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자는 관대한 기준

오늘도 난 누군가의 뚫린 입을 막고 싶다

by 이정우 글

일전에 최종학력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나의 짧고도 지루한 학력을 피자스쿨에 비유한 것인데 내가 그렇게 여긴다기보다는 사람들의 뇌구조 속에선 학력이 학회와 바뀌어있는 것 같길래 학력에 관한 새로운 생각을 꺼내 보이려 했다. 학력이 높으면 많이 뽑아는 주겠지만 모든 직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엔 내가 엄두도 내보지 못할 정교한 분야의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에겐 그 직업이 가장 높은 문턱에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아직도 등급과 상관없이 피자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남의 주방에 들어가게 해주기만 해도 그곳에서 평생 일할 듯이 일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체력을 아껴가며 일하겠다는 것이니 충성하겠다는 뜻과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아무튼 나에겐 주방이라는 문턱이 사무실이라는 문턱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다. 그리고 원래도 그렇다. 사무실은 평지이고 식당의 경우 손님들이 앉는 곳보다 요리를 하는 구역이 더 높게 지어져 있다. 이것을 감히 그간의 모욕에 대한 대응이라고 생각해본다.

이번엔 보통 일상에서 직업을 찾게 되는 경우들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의자를 꽤 오래 쓴 편이다. 언젠가는 이 의자를 바꿔야겠다는 말이 나오고 그 다음엔 의자 자체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얘기하게 될 것이다. 모두 더 좋은 의자에 앉기 위해서다. 정말 의자를 바꾸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나의 경우엔 물건에 정을 많이 붙여서 웬만하면 물건을 안 바꾸고 바꾸더라도 전의 것과 완전히 같은 느낌의 것을 고르는 편이다. 지금은 주황색 의자를 쓰니 주황색을 디자인에 포함하는 회사를 선택할 것이다. 그럼 어떤 매장에 들어가든 금방 나오게 될 때가 많을 수도 있다. 나에게 알맞은 주황색 의자를 미리 준비해두는 매장은 별로 없다. 하지만 아쉽지 않다. 어차피 지금 의자를 좋아했으니 지금 의자를 쓰면 된다. 직접 의자를 둘러보고 와도 내가 어떤 의자를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짧은 시간 사이에 내가 원하는 것은 몰라도 원하던 것은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 색감도 좋고 뒤로 부드럽게 넘어가서 몇 명을 수업 중에 넘어지게도 하는 의자가 있었는데 그 의자가 꽤 좋을 것 같다. 아마 이렇게 선택을 하고 나면 회사나 매장 같은 곳을 찾아내어 뒤로 젖히면 넘어지는 의자에 대해 문의할 것이다. 이렇게 의자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가맹점 점주님과 경쟁사 상담원 분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치만 이 중에선 직업 자체가 나에게 필요해서 찾은 경우는 없고 의자의 적은 유명세와 내가 사랑하는 지금의 의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된 두 분의 직업만이 있다.


조금 더 간절히 직업을 찾는 경우를 알아보자. 작년에 어떤 수학 강사가 ’수능 가형 7등급‘은 공부를 안 한 것이니 그럴 거면 용접을 배워서 호주에 가야 한다며 발언을 했던 사건이 있었다. 보통 논란이 되면 온라인으로 공격을 받고 오프라인으로 오고 가는 대화들 속에서는 한숨의 몫이 더 큰 것이 많았지만 이 강사의 경우에는 주변에서 남녀노소가 육성으로 쌍욕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경우가 이전의 경우들과 달랐던 건 직업을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도로 만났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받으려 앉아있을 때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식당을 찾았을 땐 평소보다도 더 친절해진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서비스로 푸는 사람들은 서비스 자체의 작품성을 평가한다. 딱히 빠트린 것이나 큰 시간 오류 같은 것이 없었던 것 같으면 이번엔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주인은 별점에 쩔쩔매고 손님은 음식보단 별점 기능 앞에 입맛을 다신다. 주인을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아랫사람들인 역할극의 정서를 벗어나, 원초적으로는 계급사회에서도 벗어나기 위해 형식을 갖춘 국가가 세워졌다. 너무 일반인들이 나라를 이끌게 되면서 국가가 목표했던 것의 정반대 방향으로 가게 된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비극을 향해 과속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전국의 모든 식당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 역할극과 같은 사상에서는 주인을 찾아온 사람을 ’님‘ 대우해주는 것이 불가능했을테니 주인이 손님을 손님으로 부르고 그 단어 안에 대접의 뜻까지 담아내기 위해선 민주주의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막을 내릴 때쯤에야 세상의 수많은 손님들이 존중받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그런데 그렇게 비굴했던 여럿의 캐릭터들이 어느새 정장을 입고 무르익은 여유로 마음껏 뻐기고 있다. 어느새 민주주의가 흘러넘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각 지역의 왕이던 주인들이 가지고 있던 타이틀은 금세 손님에게로 옮겨간다. 손님은 왕이고 잘 일 해보고 싶었던 수많은 지점장들과 사장들은 신하의 자리로 옮겨간다. 신하가 바빠지니 신하를 위한 직원들이 생기고 손님이란 놈은 빨리 나가지는 않고 진상이나 떨고 앉았다. 직원이란 말은 최신에야 쓰인 말일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직원에게 적응하지 못하는 손님들과 과거엔 찬란했던 주인들이 있다. 모두 부적응을 불친절로 표현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게 마음이 그토록 원하던 민주주의이다. 참 민주적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제외되는 기준이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서비스업무를 하는 사람에겐 각져있어야 한다는 기준까지 생기게 된다. 사실 사람들이 열광했던 걸 생각해보면 대부분 각져있었고 이제는 스마트폰을 필두로 각진 것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원래부터 좋아했던 것이기에 취향이나 부적응에 대해 논하는 기간은 짧을 것이다. 책이 온라인에 담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있어도 사람이 온라인에 담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듯 늘 그래왔던 것과 같이 고칠 점들을 찾아가다보면 많은 이들이 원했던 각진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온라인이라는 한 시대에게 김장당하고 있는 듯하다. 비판 없이 버무려지는 것을 보니 확실히 맛은 있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시대가 급변하는 것은 알 수는 있어도 체감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바뀌는 시대에 따라 어떤 직업이 떠오르고 어떤 직업이 내려가는지는 모두 알기 힘들다. 용접공, 그 중에서도 호주 용접공을 비하한 강사 또한 어떤 직업의 가치가 존중받기 시작하고 어떤 직업의 으스댐이 사회에서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 되어가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을 것이다. 그래서 호주에서 일하는 용접공들이나 그들의 삶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호주 용접공은 토익 800점 이상을 받아야 하고 현지인들과의 소통에도 능숙해야 하는 직업이라며 비난의 방향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수능 7등급을 맞으면 용접공이 되어야 한다‘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용접공 또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다시 그 비난과 비하의 화살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 그리 만족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아직도 치킨은 4~6등급이 튀겨야 하고 7~9등급이 배달해줘야 하는 세상이다. 누군진 몰라도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간다고 믿나 보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4~9등급에 속한 사람들의 감정 중 일부를 대신 얘기해주려 해도 4~9등급 중 한 명이라도 와서 감사 인사를 하진 않는다. 오히려 조언으로 치킨 배달이나 조리를 추천한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감사인사를 건넨다. 그만큼 4~9등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직업이 모두 같을 정도로 똘똘 뭉쳐있지 않고 개인의 위치나 삶 또한 차지하고 있어서 쉽게 친해지지도 않는다. 1~3등급의 순간발작 같은 행동들을 사회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는 것은 먼 옛날에도 없었던 이야기다. 등급도 민주적이기 위해 생겨났다. 지금의 등급제는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 손님이 존중받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졌을 때쯤 등급제가 생겨났을 것이다. 등급은 학력처럼 오래도록 남거나 한 번 속인다고 해서 그 여파가 사회에 해를 끼치진 않는다. 졸업하지 않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는 것엔 대화에서 장난을 칠 의도였어도 화를 내지만 대화에서 등급을 한 등급 정도 높이거나 낮춰서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에 대해 화를 내는 사람은 생겨나지 않는다. 애초에 학교라는 장소를 나오자마자 등급은 학생에게서 사라진다. 학생이 더이상 학생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것에 집착할까?

30분~1시간 들렀다 가는 손님이 주인의 응대, 수준, 속도에 집착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학교를 거쳐가는 시간, 또는 학력이면 몰라도 등급은 삶에서 30분~1시간 정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관찰하는 상태에서 지나가는 30분~1시간인 셈이다. 그럴 때 내 손에서 무언가가 탄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리사는 그런 상황에서 손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직업이다. 장점이 다른 장점과 대어지며 화목하지도 않고 장점을 단점에 대며 비교하지도 않는다. 모두의 단점인 편견을 담은 비난에 자신의 입장에서 단점인 느림을 대어보려 한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같은 선에 놓이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진상은 진상으로만 남는다.


이런 시가 있다.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시인데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시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어보다가 그 속에서 발견한 시여서 이 시를 쓴 시인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시인의 책으로 읽은 것이 아니기에 간단한 약력 같은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들이 쓴 여러 문장들 옆에 두고 싶을 정도로 멈칫하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짧은 문장 안에도 긴 마음이 담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이 시의 분량 또한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본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 빙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바로 나온다.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이 시를 옮겨적은 분의 블로그명이 ‘글쓰는 부자’인 것이 킬링 포인트였다.

웃음을 뒤로 하고 시를 읽어보기로 했더니 웃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항상 웃긴 걸 참고 나면 공허함이 남는다. 행복도 가만히 보면 오래 가지 않을 때엔 행복인 줄 모를 수 있는 감정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묵직한 걸 가져다주지 않아서 복에 겨워 보이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삶의 대부분을 배웠고 그런 나도 복에 겨운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어나면 불만만을 채우고 비워놓은 시간엔 아무것도 채우지 못해서 나의 모든 날을 탓하는 것이 나를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들진 못할 것 같았다. 좋은 어른이라는 기준도 겉돌지 않기 위해 세워두는 유명무쌍함처럼만 느껴졌지만 대학교를 준비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그것만을 중요한 목표로 세워둘 수 있다는 것과 그저 머릿속에 세워둔 것인데도 비석처럼 오래 간다는 사실에 나 또한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목표만이라도 세워두고 싶었다. 이왕 좋은 어른이 될 것이라면 표정관리와 피부관리를 잘해서 어린이의 옆에 있어도 신고당하진 않을만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좋은 어른보다는 동안의 얼굴을 목표로 두니 조금이라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외모지상주의도 그래서 이렇게 오랜 시간 욕도 적게 먹어가면서 사회의 흐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음을 느꼈다. 남이 내 외모를 판단하는 것이 싫어도 나의 판단 아래에 좋아진 외모나 낯빛만으로도 성취감이 생기기에 외모지상주의는 생각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 같다. 외모는 확실하게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출처] [210709]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신경림|작성자 글부자

내가 인정하기 전부터 달빛은 외로움의 신호로 느껴졌다. 그리고 달빛을 볼 일이 잘 없다고 느꼈지만 애초에 내가 달빛이란 풍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인은 다른 감정들은 모두 여러 갈래로 표현하여도 외로움 하나만은 매우 아름다운 채로, 그리고 이해하기 싫은 채로 내버려 두었다. 밤에 달빛이 비친다는 것은 좋은 풍경이지만 함께 달빛을 볼 수도 있었을 사람이 지나고 난 뒤의 내가 그것을 본다면 광경 정도로만 느껴지거나 위로를 느끼게 해 슬플 듯하다. 어느 날 움직이는 달빛을 보았고 그날엔 스치는 사람들이나 풍경이 아닌 달빛만을 보면서 걸었다. 상황이나 그 안에 마주해야 하던 사람들이 아닌 개인의 것만을 바라보며 걷는 것도 그와 같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달과 같이 걷는 느낌이었다. 달은 확실히 하나의 개인이 되어준다. 그래서 달을 보고 나면 혼자를 익숙해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힘들 때마다 부담이 되는 와중에 자주 걷는다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아름다운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터놓는 사람이 있든 없든 개인으로 돌아와서 현재에 휩싸여있게 되니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포기하게 되었다. 달빛도 포기하고 미움에 맞서려는 다짐도 포기하고 그 다짐을 만들기까지 반짝이지 못했던 어둠들도 포기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달빛을 붙이지만 달과 같은 사람이 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이더라도 부담스러워 별을 붙이길 꺼리지만 별과 같은 사람이 되려 빛을 깎는 노력을 한다.

힘들 때 가장 먼저 세우는 기준이 기대하지 말자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직업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그 내면에 있을 개인의 역량에 대해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어쩌면 기대를 져버리게 하는 것이 가난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모든 게 충족된 상태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순간을 마주한다. 내일이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엔 사람의, 상처의 문제가 많기에 해결하려면 여러 사람들이 여러 방법으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난 결코 도움받으려 하지 않는다. 돈을 지불해야만 겨우 해결책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것과 마음을 사고 싶어도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의지마저 밀어내는 것이다. 어쩌면 시인이 표현한 가난은 돈이 적거나 없다는 의미가 아닐 수 있겠다. 관계 속에서 개인은 늘 가난하다. 그리고 오직 나만을 서글프게 하는 가난이 있다. 나에게 필요한 감정을 돈으로 살 수 없어 어떤 지폐도 의미가 없다는 것. 그것만이 나를 슬프게 하고 그 슬픔은 끝도 모른 채로 나아간다. 마치 달에 홀린 채 걸어갔던 그날처럼. 만약 어떤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욕을 해 다른 이의 직업을 훨씬 좋아 보이게 만들었더라도 그 직업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는 건 직업 자체가 달처럼 묵묵한 외로움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모두가 별을 향해 내달리겠다. 오래도록 용접공은 늘지 않을 것이다. 늘면 늘수록 안타까운 결과인 듯 얘기해버릴 것이다.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모두의 잘못이다. 오늘도 난 누군가의 뚫린 입을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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