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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샤 Oct 10. 2022

영양사, 늙은 공주

#6

그녀는 항상 자신이 늙은 공주라고 했다. 그래 봤자 20대 후반 주제에 자신은 이미 늙었다고 신세 한탄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공주라고 하는 그녀를 나는 참 좋아했다.




나는 20대 초중반에는 연상의 여자와 연애를 많이 하면서 스스로 연상의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30대가 넘어가선 줄곧 연하만 만났으니 결국 연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20대 중후반의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내가 참 좋아하는 나이대(?)의 여자였다. 나는 당시 한낱 하찮은 백수이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로 내가 굉장히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거라고 믿는 미개한 남자였다.


우리는 2호선 어떤 지하철역 근처 커피빈에서 처음 마주쳤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스타벅스가 많이 없고 되려 커피빈이 꽤나 인지도가 높을 때였다.


나는 까망베르 치즈케이크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맛을 한번 볼 작정으로 팔자에도 없는 커피빈에 들린 것이었으나(당시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그녀는 그곳이 직장 근처여서 점심시간에 커피를 사러 온 상황이었다.


서로 주문을 하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는데 정말 남들이 보기에도 우리 둘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아 보였으리라.


그녀는 하이웨스트 스커트와 블라우스 차림에 누가 봐도 오피스 여성이었고 나는 어깨까지 오는 장발에 넘버나인 후드 셔츠를 입고 기무라 타쿠야나 따라 하는 일본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도 그럴게 당시 그녀는 얼굴이 정말 너무나 예뻤고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까지 나무랄 때가 없었으며 마치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여신과도 같았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녀와 함께 대기를 하다가 먼저 계산을 했다. 그때는 아직 카드 결제 5만 원 이하 무서명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은 터라 결제 서명을 하는 곳에 크게 하트를 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원이 이상하게 쳐다봤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때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나는 내가 직접 그린 큼지막한 하트가 보이는 영수증을 받아내었다.


그리고 그 영수증 하트 안에 나의 전화번호를 적은 다음 곱게 접어 카페 앞에서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무심하게 건넸다. 그녀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나의 갈 길을 무심하게 걸어갔다.


그녀의 카카오톡 연락이 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알람이 울리자마자 환호를 지르며 내용을 확인했는데 내용인즉슨 '나는 머리 긴 남자가 제일 싫어요'였다.


나는 즉시 옷을 챙겨 입고 미용실로 가서 머리를 짧게 잘랐고 짧아진 머리 상태에서 셀카를 찍은 후 이렇게 머리까지 잘랐는데 나랑 사귀어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나의 빠꾸 없는 전략으로 우린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늦가을에 연애를 시작했다. 그녀는 모 병원의 영양사였고 나는 부모님 등골이나 빨아먹고 사는 백수였기에 그녀의 친구들은 나를 아주 매우 많이 싫어했다.


그러나 근자감 하나로 천하를 호령할 것만 같았던 나는 개의치 않았으며 이미 갖은 정성과 공을 들여서 그녀가 나 없인 일상이 힘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렸기에 우리의 관계는 탄탄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가 너무 예쁜 나머지, 남자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을 거라 예상하고 황당한 전략으로 다가갔다.


역시나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그녀는 미모에 비하여 남자 경험이 확실히 적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많이 찔러보는 어설프게 예쁜 여자들보다 훨씬 꼬시기가 쉬웠다.


그리고 나에게 홀라당 빠지게 만드는 시간조차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만났다. 거의 1년을 가까이 만났으니 당시 내 기준에선 굉장히 오래 만난 편이었다.


그녀의 고향인 지방까지 함께 왕래하며 정말 사이좋게 지냈지만 1주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에 나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굴욕을 경험했고 결국 그녀와 헤어졌다.


그녀는 직업도 좋고 미모도 출중했기에 돈 많고 직업까지 좋은 아저씨들에게 늘 타깃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업무상 회식을 한다고 했으나 나는 그녀를 보고 싶다고 억지를 부려서 그녀가 있는 술집 근처까지 찾아갔다.


싸늘해지는 날씨 덕분에 추위에 벌벌 떨며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백발의 할아버지 같은 남자에게 반쯤 안겨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성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들을 내뱉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 같은 남자는 나를 굉장히 예의 없다는 듯이 노려보기만 했다.


그도 그럴게 나는 운동선수 출신으로 거대한 몸뚱이에 선량하지 않은 인상까지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자기 여자 친구한테 막말을 내뱉고 있었기에 그 사람에겐 그저 상종도 하기 싫은 놈이었으리라.


사실 스스로도 이전 트라우마 때문에 그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수를 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멍하니 서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그녀와 그 늙은 남자를 남겨두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서 도망쳤다.


이 일은 분명히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헤어질 이유까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너무나 굴욕적인 기분에 씩씩거리며 잠을 제대로 잘 수 조차 없었다.


그녀는 다음날 나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오해를 풀려고 사과했지만 나는 나의 못난 모습과 형편없는 대처 능력이 창피했기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더욱 화를 내었고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나는 병적으로 여자 친구의 남자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것을 고치는 데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지금은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이런 사소한 일로 헤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나의 모자람으로 귀한 인연들을 하나둘씩 잃어가며 끝내 개선을 했지만 오랜 세컨드 생활이 가져오는 인생의 피폐함은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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