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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샤 Sep 19. 2022

헤어 디자이너, 말괄량이

#4

그녀와 나는 친구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연인이 된 풋풋한 20대 초반의 커플이었다. 데이트를 할 때 가끔 로드샵 화장품 가게에 있는 매니큐어들 앞에 서서 멀뚱멀뚱 그것들을 넋을 놓고 보던 그녀의 모습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미성년자 때부터 미용실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지만 당시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그녀의 역할은 수없이 많은 고객들의 샴푸를 도와주는, 디자이너들의 보조 역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손이 건조했으며 손톱을 예쁘게 하고 싶어 하는 그 나이 때 여자들의 흔한 욕구로 인해 꽤나 마음이 힘들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인터넷을 열심히 둘러보며 나름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록시땅 핸드크림을 골라서 사줬다가 향기 때문에 바르지도 못한다며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다. 나는 그렇게 싸가지가 바갈쓰인 반응을 보여도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큰 꿈을 가지고 어린 나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가 참 좋았다.


그녀는 항상 패기가 넘치는 말괄량이 소녀 같았다. 보통 그 나이 때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만 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본인 이름을 걸고 운영할 미용실을 차리는 꿈에 대해서 나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어떤 샵에 실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현재까지 그녀의 이름을 건 업체는 보이지 않는 듯하니 그 꿈이 진행형인지, 사라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녀에겐 야망도 있고 구체적인 꿈이 있었지만 그 당시 우리는 너무 어렸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으며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었다. 나는 그저 백수 생활을 즐기면서 몸이 편한 아르바이트만 찾아가며 그렇게 하염없이 청춘과 시간 낭비만 하는 도태남의 표본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녀와 조금 더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고 기숙사가 있는 직장에 함께 다니면 우리의 연애가 핑크빛으로 더욱 진하게 물들어 갈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그렇게 해보면 어떨지 그녀에게 제안했다.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이 넘치던 그녀였지만 의외로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력이 있으니 언제든 그 분야에 다시 취업이 가능할 것이라며 즉시 나와 함께 기숙사가 있는 회사에 지원하여 면접을 보고 두 사람 모두 합격하였다. 둘 다 교육생 신분으로 교육 이수까지 전부 완료했지만 우리는 정식으로 출근하기 딱 하루 전날 대판 싸우고 헤어졌다.


당연히 기숙사에서 짐도 빼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싸움의 발단은 내가 너무 센 척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센 척을 하거나 하는 멍청한 짓을 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어렸던 나와 그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최대한 무게감 있고 진중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단지 그러기 위해서 이 여자의 패기 넘치고 말썽꾸러기 같은 행동들을 매번 제한하고 타일렀다. 내가 좋아하던 그 호탕한 웃음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쉬웠고 그만큼 남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뭐라도 되냐면서 혼자 씩씩 거리던 그녀는 나와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겠다면서 이별을 고했다. 어린 나이지만 호기롭게 서로 의지하고 행복한 연애와 직장 생활을 동시에 꿈꾸며 진행되던 계획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집까지 왕래하며 부모님들에게 소개까지 한 사이였는데도 불구하고 하찮은 이유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 나이 때에 딱 어울리게 추가적으로 엉망이 되서 싸우다가 결국 또 화해하고 재회까지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녀는 재회 후 얼마 안 돼서 나에게 '근데 너의 어머니가 나 되게 싫어하는 거 알지?'라며 굉장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내뱉었다. 알고 보니 내가 그녀에게 제안한 계획을 우리 어머니는 불여우 같은 계집애가 소중한 자신의 아들을 꼬셔서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심지어 그녀에게 나를 만나지 말라고 따로 연락까지 한 상황을 알게 되어 그날 나의 행패에 온 집안이 다 뒤집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미안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결국 내가 부모님에게 나의 생각과 입장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을 뿐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여지없이 분명하게 나의 잘못만 존재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가 아들이 만나는 여자 친구에게 그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속상했고 내가 그렇게 부모님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철부지 아들내미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자존심까지 굉장히 상해버린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그녀와 부모님 모두에게 형편없는 놈이 되어버린 나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에 독립을 해서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 취직했고 그녀에게도 곧바로 이별을 권했다. 그녀도 나의 입장에 대해 특별한 반응 없이 수긍하며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으로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외아들로 태어나서 부모님의 지극 정성과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온 만큼 남들보다 부모님과의 소통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언제나 나의 선택과 행동이 존중받고 신뢰까지 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어머니 치마폭에서 허우적거리는 애같은 남자였을 뿐이었다.


나는 자신을 형편없는 마마보이로 만들어버린 어머니가 꽤나 오랫동안 원망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고 그런 감정이 시간이 흘러서 수그러들었을 때는 스스로 겨우 이거밖에 안 되는 남자였다는 사실이 더욱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부분을 개선하여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런 나의 자아성찰은 가엽게도 더 나은 사람, 더 성공적인 삶을 위한 것이 아닌 보잘것없는 목표 의식으로 인해 진행되었다. 그저 더 예쁘고 좋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 이대로 하찮은 남자가 될 수 없다는 되지도 않는 집념으로 가득 찬, 그런 형편없는 사고방식으로 인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이때 느낀 감정에 의한 방향 설정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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