읽지 않을 거라는 걸 더 잘 알게 되었다. 올해가 되고 나서 100편 정도의 글을 쓴 것 같다. 근데 브런치에 올린 글은 아직 10편밖에 안 되고 내가 모아두던 노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기 힘들어서 아직은 새로운 글들을 써서 올리게 된다. 나를 돌아보느라 나의 것들을 좋게 보는 게 힘들어졌다. 나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일은 자존감을 좁힌다. 돌아보는 일은 생각보다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꿈이 없는 마음에 생각보다 큰 소원을 하나 품고 있었다. 그건 바로 지금을 써 내려가는 것이었다. 돌아보는 태도로는 과거밖에 볼 수 없어서 마음이 충격을 맞은 듯이 느려지고 있었다. 지금을 쓰고 싶다는 말은 사소한 일상들을 글로 옮기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새로움을 쓰고 싶었고 글을 쓰기 전에 맞이하는 일상 자체가 새롭기를 바랐다. 그리고 하루가 낡았어도 나도 덩달아 낡음으로 가지 않으려 하는 노력을 내 겉면이 낡을 때까지 했다. 매일 다른 이유로 울고 매일 다른 이유로 화가 난다면 그게 나에겐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행복인 것이었다. 돌아보면 난 새로움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나는 나를 쓰는 게 두려운 사람이었다. 나는 오래되기도 전에 낡아 버린 새로운 마음이었고 오래되어서 낡은 것이 아니면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거였다. 그래서 나의 힘듦은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는 담기지 않았다. 밀어지는 게 아니라 밀어내는 것임을 나는 알았다. 나만이 도움에서 제외된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에 학교의 안 좋은 점들을 한 번에 보고 말았고 나는 그동안 웃으면 안 되는 곳에서 놀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문제를 붙잡고 있기로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기로 한 이유는 두려움이었고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하고 생각해보니 오늘 학교에 있을 나는 감당할 수 있지만 내일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나까지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오늘은 좋았지만 점점 오늘을 즐겼다는 것이 그 시간의 것들을 잃어버려도 될 이유가 되어버려서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만약 이런 두려움들이 핑계로 여겨져 버리면 '그냥' 다니지 않기로 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냥'이라는 이유 앞에서는 멈춰설 수밖에 없었고 멈춰선 후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두 개쯤은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 길이 혼자가 되는 일임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낮에는 뜨거워서 힘들고 밤에는 차가움에 힘겨워하던 사람이라서 내 안에 두 사람이 있는 줄 알았다. 아직도 오래된 믿음을 져버리긴 힘이 든다. 그래서 아직 내가 마음의 한 사람을 깨우지 못한 것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별 의미가 없는 것도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내 몸 하나로 내 목덜미에 올라탄 듯한 부담을 끌고 다닐 수 없음을 느꼈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내가 두 개쯤은 되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