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역 7번 출구

by 이정우 글

빗속을 걸어요

물론 우산을 쓰고요

이제는 아픈 감기도 안 걸려요

매일 마스크를 썼으니까요

오랜만에 걷지 않던 쪽으로 걸으니

새로운 게 참 많아요

바람에 흔들리는 현수막도 보여요

10cm가 콘서트를 한대요

근데 현수막 길이는 10cm가 아닌 것 같아요

어떡해요..


걷다가 정하지 않았던 목적지에 왔어요

나는 익숙하게

지하철 출구 앞에 섰어요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동시에 지나다니는 풍경이

어쩐지 내 마음 속과는 달라보여요

그래도 마음은 하나뿐이지만

우산은 두개이니

편하게 기다릴만해요

오늘은 유난히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날이네요

근데 나는 분명 정자역 7번 출구에 서 있는데

정자역은 6번 출구까지만 있대요

나는 어떡해요..


대답을 들으려는 게 아니예요

모든 질문은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고요

그리고 사실 물은 적이 없었어요

나는 정말 궁금해서 하는 질문들 앞에

당당하지 못했거든요

그럴듯한 것들은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당당히 질문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당당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오히려 더 충격을 입었어요

그래서 나는 질문 끝에서마저도

소리를 올리지 못하고 움츠려야 했어요

궁금하던 것들도 모두 으스러져 버리게 만든 거죠


그래서 정자역 몇 번 출구에서 기다리면 되는지도

묻지 않고 조건 없이 기다려주었어요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말이죠

처음엔 나는 여러 명을 기다리는 사람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와 줄 거라며 안도했어요

정말 다양성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나는 길이를 채우기 위해 넣은 목차를 핵심인 줄 알고 읽었어요

그래서 나를 반기지 않는 것이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인 줄은 전혀 몰랐던 거예요

사실 나는 질문을 해보았기에 질문을 못하게 된 거였어요

이젠 질문을 해도 마음이 아닌 두려움이 나와서

더이상 질문이 아니게 되고요

질문은 생각보다 유쾌한 거였군요

그래서 나는 품을 수 없었고요

생각보다 마음이 무언가를 품을 만큼

다양하지 않았네요

이럴 때 유쾌함 뒤에서 느껴지는 나의 불쾌함들은

어떡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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