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온 엄마의 산물

마음은 심장에 있을까? 아니면 뇌에 있을까?

by 이정우 글

그리 편찮지 않던 날에 병원에 검진을 하러 갔다. 내 심장의 심전도를 재고 초음파검사도 하는 텍스트로만 보면 꽤나 건장한 검사인데 그저 머리가 답답해서 외출하러 나오는듯한 홀쭉해진 마음으로 집 안을 나섰다. 그맘때쯤엔 완전한 아이로 돌아간 것만 같은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짜증이 준다는 걸 알기에 짜증내는 아이를 내버려 두는 것과 같이 나 또한 나라는 아이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더 큰 아픔을 겪을수록 그 후에 겪는 행복은 비교할 수 없이 커질 거라는 회생에 대한 나의 희망이었다. 그런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나의 심장이고 심장은 나의 핵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의심이 많은 내게 하나를 진실처럼 믿는다는 건 그것 자체가 시작에서부터 진실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진실을 알면서도 자꾸만 의심되고 다시금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마음은 심장에 있을까? 아니면 뇌에 있을까?’

처음엔 ‘감자튀김은 감자일까? 아니면 튀김일까’라는 질문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때의 나는 질문이 너무 단순한 것을 무시하며 답까지는 얻어내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답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감자튀김을 먹는 순간을 떠올려보지도 않았고 애초에 감자튀김을 먹으며 그 속을 확인해본 적 없이 꿀꺽 삼킨 속 없는 인간이었다. 이제라도 그 답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감자튀김을 검색해보았다. 나처럼 그저 감자튀김이 먹고만 싶은 사람이 많았나보다. 감자튀김을 주문하는 방법과 감자튀김 맛집들만 줄줄이 나왔다. 그래도 좀 더 얻어본 정보가 있다면 외국만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도 햄버거보단 햄버거와 함께 나오는 감자튀김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레시피만 보고 감자튀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감자튀김은 감자를 썰어서 튀기는 방식의 요리였다. 생각해보니 그냥 감자를 튀긴 게 아니라 썬 상태에서 튀기니 이미 감자의 의미는 잃은 것 같았다. 하지만 동그란 감자 그대로를 튀긴 것을 상상해보니 오히려 그것보다는 흔히 볼 수 있는 감자튀김이 훨씬 감자에 가까운 것 같았고 속을 들여다보면 바로 감자가 나오는 것이 성을 지키고 싶은 감자의 마지막 자존심인 것 같았다. 감자가 성이라면 튀김은 이름이다. 성은 굳센 매력이 있다면 이름은 조금 더 귀여운 매력이 있는 듯하다. 그 작은 음식이 재료 자체가 아니라 조리를 마친 메뉴라는 사실에 원래 작은 감자튀김이 더 작게 보였다. 그 작은 감자튀김이 귀엽도록 소중한 만큼 아기의 심장도 심장 중에 가장 소중하게 여겨졌었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난 내 심장에 소중함을 잊어버렸더라도 돌이켜줄 수 있는 기록 하나가 있다.

태어나자마자 난 심장이 아팠다고 한다. 쓰라린 것이었는지 지독한 것이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으니 아프다기보단 약했다고 생각하기로 스스로 정했었다. 나 역시도 사람들의 시선과 같이 그 작다고 하기도 미안한 아기가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라며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의학 드라마가 전문성의 강조라는 테두리를 반만 도려내고 친근함이라는 흥행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병원의 급박함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정경호가 연기했던 김준완 교수가 치료해주는 환자들이 나와 비슷한 경우들이었다. 가능성은 적지만 의외로 태어나자마자 나처럼 심장 혈관 쪽이 약한 아이들이 꽤 있었고 같은 학교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아이를 마주하기까지 했었다. 흥행한 드라마도 보여주지 못하는 건 긴박한 상황들의 잔잔한 일상이다. 수술을 위해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모두가 노심초사 지켜보던 그 아기들이 지금은 이렇게 잔잔하게 지내고 있다. 정말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의도한 것 이상의 감정들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건강한 심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기록을 꺼내보고서야 기억하게 된다.

병원에서 검사를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릴 때 내가 그동안 시간에게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기둥 옆 의자에 앉은 어느 엄마는 아이에게 공부와 관련된 것들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이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게 엄마의 심장에 불꽃을 튀긴 모양이었다. 나와 같은 층에 있었으니 심장검사를 받으러 온 것일텐데 둘 중에 누가 검사의 대상이 될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어린이병동이었는데도. 가끔씩 심장내과에서 긴 검사를 마치고도 학원으로 뛰어가야 하는 아이들을 마주치게 된다. 시작은 비슷했음에도 한 명만 용감함에 감탄이 나온다. 그래도 심장의 아픔이 나보다는 그들에게 골칫거리로 여겨질 것 같다. 나는 심장과 같은 각도로 누워서 보낼 시간들을 쌓아두고 있고 저 아이들은 안 그래도 할 게 많은데 편하지 않게 누워있기까지 해야하니 억울할 것이다. 시간을 이렇게 못 보내는 나도 대단한 게 있지만 나는 정해지지 않아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들이 한 번에 다가온 후 어깨를 펴지 못한 것 같다. 내게 가장 많은 것이 시간이었지만 내 어깨를 버겁게 만든 것 또한 시간이었다. 병원에 있으니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자주 바뀌었다. 하지만 나 홀로 남는 일은 결코 없었다. 일상도 병원과 같기를 바라보다가 어떤 평범한 엄마와 아기의 일주일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도 아이를 보는 눈은 어두워서 아이의 나이(특히 24개월 미만 아기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하는 나와 다른 아기들에 비해 덩치가 큰 아기의 눈이 마주쳤다. 그 아기와 비슷한 아기들은 인형으로 본 적이 있었다. 6살 때 미국에서 1년 반 정도 살았었는데 한국에 나와 나의 사물인식 능력이 모두 입국한 후에 미국에서 안고 있었던 인형들을 돌아와서 더 낯설었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꺼내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또래들도 그 크기의 인형과 장난감들을 들고 있어서 그 크기를 눈대중으로도 재기 어려워했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새 친구와 덜 깬 아침이 무서워도 나가야 하던 유치원, 나의 첫 장소(라고 어제까지는 생각했지만 내가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걸 느리게 깨달았고 그로 인해 좋은 대우를 받다가 갑자기 훨씬 더 내가 적게 머물렀던 병원에 그것도 가장 자신하던 세월을 이유로 밀려버려서 화가 나 있을) 유치원에 가면 알 수 있었다.

언제나 대학교보다는 초, 중, 고교들이 더 적은 중요성을 부여받고 유치원의 중요성은 한 번에 속사포로 나열해버린 네 개의 장소가 너무 두려운 나와 같이 움츠러들어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방금 어렴풋이 얘기한 것과 같이 유치원이 가장 긴 세월을 품고 있다. 유치원은 내가 자라나는 것에 의미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내가 자라고 있는 걸 좀 늦게 알았다. 머리가 띵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뭐 하나라도 더 배워보는 거였는데. 가끔씩 재능은 있지만 너무 늦게 시작해서 안타까움만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어쩌면 나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나를 훤히 보진 못한다. 한 번 내 턱을 눈으로 직접 봐 보려다가 눈이 뒤집힐 뻔한 적도 있다. 비밀도 아닌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서 서운했다. 그래도 나의 유치원은 집과 가까이 있었다. 이것 하나를 장점으로 삼으려고 한다. 내가 악기를 현란하게 연주하지 않고 말을 유창하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유치원과 나의 거리가 가까웠다는 걸 부정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나에겐 최대의 어둠이었던 그늘을 걸으면 바로 유치원이 나왔다. 유치원은 노랬고 초등학교는 파랬고 중학교는 빨갰고 고등학교는 집에서 너무 멀리 있어서 모르겠고 대학교는 딱히 안 궁금하더라. 확실한 건 겉의 색깔만을 그 장소의 색깔로 받아들인 건 유치원이 유일했다. 난 파란 색을 좋아하는데 장소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색은 돈을 학교보단 적게 들여서 칠한 것 같은 유치원의 노란색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아기의 엄마는 베트남 사람인 것 같았다. 병원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병원에 앉아있는 게 안 어울리는 기운이 있었다. 백신을 맞으러만 병원에 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국적을 알아채기 이전엔 아기 엄마에게서 젊음의 느낌만이 크게 느껴졌다. 아마도 사소한 움직임과 아기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밝음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젊음의 산물이 새벽까지 밤을 새우는 열정이나 그것으로도 열정이 사라지지 못해 새벽이 공허한 사람들이 모이는 클럽 등으로 여겨졌고 한때 젊음의 산물이던 짙은 화장은 어림의 산물이자 여림의 산물이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많은 것이 뒤섞여버린 후에 젊음의 산물들도 조금은 바뀐 것 같다.

지하철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어떤 미친 놈···아니 청년 두 명이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을 각자 한 번씩 부숴질 듯 두드리더니 웃으며 튀었다. 곧바로 지하철을 청소하시는 분이 나왔다. 당연하게도 내가 아는 분도 아니었고 오래 근무하신 분도 아닌 것 같았다. 아, 큰일났구나 싶었다. 도망가는 꽁무니가 측면에 앉은 나한테도 보이는데 정면에서는 얼마나 더 잘 보일까 생각하고 있을 때 솔직히 싸움 구경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청소 아주머니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손에 큰 빗자루를 들고 있어서 기대가 더 커졌었는데도 말이다. 정확히는 쭈뼛거리셨다. 문을 홀린 듯 두드리고 튀는 류의 당참이 젊음의 산물이 맞다면 모든 젊은 사람들이 무섭게 여겨질 것 같다. 그렇지만 자꾸만 연령대에 맞서려 하는 게 본능적인 두려움이니 학생들과 청년들도 자신이 좀 더 굳세보이거나 무서워보이는 것만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선택은 상상하는 순간 나의 것이 된다. 그래서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신경 쓰기보다는 믿기 좋은 뚜렷한 상상들에 주의해야 한다.

얼핏 보기엔 아기엄마가 국제결혼이라는 상상을 선택한 것 같았다. 한국은 주로 국제결혼을 받아들이는 나라이지만 베트남은 주로 국제 결혼을 선택해 건너와야 하는 나라이니 결혼에 대해 행복한 기대로 오진 못할 것이다. 어쩌면 가장 생각이 많아지는 비행기를 타고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남편, 그러니 아이의 아빠가 결혼을 열렬히 원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국제결혼이더라도 계약을 맺는 형태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결혼의 과정은 달라도 그 과정 안에 한 명만의 헌신이나 한 명만의 바램 같은 것은 애초에 담긴 적이 없을 수도 있다. 상처가 곪을 수 있는 환경이더라도 바라보기만 한 채로 그들의 아픔을 마치 나의 것인 듯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나의 아픔까지도 나는 후회 없이 내뱉어낼 수 없다. 공감받는 것을 간절히 원할수록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오히려 부담만이 쌓인다는 걸 되새기게 된다. 생각 하나로 입을 닫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을 내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뼛속에 가려진 축복으로 살아간다는 건 나에게 걱정없는 미소를 선물하지 못한다.


아기의 엄마는 그저 아기 덕분에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잠시였지만 표정을 응시했을 때의 얼굴이 처절하지 않아 보여서 찾아오는 슬픔이 있다면 하나도 밀어내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만의 판단으로 베트남에서 온 아기엄마의 산물은 믿음이라고 정해보았다. 그저 흩어져 나오는 분위기였을 뿐인데 그 산물이 아이와 엄마 사이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한국은 단일민족인 것을 국가의 장점 중 하나로 여기는 나라이고 난 그런 점을 부끄러워한다. 처음으로 한국에 대해 배웠을 때 나타나 있는 특징은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과 단일민족 국가라는 것이었다. 특징이기만 한 것을 장점 삼아 모두가 갖춰야 하는 기본이라는 듯이 이야기해온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게 나에게 장점으로 와닿았다는 것만으로 1년 내내 여름인 나라를 욕하거나 1년 내내 겨울인 나라를 굳이 찾아내어 욕하는 것과 지금의 자신감은 그다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물론 지금은 다른 민족이 한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지진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을 무시하는 정서는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 안에 깊이 박혀있는 듯하다. 웬만한 사람들이 약속한 듯이 정해둔 호칭이 있다. 외교관계가 실시간으로 대화에 반영된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오직 한국의 대화에서만은 중국, 일본인들은 중국놈, 일본놈이 되고 미국인은 미국애들이 된다. 이때까지 한국인이 인종차별을 당해왔던 경우들에서는 서양인들이 전적으로 가해자였을 때가 많다. 아직까지도 그 사실에 겁을 느끼는 듯한 정서를 한국 자체는 품고 있다. 그래서 미국인을 코쟁이라고 칭해 욕하다가도 그 높은 코를 부러워하고 돈만 밝히는 민족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매체에 서양인의 재력이 비치면 뉴요커나 유로피언이라며 국적과 생활 자체만으로도 칭송한다. 진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잠이나 누군가와의 약속 대신 이렇게 사계절만큼이나 뚜렷한 미움을 일상에서 지워야 한다. 몇 달씩 흘려보낸 시간보다는 몇 시간에 붙잡힌 시간들이 답답함을 만들 때가 많을 것이다. 계기가 될만한 큰 사건이 아닌 사소한 감정 하나로 몇 달을 힘든 채로 보내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 아닐까?

국제결혼을 하는 베트남 여성들이 상품처럼 여겨질 때가 많은 것 같다. 그것 자체가 그들의 호칭이 되어가는 듯하다. 국제결혼이라는 작은 시장 안에만 가두어본다면 그 확률이 90%에서 100%까지도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사진 위엔 전화번호가 쓰여져 있다. 자신의 번호가 아닌 결혼전문업체의 번호이다. 징역부터 그 징역의 현실화까지 숫자로 이루어지는 교도소처럼 정리를 위한 번호를 붙여두진 않았다. 생각보다 국제결혼을 소개하는 입장인 사람들은 자유를 많이 실현시켜주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가두어지지 않아도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는 모두가 자유를 빼앗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소개를 위한 번호가 아닌 자기소개를 위한 번호를 알게 되면 바로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일지 그게 가장 궁금했다. 처음 마주하는 자리라지만 서로의 상황을 다 아는 채로 마주하면 처음 만나는 게 아닐 것이다. 기대하거나 기다리는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 시간들을 만들었고 그런 시간들을 지나서 직접 마주하면 이미 여러 번 마음 속에서 보던 풍경을 보는 것 같아 어색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삶을 글자로만 보았기에 결혼이 더 쉽게 이뤄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시선을 돌려보면 국제결혼을 원하는 남성들이 그 작은 시장을 지나는 상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손님으로써 돈을 쓰면서도 상품을 잘 사용하기 위해 사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카페 사장님이 조금 더 카페를 아름다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식물 몇 가지를 사 오는 것과도 비슷하다. 꾸준히 물을 줘야 하지만 정성을 담지 않는다해서 크게 티나지는 않는다.


아기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던 그 아기엄마가 국제결혼을 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아기의 얼굴만을 보고는 아기엄마와 아기 모두 한국인인 줄 알았기에 국제결혼을 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아기 엄마가 입을 열기 전에는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도 전혀 못 느끼고 있었다. 아기 엄마의 입에서는 서툴지만 원하는 바는 뚜렷한 한국어가 나왔다. 그때까지는 외국인인지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기 엄마가 가장 원하는 바가 뚜렷한 말을 했다. “베트남 통역사 좀 불러주실래요?” 사실 난 그분이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에는 놀라지 않았다. 옆에 앉은 아이는 말했다.


“통역사도 있었어?”

그렇다. 나도 옆의 아이와 같이 병원에 통역사가 있다는 사실에 입이 떡 벌어지고 있었다. 그냥 통역사의 하루가 궁금했던 것 같다. 하루에 베트남 환자가 한 명 온다면 그 환자가 부르기를 기다리다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지 예약 명단에 베트남 환자가 없으면 집에서 쉬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궁금증 하나가 해결되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통역사 선생님과 통화를 하다가 바로 육아 선생님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외국인은 한국말을 한국인들보다 착하게 쓴다. 요구를 밝게 하고 거절되었을 때 한국인처럼 마냥 웃어주거나 받아들이려 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차라리 쏘아보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표정은 알아도 그 표정이 품은 뜻까지는 알 수 없으니 침묵 속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가장 착했던 건 국적에 쏘아보는 눈길을 두지 않은 성숙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것은 예의이자 기본이겠지만 예의와 기본을 챙기려면 아이일 때로 돌아갔다 와야 할 것 같아서 예의나 기본값들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이 흘러 그 예의 있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엔 어떨지 궁금하다. 그들의 예의를 위해서는 시대도 바뀌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이와 상관없이 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니 외국인이 되어서 한국말을 착하게 해보고 싶어졌다. 근데 내가 하면 호구로 보여질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내 심장은 아주 건강하다. 평소엔 심장에 별 신경 쓰지 않으며 살아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작은 아기는 나와 비슷한 감정들을 품으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베트남과의 관계가 언젠가는 그 아이를 욕먹게 만들 수도 있고 하나의 아픔이나 수술을 의학적인 결함이라도 되는 듯이 바라보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 의사의 자식들이 많이 그러더라. 그 자식들에게 상처 입어도 용기를 가지는 삶을 살기 위해 아이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만 미리 과거나 미래에서만 가질 수 있는 시간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하지 않고 믿음이라는 조금 더 믿을만한 산물을 믿었으면 좋겠다고 귀띔해주고 싶다. 순조로운 것이 보장된 상태에서의 안심만이 믿음은 아니다. 아이를 통해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았다. 마음은 뇌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심장을 마음의 형태로 그린 건 마음이 힘들 때 가슴이 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마음은 자주 심장으로 와닿아서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결혼은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까지 부담과 무질서로 다가오지만 사람 간의 믿음은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숱한 관계들이 나를 가슴 아픈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내 심장을 별로 아프지 않은 심장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은 뇌로 물러서서 내 심장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나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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