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by 이정우 글

요즈음은 매일같이 도서관에 간다. 자주 가다 보니 그저 지나쳤던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책을 찾아보려 하니 우선 머리가 아팠다. 보란 듯이 세워둔 중앙의 책들 중에도, 보지 말란 듯이 꽂아둔 구석의 책들 중에도 집어들고 싶은 책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새로운 장소를 찾았다. 사람들이 다 읽고 난 책을 놓아둔 도서수거대를 찾은 것이다. 근처에 직원들이 많이 보여서 금세 도서수거대의 책들이 내가 눈 여겨보며 지나칠 수밖에 없는 장소로 옮겨질 것 같았다. 그렇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지금에 와서야 이유를 따져보자면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그저 가운데에 놓여있어서 고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고민 없이 집어든 책이어서 그런지 책을 잘 읽어내려갔다. 다른 책들보다 빨리 읽히고 이야기보다는 인물의 특징이 재밌어서 필사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


읽었지만 읽지는 못한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책을 잘 안 읽는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진다면 나는 작가가 된다면서 기본서 같은 책도 안 읽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면 뭐가 묻은 게 아니라 쟤는 돈이 없나? 눈치가 없나? 살펴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야겠다. 매일 조금씩 읽어가던 책이어서 익숙해졌고 내가 외운 자리를 찾아 책을 꺼내주러 갔다. 나는 책이 나와 닮아있고 옆 사람과도 너무나 닮아있어서 책은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느꼈다. 내가 꺼내주지 않으면 오래도록 그 자리만 지켜야 하는, 지키기도 싫지만 틈이 좁다는 이유만으로 끼임을 미연에 방지할 수 없는 그런 책들이 내겐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도움을 반대로 받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책은 제자리에 없었다. 예전에도 몇 번은 책이 다른 자리에 꽂혀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땐 화가 났었는데 이번엔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책은 대출중이었다. 그것도 두 권이나 말이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인기 있는 책이 되어야 하나?’


자주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인기 있는 책은 항상 대출 중이다. 일부러 여러 권씩 두었는데도 그 의도가 여유보다는 홍보로 닿았는지 대출중 표시가 며칠간 바뀌지 않는다. 그럴 땐 그 책의 내용이 좋다는 걸 원망하게 된다. 그저 훑어보려고만 해도 며칠이 걸리는 사람이 다수인데 그 내용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읽으면 얼마나 걸릴지 대출증도 없는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래도 훑어보는 것은 귀찮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어서 책을 덮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대출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짜증 섞인 한 마디도 내뱉지 않고 책 속 푸념들에 집중하며 읽어가는 태도로 집에서도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가장 행복한 시간에 짚어둔 이야기가 가장 우울한 위기에 뛰게 하는 사람이라면 그 책이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데에 몇 주가 걸릴 것 같다. 나는 그 마음을 겉으로는 몰라도 속으로는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서로가 몇 주간 정해진 아픔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뼛속 감기를 털어낼 만큼 깊게 아파하지도 못할 것 같다. 추억이 필요한 사람은 추억을 읽지 못한다. 그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예 능력 밖의 일이어서다. 능력이 아예 없을 수는 있어도 부족할 수는 없다. 그래서 책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도서관의 인기 없는 책처럼, 때로는 실낱의 희망만이 남아있는 것을 아무도 읽지 않는 전문서적이나 전문가를 대하듯 해야 한다. 여태껏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책도 두 권이고 대출자도 두 명이다. 아마 그 두 명은 서로가 너무 다른 사람들일 것이다. 내 생각 속의 유형들만 있기엔 겉모습이 너무 다르니 날짜만으로도 극적인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내일도 도서관에 가봐야겠다.


현재 내 직책은 sp국장이다. sp는 ‘세일즈 프로모션’의 약자로 해석하면 ‘판매추진’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광대하지만 광고 업계에서는 매스미디어 중심의 광고와는 다른 방법으로 수요를 창출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이벤트라든가 거리에서의 샘플 배포, 카탈로그 및 포스터 제작, 콘테스트 개최와 모니터 모집 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1의 비극> -노리즈키 린타로


도서관에서 읽다 말았던 <1의 비극>이라는 책에 있는 문장이다. 이 책도 도서수거대의 중앙에 있던 이미 읽혀진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잊혀진 지 오래겠지만 그 오래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 같아서 그 책을 읽어보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실이자 가장 슬펐던 사실은 도서관에 그 책이 들어온 게 2013년으로 찍혀있는데 새 책을 보는 것마냥 환했던 것이다. 책은 꽤 흥미롭게 전개되는 내용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책과 비슷한 소설 몇 권을 읽어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딱 제시간 안에 읽을 수 있을만큼만 읽고 나는 도서관을 나왔다. 책은 다시 도서수거대로 돌아갔고 빠른 시간 내에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그 책이 있는 곳이 너무 구석이라면 다 읽혀진 채로 도서수거대에 있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도 같다.


도서수거대는 생각보다 홍보 효과가 대단한 것 같았다. 내가 며칠 정도 책을 책장이 아닌 도서수거대에 놓아두니 그 책 두 권이 모두 대출되었다. <1의 비극>에서는 사소한 설명으로 sp국장이라는 자리가 원래는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자리였는데 매체의 홍보보다는 그 이외의 홍보들이 더 큰 효과를 보며 sp국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이 생겼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직까지도 홍보에 있어서 미디어가 가장 중요하고 아직이라는 말이 붙을만큼 시간이 흘렀기에 새로운 시대인 지금은 미디어가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 고전적인 장소인 도서관은 어떤 시도를 해도 변하지 않는듯하다. 도서관에는 좋은 책이 있는 것은 어울려도 좋은 성능의 컴퓨터가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종이책의 수명이 늘어나다 못해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 안정화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흔적 없이 읽고 난 책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다. sp국장은 아니지만 홍보가 통한 것이 뿌듯하고 기쁘다.


차마 끝끝내 읽지 못한 것들은 슬픈 것인 줄 알았는데 이 소설은 기쁘다 못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한다. 끝까지 읽어보지 않았는데도 블로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저 스크롤을 내렸더니 상상치도 못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결말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보고 주저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그래서 겨우 한 가지만을 읽을 수 있었고 그게 하필이면 이 작품의 결말이었다. 모든 로맨스소설이 그렇듯 이 작품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하다. 하지만 해피엔딩에도 종류가 있어서 어떤 장르의 끝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딴 얘기를 늘어놓느라 이제야 소개하는 주인공 공진솔과 이건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편안한 행복을 맞을지 아니면 함께 있는 자리가 각자의 자리가 되는 경험의 행복을 맞을지 궁금해진다. 서평도 에세이도 아닌 글을 써서 이 책에 대해서는 그 어느 것도 얻어가지 못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결국 인물도, 마음도, 성격도, 인성도, 착오도 모르지만 헤피엔딩이었다는 것. 일상에서도 그것만을 알 수 있다. 해피엔딩이라는 말이 슬프지 않은 이유는 그토록 찬란한 결말이 삶의 끝이 아닌 하루의 끝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다음 날에 일어나면 엔딩이 여운이 남아있다는 기쁨까지 있다. 나의 일상을 재밌어하기 위해 소설을 읽기도 한다. 나는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일상이 여느 소설이나 미디어보다 재미있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새겨두고 있다.


나중에야 찾아봤는데 그 책은 원래도 베스트셀러였다. 내가 독서의 유행에 뒤쳐진 것뿐이었는데 홍보가 통했다고 유난을 떨었다. 그래도 괜찮다. 하루빨리 그 책이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것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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