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는 참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그것도 그냥 예쁜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손에 꼽도록 정말 깊이 사랑했던 그녀는 여지없는 '못난이'었다.
나는 얼굴과 몸매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라 그저 예쁜 여자를 좋아했던 것 같다. 세상에는 얼굴과 몸매가 예쁘지 않아도 그저 예쁜 여자들이 존재하며 못났지만 잘생긴 남자도 존재한다. 이것은 궤변인 듯 보이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악동뮤지션의 수현이나 류준열처럼?)
그녀는 셰프였다. 퇴근하고 나를 만날 때면 나름 신경을 쓰고 나오는 것인지 활짝 웃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윗니에는 코럴 핑크 컬러의 틴트가 번져있었으며 내가 선물해준 조 말론 향수는 조향이 훌륭한 브랜드였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음식 냄새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곱슬머리가 그렇게나 좋았다. 그녀의 고부라진 머리카락은 항상 이마에 붙어서 고불고불거리며 흘러내렸고 나는 매우 안정적이게 붙어있는 그것들을 굳이 넘겨주거나 정리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남자가 갑이고 여자가 을인 연애였다. 나는 이성들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남자였고 그녀는 나 말고 연애 경험이 전무한 순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함부로 다루거나 나와의 연애에서 불합리를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나에게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내비쳤으며 항상 불안에 떨고 나를 곤란하게 하기 일쑤였다. 나는 여사친이 많기는 했지만 연애를 하던 도중에 절대 양다리를 걸치는 일은 없었으며 온전히 환승의 목적으로만 그들을 활용했기에 헤어지지 않으면 다른 여자와 정분이 날 일은 없었다.
물론 다른 여자와 정분이 나기 위해서 이별을 고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것은 그냥 바람을 피우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개소리를 하면서도 잘만 살았다. (다만 이것은 먼 훗날 내가 받은 형벌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그날도 그녀의 불안과 짜증 지수가 폭발한 날이었다. 우리는 미성년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었기에 주변 지인들이 겹치는 경우가 꽤 많았는데 그녀가 알고 지내던 동생이 굳이 나와 같이 있는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리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주범은 객관적으로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 부분을 특히 강조하며 그녀를 정성스레 달랬지만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그녀는 그 말에 오히려 더욱 열이 받은 듯했기에 며칠간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1년을 넘게 연애하면서 여사친 문제로 얼굴을 붉혔던 일이 한두 번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본인이 알고 지내던 여자와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에 대해 극심한 분노를 드러냈다. 거기에 대고 나는 그저 커피를 마셨을 뿐이고 내 감정에 대해 결백하다며 삐댔기 때문에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어만 갔다.
그녀는 내가 첫 연애 상대이면서 순결까지 나에게 쥐어준 상황이었다. 나는 그녀의 전부였으며 그녀가 사는 세상에 중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임감으로 그녀를 만난 것은 아니었기에 그런 사실 때문에 불필요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생각 따윈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저히 그 사건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나는 끝내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의 시발점이 되었던 그녀의 친했던 동생과 연애를 시작했다.
물론 그 친구와의 만남은 연애라고 하기도 뭣할 만큼 짧았다. 그 친구는 그저 내가 얼마나 자길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남자인지 호기심에 가득 찬 여자였을 뿐이었고 나는 스스로 낭만주의자라고 믿는 놀라운 쓰레기였다.
그러니 그런 원초적인 관계에 흥미를 길게 느끼지 못했으며 금세 또다시 나의 낭만을 완전하게 충족시켜 줄 다른 여자를 찾아 떠났다.
서로가 주변 지인들과 엮여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간간이 못난이 그녀의 소식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유독 깐족거리는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그 자식은 못난이 그녀가 우리의 이별 사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모든 걸 다 바치고 1년을 넘게 만난 남자에게 못생겼다는 이유로 차였다고'
나는 그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의 마음이 꽤나 많이 씁쓸했다고 기억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내 기억 속에 그녀는 못났지만 누구보다 예뻤던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