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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건 Mar 26. 2024

나는 네가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아이고 밥 잘 먹네”

그 한마디에 나는 숟가락을 놓으려다 다시 집어든다. 밥을 계란찜과 싹싹 다 긁어 내 입으로 직행. 가족의 칭찬이 양 귀에 베토벤 고향곡처럼 울려 퍼진다. 밥만 잘 먹어도 칭찬을 듣던 유년 시절.    

  

어느 날, 집단 정리를 했다. 4형제가 고사리손으로 짚단 매듭을 잡고 하늘로 집어던지면 아버지가 차곡차곡 쌓았다. 하다 보면 나 혼자 남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봐라, 저 놈이 집안 지킨다고. 다른 놈을 다 도망가는 데 끝까지 한다고 “

웃으며 너무 좋아했다. 


사실, 난 도망가는 타이밍을 놓쳤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집에 돌아왔다.

유치원생 걸음으로 30분 거리를 걸어 다녔다.(그때부터 걷기를 했지만 지금은 저질체력). 할아버지는 보자마자 “토끼풀 베어와라”

“예” 배도 고픈데 토끼풀이 웬 말, 오늘 유치원에서 많이 놀고, 또 집까지 걸어왔는데.

'어째 이런 일이?'시련이 닥쳤다. 

힘없이 대답하고 낫을 들고 집 밖 오른쪽 도랑을 건너 토끼풀을 베기 시작했다. 귀찮아서 낫을 들어 토끼풀을 찍었는데 낫이 내 손등에 있었다. 피도 많이 났지만 하얗게 보이는 뼈를 보고 나는 더 놀랐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경운기에 태우고 비포장 길을 털털 소리를 내며 보건소로 갔다. 내 오른손에는 평소 볼 수 없던 초코파이가 한통이 들려 있었다.

"아야~" 눈물방울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멈추지 않는다. 

마취액이 없는지 몰라도 낚시 바늘로 생살을 집기 시작한다. 아픈데 오른손에 든 초코파이를 보면 좋았고, 내 손을 보면 무서웠다.      


힘든 수술하고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왔다. 다음날엔 할아버지가 유치원 앞에서 날 기다렸다. 어떤 날은 지례면으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갔다. 손 치료를 위해서다. 할아버지가 내장국밥을 사주셨다. 조금 짭짤했다. 순대도 들어있고. 유치원 입맛에는 그다지 맛있는진 모르지만 배가 고파 먹었다.      


할아버지는 형에게 천자문을 가르치셨다. 나는 마당에 뛰어놀고 형은 할아버지한테 붙잡혀서 “하늘천따지~. 크게 외쳐댔다.

나도 천자문을 배우게 되었는데, 모르면 할아버지 회초리는 내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나도 아파서 참다가 비장의 결심은 한다.

“할배, 넌 때리면 안 맞나?”

장판에 놓인 회초리를 내가 들고 할배를 때렸다. 벌벌 떨고 울면서. 5살 인생 최대 용기 냈다. 내 귓가에는 “킁킁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할배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계속 웃는다. 그 얼굴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용기와 기상을 다시 내고 싶다.      


할아버지는 나를 인정해 줬다. 살림 지킬 놈이라고. 아버지 어머니도 나를 인정은 해 줬지만 형에 비하면 작았다. 이유는 장남이라서. 어머니는 형에게 분유를 타 주고 난 못 먹게 했다. 


‘나도 분유 먹고 싶은데’ 엄마와 형이 없는 동안 분유를 스푼으로 입에 마구 푹푹 집어넣었다. 녹색 통에 든 하얀 분말을 스푼으로 컵에 넣는다. 물을 부어서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타 먹으면 황홀했다. 마치 금지된 장난처럼, 하지 말라고 한 건 더 하고 싶어졌다. 혀 앞에 분유는 항복하고 스르르 녹아 없어졌다. 스스로 분유를 쟁취하고 자유를 맛봤다.      


엄마와 형은 아직 모른다. 분유통에 분유가 왜 빨리 줄어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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